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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27. 2023

골프지옥

내 결혼 이야기

둘째 출산한지 두달정도 되었을 때 남편이 말했다. 

 “우리 제주가면 자기 일 시작 해야 할 것 같아. 제주도에 일자리는 있어?”

남편의 승진과 함께 결정된 제주행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나의 몸은 산욕기였고 정서는 불안정했다. 그저 여기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떠나고 나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으로 제주행을 결정했다. 그러나 남편이 먼저 꺼낸 이야기는 돈이었다. 틀린말은 아니었다. 나는 살림을 할 줄 모르는 여자로, 새는 돈이 많기는 했다. 남편이 카드값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빨리 돈 벌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으므로 남편의 질문에 빨리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구직 사이트에서 본 미용 병원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강남에 큰 프렌차이즈 병원을 하고 계신 원장님을 만나 면접을 보았고, 제주 가자마자 바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이미 제주에 내려가 일을 하고 있었고 둘째가 태어난지 90일경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제주에 내려와 일을 시작하였다. 아이들과 친정엄마는 둘째가 100일 넘는 시점에 맞추어 제주에 내려오기로 했다.


새로 근무하는 병원의 오프는 한달에 2일이었다. 우리가 사는 관사의 실평수는 18평이 안되었는데 거기에 다섯식구가 살았다. 큰아이 낳고 시작된 요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앉으나 서나 항상 허리가 아팠다. 남편에게 허리 아프다고 이야기 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운동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 산욕기의 힘듦, 새로운 직장 스트레스, 육아의 어려움, 심해지는 요통, 좁은 집에서 살아야하는 답답함, 계속되는 산후우울증... 이 모든 것을 남편은 알지 못했다. 나는 남편에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냥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둘다 일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건강했다. 무엇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가정이었다. 나도 괜찮은 줄 알았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돈을 무서워하는 남편은 절대 골프는 안칠거라고 맹세하던 사람이었는데, 제주에 오니 골프를 배우고 싶어했다. 승진하느라 고생했고, 배워두면 좋지 않을까 해서 2년간 골프 치는걸 허락했다. 제주는 배우기도 치기도 저렴해서 경제적으로는 크게 부담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게 있었다. 바로 내가 모르던 남편의 승부욕과 집요함이었다.


남편은 레슨은 돈이 들어서 싫다며 혼자 연습장을 끊어 연습을 했다. 대학교때 몇 번 배워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나면 유투브를 보며 공부하고 연습장에서 매일 두시간을 살았다. 시작한지 한달이 안되어 필드를 나가기 시작했다. 주말 내내 골프약속을 잡았다. 혼자 배우기는 미안했는지 나도 연습장을 끊어주고 레슨프로를 붙여주었다. 나는 출산한지 겨우 네다섯달 된 여자였다. 한쪽으로만 스윙을 하는 골프가 내 허리에 좋을 리 없었다. 갈수록 허리가 아파 병원에가서 X-ray를 찍어보았는데 뼈가 돌아가 있었다. 남편이 하라는대로 연습장에 꼬박고박 가고 있던 내 어리석음과 연습을 강요한 남편이 야속했다. 


허리가 아파 연습을 쉬면 남편은 돈주고 연습도 안한다고 타박했다. 살아보려 안간힘을 쓰고있는 나는 안보이고 골프만 보이는 남편이었다. 골프를 잘 치고 싶고, 와이프도 잘 쳐서 같이 필드를 나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했지만, 내 정신은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산후우울증까지 겪고 있었다. 겨우겨우 일과 육아를 지속하고 있었으나, 툭하면 울음이 났고 힘이 들었다. 사는게 재미가 없었다. 아이들이 예뻤지만 감정조절이 힘들었다. 남편이 미웠고 내 신세가 처량했다. 몸이 아프니 회복이 안되었다.


1년간 혼자 연습하다 결국은 레슨을 시작한 남편은 골프 시작한지 2년이 안되어 싱글을 치게 되었다. 주말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필드에 나가는 남편을 두고 혼자 아이들과 친정엄마를 모시고 바닷가며 숲이며 다니면서 외로웠다. 골프를 왜 하라고 한건지 배우긴 했지만 허리만 아프고 필드 나갈일도 없고 수준도 안되었고 즐길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오히려 골프치는 남편을 보며 골프가 너무 싫었다. 진저리가 났다. 절대 치고 싶지 않았다. 


요통이 지속되었고 임신을 두 번 하며 살도 쪄 있는 상태여서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요가를 다녔고 요가를 안가는 날 새벽에는 중국어 학원을 다녔다. 살은 빠졌는데 무리한건지 감기를 달고 살았다. 결국 독감에 걸리고 대상포진을 앓았다. 그러다 폐렴까지 앓게 되었다. 젊은 여자가 폐렴을 앓기는 참 힘든데 그걸 내가 했다. 열이 펄펄 끓어 응급실 통해 입원을 하였다. 와이프가 입원을 하였으나 나의 남편은 골프를 갔다. 입원했으니까 이제 괜찮지 않아? 하면서. 골프치고와서 피곤한 얼굴로 저녁에 잠시 얼굴을 보고 갈 뿐이었다. 내 남편의 머릿속에는 골프 뿐이었다. 서운했고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2년을 골프에 빠진 남편을 보며 살았다. 그 사이에 나는 계획한건 아니었지만 개원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남편을 혼자 서울로 보낼 생각은 없었지만 나의 마음과 상황이 자연스럽게 남편을 혼자 서울에 가게 했다. 나는 개원한 병원 핑계로 따라가지 않았다. 마음이 편했다. 차라리 얼굴을 안 보니 살 것 같았다. 같이 살면서 불만과 서운함이 쌓이는 것 보다 떨어져 있으니 싸울 일도 없고 관심도 멀어져 싸울일도 줄어 좋았다. 우리는 그렇게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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