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부리면 본전도 못찾는다

정의는 지속 가능해야 한다

by 쿨파스

나는 오랫동안 다문화주의의 지지자였고 지금도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차별하지 말자, 혐오하지 말자,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것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규칙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규범이었고, 그래서 기브 앤 테이크가 성립하는 사회적 합의였다. 이 최소한의 합의만으로도 사회는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실제로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달라졌다. 이상으로서의 다문화주의와 성소수자 담론은 공존의 의미에서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들이 점점 현실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인지적 한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인간은 복잡한 규범을 무한정 이해하고, 공감하고, 내면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두세 개의 문화와 규범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한계에 가깝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순간, 이해는 멈추고 피로와 반발이 쌓이기 시작한다.


사실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는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서로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섞이는 구조라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되 최소한의 룰만 공유한 채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방식에 가깝다. 내가 캐나다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었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함께 살아가지만, 서로 간의 교류는 놀라울 정도로 제한적이다.


나는 일본에 살면서 아시아·퍼시픽 지역을 총괄하는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문화와 요리를 접했다. 그러나 캐나다에 30년 이상 거주한 많은 한인 교포들은 여전히 한국 식당, 광동요리 중심의 무난한 중국요리, 베트남 요리 정도만을 선택한다. 인도, 중동, 커리비안, 필리핀 음식은 물론이고, 중국요리 중에서도 광동요리 외의 지역 음식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랜만에 만난 1980년대 이민 동기 한인과 함께 광동요리 식당에 갔을 때도, 그들은 늘 먹던 메뉴만 주문했다. 모르는 요리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불안의 대상처럼 보였다. 일본이나 한국보다 훨씬 다양한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토론토에는 본토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식당들이 지천에 깔려 있지만, 30년을 살아도 그런 곳을 굳이 찾아갈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유지된다. 이것이 캐나다식 다문화주의의 실체다. 적극적 교류가 아니라, 조용한 공존이다.


사회 규범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욕심을 부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하거나, 더 선한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데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하나의 익숙한 패턴을 떠올리게 되었다. 보안을 강화하겠다며 비현실적으로 복잡한 패스워드를 요구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해 포스트잇에 적어 붙인다. 회사 규정을 지나치게 촘촘하게 만들면, 직원들은 읽지 않고 그냥 서명해 버린다. 선의로 만든 장치가 오히려 목적을 파괴하는 역설이다. 사회 담론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래의 최소선은 명확했다. 폭력은 안 된다. 차별적 행동은 안 된다. 법 앞에서 모두는 평등하다. 이 원칙들은 짧고, 설명 가능하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지속 가능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보호는 인정으로, 인정은 가시적 지지로, 지지는 정서적 동참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공적 영역에서 중립이어야 할 제도와 교육은 특정 상징과 태도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라 ‘교정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특히 학교와 같은 공간에서 이 문제는 더욱 날카롭게 드러난다. 학교는 가치 실험장이 아니라, 사회의 최소 규범을 전달하는 공간이다. 누구도 괴롭힘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하다. 그 이상으로 호감과 참여를 요구하는 순간, 보호는 설득을 넘어 개입이 되고, 개입은 반발을 낳는다. 이 거부감은 악의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존중은 강제할 수 있지만, 호감은 강제할 수 없다.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하고,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매일 이용하는 은행과 관공서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내걸리고, 퀘어 퍼레이드에서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거리를 행진하는 것에까지 호감을 느껴야 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혐한과 헤이트 스피치를 하지 말라는 것과, 억지로 한국을 좋아하라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욕심을 부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


더 많은 공감, 더 높은 도덕, 더 완벽한 정의를 요구하다가 극심한 반발을 초래하고 그 결과 이미 확보한 최소한의 안전과 합의마저 무너뜨리는 상황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살아남느냐의 문제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자의 말이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자는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성인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감정의 순수함을 시험하지도 않았다. 대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제시했고, 그 선을 지키는 방법을 간결하게 남겼다. 그래서 그의 말은 체제와 시대를 넘어 살아남았다. 그것은 최대선의 윤리가 아니라, 최소선의 윤리였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필연적으로 각자의 욕심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공간이다. 완벽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능한 것은 오직 균형뿐이다.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반드시 마찰이 발생하고, 그 마찰은 결국 모두에게 손해로 돌아온다. 지속 가능한 사회란 갈등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갈등이 폭발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사회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속 가능한 모델의 열쇠는 더 많은 요구가 아니라, 더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원칙에 있다.


정의는 많이 요구할수록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지켜질 수록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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