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과 ‘일한’ 사이에서 묶여 불리는 한국

오래된 인식의 잔향과 불쾌감

by 쿨파스

일본에서 생활하던 시절, 나를 불쾌하게 했던 단어 중 하나가 바로 “中韓(ちゅうかん)”이었다. 물론 “중한 정상회담”이나 “중한 관계”처럼 중국과 한국의 양자 관계를 설명하는 문맥에서는 자연스럽고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종종 일본 언론이나 인터넷 여론 속에서는 “中韓の反応(중한의 반응)” 같은 식으로 한국과 중국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설명하는 표현이 등장하곤 했다. 혐한 커뮤니티에서는 “中韓がまた発狂(중한이 또 발광)”, “中韓がまた敗北(중한이 또 패배)” 같은 문장이 반복되었다. 그때의 감정은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섰다.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와 무관한 또 다른 나라와 함께 하나의 조롱 대상로 묶여 버리는 장면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일본인 못지않게 비판적 감정을 갖고 있음에도 그들과 한 덩어리로 묶여 소비된다는 점은 더욱 황당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왜 일본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이렇게 쉽게 하나의 범주로 인식되는 것일까? 그 배경에는 근대 이후 형성된 편의적 언어 선택을 넘어, 훨씬 오래된 역사적 인식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 고대 사회에서 “가라(加羅/伽耶)”는 가야를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본은 오랜 기간 한반도를 통해 문명을 수용했으며, 이때 “가라”는 단지 지리적 명칭이 아니라 “대륙에서 문물이 건너오는 방향”을 상징하는 단어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당나라와 직접 교류가 시작된 이후, 일본은 중국을 「唐」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 「唐」이 「から(カラ)」라는 독음을 얻기 시작했다. “唐物(からもの, 대륙에서 온 물건)”, “唐人(からびと, 대륙 사람)”, “唐渡り(からわたり, 중국에서 건너옴)” 같은 표현들은 모두 이 인식 구조의 흔적이다. 이 과정에서 “가라”는 더 이상 한반도만을 가리키지 않고, 중국까지 포함하는 ‘대륙 전체’의 총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하던 시기에도 여전히 드러났다. 조선에서 건너온 통신사 일행은 일본 각지에서 구경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본떠 만든 축제는 지금도 “唐人踊り(당인춤)”이라 불린다. 분명 조선인이 왔음에도 일본인들은 그들을 ‘중국인(당인)’이라 명명한 것이다. 신유한의 『해유록』에는 통신사 수행을 맡았던 아메노모리 호슈가 “조선인은 왜 우리를 아직도 ‘왜인(倭人)’이라 부르는가? 국호가 일본으로 바뀐 지 오래인데”라고 따지자, 신유한이 “그렇다면 당신들은 왜 우리를 ‘당인’이라 부르느냐?”라고 응수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아메노모리는 “그것은 귀국이 중국과 동등한 문명국이라는 존칭”이라고 얼버무린다. 이 대화는 단지 명칭의 혼동을 넘어, 일본이 조선을 중국 문명권 내부의 일부로 보고 있었다는 오래된 인식 구조를 보여준다. 즉 “중한(中韓)”이라는 묶음은 단순한 언어 선택이 아니라, “대륙 문명권 = 唐/から”라는 오랜 사유 방식 속에서 중국과 한반도가 비슷한 계열로 분류되어 온 역사적 습관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근대에 들어서도 이러한 구도는 이어졌다. 아직 대한제국이라는 국호가 생기기 전임에도 일본은 조선을 “韓”이라 불렀고, “정한론(征韓論)”이라는 표현도 대한제국 성립 전에 나온 것이다. 실제로 고종실록에 대한제국이라는 국명이 제정될 당시 “타국에서는 이미 우리를 韓이라 부르고 있다”라는 언급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묶음 방식은 일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분류가 이루어진다. 다만 이번에는 한국이 일본과 함께 묶인다. 중국의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日韩剧(日韓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묶이고, 대형 슈퍼에서는 “日韩商品专区(日韓 상품 코너)”라는 이름 아래 일본과 한국 제품이 함께 진열된다. 캐나다의 중국계 마트에서도 일본과 한국산 제품이 “日韓祭”라는판촉행사로 묶여 판매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이 경우 한국은 중국 입장에서 “중국 외 동아시아 선진공업국 그룹”으로 일본과 함께 분류된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묶이고, 중국에서는 한국이 일본과 묶인다. 어느 쪽에서도 한국은 독자적인 주체로 다뤄지기보다는 “비-우리 영역에 속한 어느 편”이라는 방식으로 주변적으로 타자화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한국은 단독으로 이해되기보다는, 항상 비교 집단 속에 포함되어야 설명 가능한 부속적 존재로 취급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中韓がまた発狂した”라는 문장은 단지 혐오 표현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존재가 독립된 주체가 아닌 ‘두 개의 타자(中+韓)’라는 묶음 속에 배치된 뒤 조롱의 재료로 소비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때 한국은 ‘한국 그 자체’로 인식되기보다, “중국 옆에 세워야 조롱의 효율이 높은 대상”이 되어버린다. 나는 이 구조 속에서 단순한 언어적 위화감을 넘어, 하나의 정체성이 지워지는 감각을 느낀다.


‘중한’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느끼는 불편함은 단지 단어 하나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한국이 역사적 관성 속에서 무심히 묶이고 병렬 처리되며 독자성을 빼앗기는 순간을 목격한 데서 오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느 쪽에서든 한국은 종종 “우리와는 다른 어느 쪽”에 끼워 맞춰지는 “꼽사리”로 사용된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누군가의 인식 속에서 “중한” 혹은 “일한”이라는 묶음의 일부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한국은 여전히 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 혹은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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