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마더로부터 살아나기

글 쓰는 딸들(소피카르캥)에 대한 사적인 리뷰

by sunshine


상담을 하다보면 보호자로 따라오신 어머니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는 힘이 세다.”이다. 그들은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른 채 사용하고 있기에, 그들의 눈빛과 행동, 언어 하나하나의 파괴적인 힘들을 의식하기 바라며 하는 말이다.


이제는 껍데기만 남아 너덜너덜해진 수십 년 동안 나의 화두였던 어머니, ‘글 쓰는 딸들’은, 빅 마더를 피해 숨고 싶은 공간을 찾아 방황하고 저항하던 학령기, 순정소설을 쓰며 보냈던 청소년기의 나를 다시 불러냈다. 제목에서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느꼈지만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놓았을 것이라는 예측은 하지 못했다. 곁눈질하며 새초롬한 뒤라스의 눈길과 도전적이고 강렬한 시몬의 눈빛,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거만하게 아래로 내리깐 눈의 콜레트 앞에 나를 세워본다. 글 쓰는 딸들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압도 된다.


'끊임없이 집안의 천사를 없애며 글을 써야 했다'는 버지니아 울프는 제일 좋아하는 작가다. 그녀를 통해 고전에 입문하고, 고전문학을 읽으며 만난 20세기의 여성문학가들의 삶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 책은 대놓고 여자와 시대, 그리고 관계를 이야기 한다. 이야기의 구성에서 세 작가가 서로를 생각하거나 스쳤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하며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는 어색했지만 마이클 커닝햄의 디 아워스가 생각났다.


글 쓰는 딸들의 공통점은 같은 세기를 살았고 프랑스 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들을 자기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엄마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글 쓰는 여자를 비범하게 보는 시선이 있지 않은가. 하물며 100년 전 글 쓰는 딸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을까. 이데올로기를 관통하는 통찰과 정형화된 틀을 비트는 사고, 기성세대에 순응하지 않기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소피 카르캥은 그녀들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삶의 이유를 어머니에게 파괴당하지 않고 유일하게 자기를 지킬 수 있었던 방법이라고 말한다.


소피 카르캥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이전의 두 작품을 정신분석가와 작업했다고 밝히고 있다. 가족 안에는 여러 세계가 있다, 부부의 세계, 모녀의 세계, 부자의 세계, 형제, 자매의 세계가 있다. 글 쓰는 딸들은 모녀의 세계를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나는 읽으며 멋진 논문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곤 '20세기 여성 문학가 3인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본 대상관계 내러티브'라는 제목을 만들어 본다. 그만큼 나의 삶과 가까이 있는 주제이다. 모녀 관계는 엄마와 딸 두 여자의 인생 전체를 관통한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상호 간의 융합에 기반할수록 모녀의 갈등은 더 격렬한 성격을 띤다.
어머니와 융합 속에서 성장한 딸이 청소년기에 독립을 모색할 때 어머니와의 관계를 벗어나려면
생살을 잘라내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본문 중에서-



인간은 환경에 의해, 특히 생후 6년 이내의 경험에 의해 성격이 형성된다고 하는 것이 정신분석학적 견해다. 프로이트와 그 이후의 현대정신분석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심리성적 발달단계 이론을 기반으로 인간이해를 발전시켜 왔다. 생후 6년은 아이들이 양육자와 융합하고 성장하다가 개별화되기 시작하며 자아가 확장되는 중요한 시기다. 이 때 중요한 양육자와의 관계 경험은 심리적 자립을 돕고 성적역할을 획득하면서 개인이 전 생애동안 타인을 지각하고 이해하며 관계를 형성하는데 기본 틀로 작용된다.


인간은 다른 포유류 동물과는 달리 태어나면서 자율성을 갖지 못한다.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관계의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본능이라 할 수 있겠다. 영유아가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엄마와의 융합이다. 내가 그녀가 되는 것이다. 이때 엄마는 아이와 융합하면서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심리적 탄생을 꾀할 때 이 권력으로부터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자녀와 너무 밀착되어 있는 엄마는 그게 쉽지 않다. 마리 도나디외는 양면적인 사랑으로, 프랑수와즈의 지배적인 사랑으로, 시도의 융합하는 사랑으로 권력은 폭력이 된다.


세상에서 차별받았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세상 모두한테 사랑받는 방식으로 복수한다.


정서적인 폭력 속에서 자란 아이는 스스로를 탐닉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자신을 내던지며 존재함을 확인하고자 한다. 자기로 설 수 없었던 아이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강박적인 삶을 살며 심리적 탄생을 꾀한다, 이 강렬한 에너지는 뒤라스, 시몬, 콜레트의 경우와 같이 폭발적인 힘을 갖는다.


자기 삶의 미해결된 과제인 결핍을 해결하고자 했던 세 어머니가 있다. 딸이라는 이유로, 가난의 이유로 외면되었던 그녀들의 유아기적 욕구는 깊은 심연에 억압된다. 결혼과 출산은 그녀들의 미해결된 과제를 해결하고 싶은 소망이 심연으로부터 떠오르는 계기가 된다. 자녀 중 첫째라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결핍을 채워줄 것이라는 환상을 주는 인물에게 에너지를 쏟는다. 그리고 통제와 조정으로 소유를 지연시킨다.


엄마가 가까이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아이가 원할 때가 그렇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아이는 엄마를 원한다. 의존이 필요할 때다. 마거릿 말러는 이때를 정상적 공생의 시기라 정의했다. 그렇지만 서서히 분화가 시작되며 아이는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분화를 시작한다. 아이에게 이 과정은 매우 불안하고 두려운데, 저마다의 기질이 다르기에 엄마에게서의 분리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유연한 엄마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얼마 전, 딸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에 마음이 싸늘해졌다. 제목이 ‘모녀의 세계(김지윤)’였는데, 아이가 이 책을 왜 선택했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읽는지,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내 어머니와의 관계가 나의 딸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 면이 있을 터이다. 딸은 또 딸의 방식으로 빅마더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가겠지.


나는 엄마와 잘 지내지 않는다. 어려서는 사랑 받고 싶어서, 결혼 후에는 다른 세상의 딸들과 같고 싶어서, 아들 같은 딸의 역할을 수행했다. 50이 넘어서 “이제 예전처럼 엄마를 돌보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을 하고 삶을 휘젓는 엄마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남편이, 딸이, 아들이 나를 ‘나’로 볼 것이라는 신뢰가 생긴 후에야 가능했다. 심리적 탄생을 50이 넘어 실현했다.


하지만 여전히 5월은 반갑지 않다.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벚꽃이 지면, 나의 봄도 막을 내린다. 4월의 어느 날 남동생은 엄마의 소식을 알려왔다. 지난해부터 통증이 있던 갈비뼈의 원인이 폐암이라고 한다. 엄마와의 작별이 어떨지 상상하곤 했는데, 이제 내 앞에 성큼 다가왔다. 엄마는 이제 내가 태어난 곳 이상의 의미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비난하고 누군가는 부러워한다. 나의 시작이었던 그 품, 나를 아프게 했던 시간과의 작별은 어떨까. 위암 진단을 받은 병약한 엄마를 보낸 시몬, 장례식에 가지 않은 콜레트의 모습은 내가 상상하던 미래의 모습이다.


글 쓰는 딸들은 빅 마더를 뛰어넘어 자기다움을 추구했던 세 여성의 삶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라 좋았다. 마치 내가 엄마와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풀고 이해하며 살 수 있었던 것과 닮아있다. 어떻게 작별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에게 글 쓰는 딸들은 엄마와 시작하고 함께하며 지냈던 것처럼 작별 또한 그렇게 존재하면서 가라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