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 증원된 의사들이 나오는 세상

정해진 숫자와 정해지지 않은 미래

by 최인준

의대 증원이 확정됐다. 2027학년도부터 연간 490명, 2030년부터는 800명 이상으로, 5년간 총 3,342명이 늘어난다. 이는 이미 결정된 일이기 때문에, 글에서 증원이 맞느냐 틀리냐를 따질 생각은 없다. 대신 한 가지를 생각해보고 싶다. 이 의사들이 현장에 나오는 2033~2037년, 의료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1. 세 가지가 동시에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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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된 학생이 의대 6년을 다니고, 인턴 1년, 전공의 3~4년을 마치면 빨라야 2033년에 현장에 나온다. 이 시점에 세 가지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첫째, AI가 의료를 바꾸고 있다. 이전 시리즈에서 다뤘듯이 AI에 의한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게 기술이 축적되다가 규제나 시장의 문이 열리는 순간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는 구조다. 지금은 그 축적의 시기다. 2033년이면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시기와 겹칠 수 있다.


둘째, 대학병원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이 부분은 조금 뒤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지금 대학병원이 하고 있는 일의 상당 부분이 로컬로 빠질 수 있다.


셋째, 매년 수백 명의 의사가 추가로 쏟아져 나온다.


이 세 가지가 2030년대 중반에 겹친다. 증원된 의사들이 "자, 이제 시작이다" 하고 현장에 발을 딛는 바로 그 시점에, 의료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2. 대학병원은 어떻게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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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의 변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지금 대학병원은 사실상 모든 걸 다 하는 곳이다. 감기 환자도 보고, 피검사도 하고, CT 판독도 하고, 개두술도 한다. 같은 건물 안에서 경증과 중증이 섞여 있다. 실제로 상급종합병원 입원환자 중 중증 비율의 권고치는 50%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중증이 아닌 환자가 채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AI가 들어오면 이 구조가 흔들린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지역 병원에서 CT를 찍으면 영상을 대학병원 영상의학과에 보내서 판독을 받는다. 그런데 AI 판독의 정확도가 올라가면, 로컬 병원에서 AI 판독을 직접 돌리고 끝낼 수 있다. 대학병원까지 올 이유가 사라진다. 이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틀 전인 4월 1일, 식약처는 생성형 AI가 흉부 X선 영상을 분석해 57종의 소견에 대한 판독문 초안을 직접 작성하는 의료기기를 세계 최초로 허가했다. 임상시험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 5명의 판독과 유사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AI가 판독문을 쓰고 의사가 검토하는 구조가, 규제 인정을 받고 현실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병리도 마찬가지다. 조직 슬라이드가 디지털화되면서 AI 기반 병리 판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FDA는 AI 병리 분석 도구를 신약 개발 보조 도구로 최초 승인하기도 했다. 지금은 조직검사 결과를 대학병원 병리과에서 받아보지만, AI 병리 판독이 보편화되면 이 과정도 로컬에서 완결될 수 있다. 1차 진료 또한, AI 보조 진단이 동네 의원에서 가능해지면 환자 입장에서 "일단 대학병원 가보자"라고 할 동기가 줄어든다.


그러면 대학병원에서 빠지는 것들이 생긴다. 경증 외래, 단순 검사, 정형화된 판독. 이것들이 하나둘씩 로컬로 분산된다. 물론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는 것과 환자들의 행동이 바뀌는 것 사이에는 시간차가 있다. "큰 병원이 안심된다"는 오래된 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지만, 커다란 방향 자체는 바뀔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고난도 수술, 희귀 질환, 중증 응급, 여러 과가 한자리에 모여야 하는 다학제 협진 등은 고도의 장비와 인프라가 필요하고, 깊은 지식과 고난도 경험의 축적이 요구되는 영역들이다. 이들은 로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결국 대학병원은 지금처럼 "모든 걸 다 하는 곳"이 아니라, "로컬에서 할 수 없는 일만 하는 곳"으로 바뀔 수 있다. 전체 규모는 줄어들지만, 남는 영역은 더 전문화되고 밀도가 높아진다.



3. 이 의사들이 나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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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된 의사들이 현장으로 나왔을 때는 수련 환경부터 달라져 있을 수 있다. 대학병원이 하는 일이 줄어들면 수련 자리도 줄어든다. 경증 외래와 단순 판독이 빠지면 전공의가 직접 해볼 수 있는 케이스의 폭이 좁아진다. 수련에서 케이스 수는 곧 경험의 양이고, 경험의 양은 임상 판단력의 토대다. 이것이 줄어든다는 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의사의 질에 직결되는 문제다. 케이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격변하는 현장에서 이들을 가르칠 교수진의 여력도 문제다. 지금도 2024학번과 2025학번이 동시에 수업을 받는 "더블링" 상황에서 교육 현장이 빡빡한데, 여기에 증원까지 더해지면 수련 자리는 줄어드는데 수련받으려는 사람은 늘어나는 상황이 된다.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달라져 있을 수 있다. AI가 진단, 판독, 1차 선별을 상당 부분 맡게 되면, 의사가 직접 손대는 업무의 범위가 지금보다 좁아진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전제로 증원을 결정했는데, 막상 이 의사들이 나와보니 AI가 그 부족분의 일부를 이미 메우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메울 수 없는 영역은 여전히 있다. 지역 응급실에서 환자를 직접 보는 의사, 분만실에 서는 산부인과 의사, 수술대에서 칼을 잡는 외과 의사. 환자의 몸 앞에 사람이 서야 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러면 질문이 바뀐다. "의사가 충분한가"가 아니라 "이 의사들이 필요한 곳으로 가는가"가 된다. 이건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수가 구조와 근무환경의 문제다. 필수의료의 보상이 지금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의사가 아무리 많아져도 응급실과 분만실로는 안 간다. 파이프가 막힌 상태에서 수도꼭지를 더 틀어봐야 물은 안 나온다. 이 점은 의료계가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부분이고, 증원만으로 풀리지 않는 구조적 문제다.



4. 어떤 의사로 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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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보자. 증원 논의는 "몇 명을 뽑을까"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이 사람들을 어떤 의사로 키울 것인가."


지금 의대 교육은 기본적으로 6년 동안 의학 지식의 총량을 머릿속에 넣는 구조다. 그런데 2033년에 현장에 나올 의사에게 필요한 건 그것만이 아닐 수 있다.


AI가 진단과 판독을 맡게 되면, 의사의 역할은 "직접 판단하는 사람"에서, "AI가 내놓은 판단을 검증하고, 환자에게 맥락을 설명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이동한다. AI가 맞추는 대부분이 아니라 AI가 놓치는 예외를 잡아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 판독이 '정상'이라고 했는데 환자의 증상이나 병력과 맞지 않을 때, 그 불일치를 의심하고 재검토를 결정하는 것. 이건 데이터를 읽는 능력이 아니라 맥락을 읽는 능력이다. 이건 지금 의대에서 가르치지 않는 역량이다.


더 나아가, 이전 시리즈에서 다뤘듯이 AI 시대에는 연구와 임상을 병행하는 의사가 더 많이 필요해질 수 있다. AI 시스템을 만들고, 검증하고, 개선하는 데 환자를 직접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에 시간을 쓰는 의사가 늘어나면, 한 사람이 진료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이러한 사항들이 총체적으로 집결했을 때 역설적인 일이 벌어진다. AI가 의사 한 명의 생산성을 높여서 "의사가 덜 필요해지는" 방향으로 미는 힘이 있고, 동시에 의사들의 역할 전환으로 1인당 진료 시간이 줄어서 "의사가 더 필요해지는" 방향으로 미는 힘이 있다. 이 두 힘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것. 이 부분은 마지막에 다시 짚겠다.



5. 정해진 숫자와 정해지지 않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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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은 이미 확정된 상수이며, 이를 되돌리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 글이 결국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의사 한 명의 생산성을 높여서 "필요한 의사 수를 줄이는" 힘과, AI로 인한 의사의 역할 전환으로 1인당 진료 시간이 줄어서 "필요한 의사 수를 늘리는" 힘. 이 두 힘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미래에 의사가 몇 명 필요한가는 하나의 고정된 숫자가 아니라, 이 두 힘의 균형에 따라 움직이는 변수다. 그런데 지금 추계는 이것을 상수로 놓고 있다.


숫자가 정해진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2033년에 현장에 나올 의사들이 마주할 세상은, 지금 증원을 결정할 때 전제했던 세상과 다를 수 있다. AI가 의사의 일을 바꾸고 있고, 대학병원의 모양이 달라지고 있고, 의사에게 요구되는 역량 자체가 움직이고 있다.


"몇 명을 뽑을까"는 정해졌다. 이제 남은 건 "이 사람들을 어떤 의사로 키울 것인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미래의 의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 정의가 움직이고 있는데, 숫자만 먼저 정해졌다.


증원의 숫자는 정해졌다. 그 숫자에 담길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 숫자 하나하나는, 2027년에 의대에 들어갈 누군가의 2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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