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한국에 가면 돌을 맞는다?

풍요의 시대 이후, 일본 사회에 되살아난 혐한의 심리

by 쿨파스


80년대에 일본어를 독학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일본에서는 한국인을 차별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캐나다에 와서 살면서도, 또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에 가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나는 그것을 현실로 실감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말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정말 그런 차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그 실체를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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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토론토 대학 세인트조지 캠퍼스 한가운데에 있는 로버트 도서관(Robarts Library) 8층에는 동아시아 도서관이 있었고, 일본 관련 서적도 풍부했다. 나는 강의가 없는 날이면 거의 하루를 그곳에서 보내다시피 하며, 재일교포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일본어 독해력의 기초는 거의 그곳에서 다져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70년대에 쓰인 책들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식 통명을 쓰고 자라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믿고 살아오던 한 여고생이, 어느 날 부모로부터 자신이 사실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놀라움과 동시에,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감정에 묘한 설렘까지 느낀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축하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따돌림이었다. 그 순간 사회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너는 우리와 다르다.”


하지만 그 책들이 다루는 세계는 내가 살고 있던 1990년대보다 훨씬 이전의 이야기였다. 실제로 대학 시절 일본인 친구들 가운데 나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제 그런 일은 과거의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버블기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일본은 풍요와 쾌락의 시대였다. 해외여행, 소비, 대중문화, 연애, 개인의 삶이 사회의 중심 화두였고, 집단 정체성의 상처나 역사적 콤플렉스는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차별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자신감과 풍요라는 두꺼운 층 아래에 가려져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배부른 사회는 관대해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즉 80년대, 90년대는 일본의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 혐한이 일시적으로 가려졌던 시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의 태도에서 문제였던 것은 적극적인 혐오나 적대라기보다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무지였다. 예를 들어 만화 『맛의 달인』에는 한국에 출장을 온 일본의 젊은 기자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 노인을 보고 놀라자 그 노인이 “일본이 과거에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다는 사실도 모르느냐”고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기자는 그제야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인다. 많은 일본인들이 악의라기보다 무지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 무지를 바라보는 당시 한국인들의 인식도 비교적 담담했다.

“한국이 일본보다 못살았으니까 관심이 없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캄보디아나 라오스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식의 해석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공동 개최, 문화 교류,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성장,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 상승이 일본 사회의 시선을 바꾸고, 한국을 동등한 이웃으로 보게 만들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바로 그 시기를 전후해 혐한 담론이 오히려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유튜브가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이미 “한국에 가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맞지 않겠느냐”, “돌을 던지지 않겠느냐”고 진지하게 묻는 일본인들을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적지 않다. 이는 오늘날의 혐한이 단순한 온라인 왜곡의 산물이 아니라, 훨씬 오래된 심리 구조 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교토에서 만난 한 재일교포 여성의 말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일본의 조선인 차별이 얼마나 집요하고 잔인한지.”

나는 당시 캐나다에서 온 이민자 출신이었고, JET 프로그램이라는 제도적으로 보호된 위치에 있었으며, 일본 사회에서는 ‘외부의 손님’에 가까운 존재였다. 반면 그녀는 그 사회 내부에서, 세대를 관통해 이어져 온 배제의 구조를 몸으로 겪어온 사람이었다. 일본 사회는 외부인에게는 정중하고 세련되지만, 내부의 경계선 밖에 놓인 집단에게는 조용하고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는 이중성을 지닌다.


2000년대 이후 혐한이 폭발한 배경에는 역사 문제뿐 아니라 지위의 역전이 있었다. 반도체, 조선, 전자, 배터리,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한국은 더 이상 “가르쳐야 할 후진국”이 아니라 일본을 위협하거나 앞서는 경쟁자가 되었다. 과거에 지배하고 내려다보던 대상이 자신을 따라잡고 넘어서는 현실은 일본 사회의 집단적 자존감에 깊은 균열을 냈다.


그때 분출된 감정은 적대라기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저들은 우리를 미워할 것이다.”

“힘을 가지면 우리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여행 가면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돌을 던지지 않을까” 같은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오갔다. 가해의 기억, 상실된 우위, 그리고 장기 침체 속에서 무너진 자신감이 겹치며, 과거의 피해자가 강해졌을 때 자신이 당할지 모른다는 상상이 공포로 변한 것이다.


결국 일본 사회에서 나타난 혐한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식민지 지배의 기억, 재일교포에 대한 구조적 배제, 버블 붕괴 이후의 상실감, 그리고 한국의 급부상이라는 역사적 조건들이 겹쳐 만들어낸 집단 심리의 표출이다. 풍요의 시기에는 쾌락과 자신감 속에 잠들어 있었고, 쇠퇴와 불안의 시기에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깨어났다.


“도대체 한국이 일본에 무엇을 했기에 이토록 혐한이 생겼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래서 단순하다. 한국이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해서라기보다, 한국이 더 이상 아래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과거와 맞닿는 순간, 오래된 두려움과 방어가 혐오라는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들어 다시 혐한의 목소리가 한풀 꺾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 감정이 일종의 “최후의 발악”의 단계를 거쳐 이제는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과거에 내려다보던 대상이 더 이상 깔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현실을,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단계, 다시 말해 ‘순응’의 단계에 일본 사회가 도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적대와 부정의 국면을 지나, 지위의 역전을 현실로 인정하는 단계. 혐한의 약화는 단순한 유행의 소멸이 아니라, 한 사회가 오랜 우월감의 상실을 마침내 내면화하기 시작했다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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