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ずるい」, 가미카제, 그리고 일본 사회의 우선순위
외국인들이 일본을 여행하며 가장 쉽게 감탄하는 것은 일본의 친절이다. 공손한 말투, 정중한 몸짓, 정확한 서비스, 그리고 정중한 사과. 이 장면들을 본 많은 외국인들은 일본인은 서로를 리스펙트하기 때문에 사회가 질서 정연하고 친절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 인식은 일본 사회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수박 겉핥기에 가까운 해석이다. 고객에 대한 친절과 인간에 대한 존중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착각은 언제나 ‘손님’의 시점에서만 일본을 바라볼 때 생긴다. 여행자나 소비자로서의 일본은 극도로 쾌적하다. 시스템은 나를 위해 작동하고, 사람들은 역할에 맞게 움직이며, 불편함은 최대한 제거된다. 그러나 이 친절의 이면에서 그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의 위치를 상상하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내가 일본에서 점원으로 일한다면 어떨까. 고객의 무례함에 반박할 수 없고, 원인이 내게 없어도 사과를 해야 하며, 매뉴얼에 없는 상황에서도 책임은 개인이 진다. 웃지 않으면 태도가 문제 되고, 침묵하면 공기를 망친 사람이 된다. 이 구조 속에는 상호적인 존중, 즉 리스펙트가 들어갈 자리가 거의 없다.
일본 사회에서 친절은 역할 수행의 결과다. 공손함은 감정이 아니라 규칙이며,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그래서 그 친절은 관계가 바뀌는 순간 즉시 사라질 수 있다. 손님일 때는 과도할 정도로 대우받지만, 점원이 되는 순간 그 친절을 제공해야 하는 쪽이 된다. 이것을 인간 존중의 증거로 착각하는 것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인간의 덕성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일본 아이들이 불만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ずるい(즈루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한국어로 정확히 번역하기는 불가능하다. “치사하다” “얄밉다”가 그나마 비슷하긴 한데 “즈루이”는 굳이 설명하자면 “다들 참고 있는데 너만 이득을 본다” “너 혼자 요령을 피운다” “너 혼자 집단 규칙을 어기고 빠져나온다” 같은 개인을 비난하는 말이다. 영어권 아이들이 불만을 얘기할 때 쓰는 It’s not fair처럼 원칙의 정당성을 묻는 말이 아니다. 「즈루이」가 겨냥하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 말의 본질은 불공정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집단 질서를 공유하지 않은 개인, 다시 말해 ‘반동 분자’를 고발하는 언어다.
이 점에서 「ずるい」는 매우 기능적인 단어다. 시스템을 문제 삼지 않도록 시선을 아래로 돌리고, 개인들끼리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다. 왜 이런 규칙이 존재하는지, 이 구조가 과연 합리적인지 묻는 대신, “너만 요령을 부렸다”는 비난이 오간다. 시스템은 전제가 되고, 질문의 대상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언어는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가 된다.
영어의 It’s not fair는 분배와 원칙을 문제 삼는 말이고, 한국어의 “너무해”는 감정적 납득의 선을 넘었음을 호소하는 말이다. “치사하다”는 상대의 인격, 관계 윤리에 중점을 맞춘 말이다. 반면 일본어의 「ずるい」는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시스템에 균열을 낸 개인을 공격한다. 그래서 일본 사회에는 일상적으로 “이 시스템이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언어적 통로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바로 2차대전 말기의 가미카제다. 흔히 가미카제는 광신이나 세뇌의 결과로 설명되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가미카제는 일본 사회가 평소에도 작동시키던 논리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였다.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개인의 생명을 자원으로 환원하는 사고, 개인의 존엄보다 질서의 유지를 우선하는 판단. 형식상 자발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선택지는 없었고, 거부는 개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이것은 개인의 광기가 아니라 구조의 귀결이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이 논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총알 대신 서류와 회의, 평가와 침묵이 개인을 소모할 뿐이다. 과로사, 무급 잔업, 내부 고발자 배제, 책임의 개인화는 모두 같은 축 위에 있다. 시스템은 언제나 유지되어야 하고, 개인의 보호는 그 다음 문제로 밀린다.
일본 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일본을 비난하는 것도, 미화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사회가 무엇을 최우선에 두고 무엇을 후순위로 미루는지를 정확히 보는 일이다. 일본은 시스템의 유지를 가장 위에 두는 사회다. 그리고 그 질서를 지키기 위해 언어, 미학, 도덕이 정교하게 동원된다. 「ずるい」는 그 가장 일상적인 표현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일본을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 사회를 오래 살아보고 역사를 들여다본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일본은 개인이 행복해지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사회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