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김밥을 젓가락으로 먹으면 이상한가?

규칙을 위한 규칙, 융통성 없는 일본

by 쿨파스

일본에서 살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언제나 정중했고 말투도 부드러웠으며 규칙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규칙들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규칙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규칙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놀라운 것은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제작한 선전 영상 「우리의 적을 알자, Japan」에서도 “일본에서는 규칙이 규칙을 위해 존재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제도가 미비해 누군가 곤경에 처했을 때, 제도가 금지하지 않는 한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는지를 먼저 보는 것이 맞다. 명확히 금지되어 있지 않다면, 가능한 한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내가 경험한 사고방식은 달랐다. 명확하게 허용되어 있는가, 전례가 있는가, 그리고 그 판단에 책임이 따르는가였다. 명확히 허용되어 있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 옳았고, 전례가 없으면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안전했다. 그 결과가 어떻든 그 선택은 문제로 남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경험이었지만, 이 구조를 선명하게 느낀 순간이 있다. 출장으로 도쿄 외곽 치바현의 호텔에 1박했을 때의 일이다. 대형 마트 이온에서 도시락을 사서 호텔로 왔는데, 나무젓가락을 깜빡 잊은 것이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살 때는 점원이 봉지 안에 자동으로 젓가락을 넣어 주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트까지 다시 가기에는 거리가 멀어 호텔 앞 편의점으로 갔다. 그냥 젓가락을 달라고 하기는 미안해서 삼각김밥 하나와 맥주 한 캔을 샀고, 계산하면서 나무젓가락 하나를 부탁했다.


점원의 답은 젓가락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삼각김밥은 젓가락 제공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손님이었고, 상품을 샀으며, 젓가락은 점포에 있었다. 위생 문제도, 비용 문제도, 규칙 위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지는 없었다. 젓가락 하나는 안 되지만, 필요하다면 50개 들이 나무젓가락 한 팩을 사야 했다. 나는 젓가락을 모으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공짜를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호텔에서 도시락을 먹고 싶었을 뿐이다.


그 자리에서 내가 삼각김밥과 맥주 구매를 취소하면 누가 손해일까. 젓가락 하나의 비용과 매출 하나를 잃는 손해를 비교하면 답은 명확하다. 그러나 일본식 사고에서는 그런 비교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규칙을 어기지 않는 것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규칙이 있는 지도 불분명하다. 젓가락으로 삼각김밥을 먹으면 안된다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다. 삼각김밥을 혼자 다 먹기 힘든 노인이나 어린아이한테 젓가락으로 삼각 김밥을 조금씩 떼어서 먹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편의점은 매출을 잃고, 고객은 불편을 겪지만 아무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이 경험을 인터넷에 공유했을 때, 일본인들 중 다수는 삼각김밥을 사면서 젓가락을 요구한 내가 이상하며 점원의 대응이 정당하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이후 일본의 편의점은 손님이 직접 젓가락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바뀌어, 지금은 이런 문제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


비슷한 구조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반복된다. 캐나다 운전 면허 재취득을 위해 토론토 일본 영사관에서 일본 운전면허증 번역본을 신청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의 면허증에는 4륜 면허와 함께 2륜 면허가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1주일 후 받아본 번역본에는 4륜 면허만 적혀 있었다. 나는 원본에 있는 2륜 면허 내용도 그대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특혜를 요구한 것도, 제도를 바꿔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원본에 적힌 사실을 정확히 번역해 달라는 요구였다.


영사관의 답은 “2륜 면허는 온타리오주와 면허 상호 인정 협정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번역본에 기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번역은 효력을 판단하는 행위가 아니다. 번역은 사실을 전달하는 행위다. 그 면허가 온타리오주에서 인정되는지 여부는 주정부가 판단할 문제다. 더구나 온타리오 주에서는 외국 2륜 면허 취득 이력이 있으면 재취득 시 최종 시험까지의 대기 기간이 면제된다. 온타리오주의 2륜 면허는 필기시험 합격 후 M1 면허를 받고, 1차 실기시험으로 M2 면허를 취득한 뒤, 1년 이상 지나 고속도로 주행 시험을 포함한 최종 M 면허 시험을 보게 된다. 외국 2륜 면허 취득 경험이 인정되면 이 대기 기간이 면제된다. 협정 여부와 무관하게 행정적 의미는 분명히 존재했고, 나는 그 사실을 영사관에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 줄은 끝내 빠졌다. 결과적으로 번역본은 원본보다 정보가 적은 문서가 되었다. 정확성을 요구했을 뿐인데, 그 요구는 규정에 없는 요청이 되었고 결국 거부되었다. 다만 내가 직접 번역하고, 면허증 번역 서비스가 아닌 일반 번역 공증을 요청하면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나는 불필요한 비용을 더 지불하고 1주일을 더 기다린 끝에, 2륜 면허가 기재된 번역본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두 사례는 전혀 다른 영역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구조는 같다. 젓가락을 주면 개인의 판단이 된다. 2륜 면허를 추가하면 혹시 모를 책임이 생기고 말단 직원인 자기는 판단하지 않고 전례에 따른다는 말이다. 상대방에게 곤란한 상황이 생기든 말든 나는 알 바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도와주지 않는 선택이 언제나 더 안전하다. 그 선택이 비합리적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도 규칙을 지켰다면 문제는 없다.


이 사고방식은 행정이나 일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기업, 제품, 서비스,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사용자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제품을 쓰면 “원래 용도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시장이 다른 반응을 보이면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규격에 맞지 않으면 대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객은 설명 없이 떠난다.


일본 사회는 판단하지 않는 대신 안정성을 얻었다. 실수는 적고, 책임 소재는 명확하며, 조직은 흔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레일 위에 있을 때만 잘 작동한다는 점이다. 레일 밖에 있는 사람에게 이 사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문이 열리지 않을 뿐이다. 이 구조 안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유연성이고, 그다음으로 사라지는 것은 책임감이다. 책임감이란 도덕적 무게가 아니라, 내가 판단했다는 흔적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작동한다. 판단하지 않았으니 책임도 없고, 책임이 없으니 비난도 없다. 다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만 조용히 빠져나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일본을 질서 있는 사회나 엄격한 나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본다. 규칙을 지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규칙 밖의 현실을 다루는 법은 끝내 배우지 못한 사회라고. 그리고 그 대가는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치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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