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무게

더 리더 : 책 읽어 주는 남자

by 달콤해진

영화 :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예루 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한나 아렌트)


처음 한나 아렌트의 악의 보편성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가 생각났다. 영화의 시작은 여자 주인공인 한나 (케이트 윈슬렛)와 남자주인공 마이클 (다비트 크로스)의 만남과 사랑이야기로 시작된다. 자신이 문맹임을 숨긴 한나는 마이클이 매일 책을 읽어주길 원했다. 한창 사춘기 나이의 마이클은 자신이 읽어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웃고 우는 그녀를 위해 매일 책을 읽어주며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던 중 한나는 돌연히 이직을 하며 마이클의 삶에서 사라지게 되고 그는 절망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전범 재판의 피고인석에 있는 한나를 보게 된다. 그녀가 유대인 수용소에서 친위대 교도관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한나는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보내질 사람들을 지명하는 일을 했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냐는 판사의 질문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냐고 판사에게 반문한다.


그녀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건은 그녀의 책임 하에 있는 300명의 유대인들이 임시로 묵었던 교회에 불이나 갇혀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불이 난 사실을 알고도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묻는 판사에게 그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었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판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내뱉는 그녀의 말들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의 진술과 닮아있다. 자신은 그저 신념에 따라 주어진 책임을 다 했을 뿐이라는 말.


한나는 자신이 문맹임을 밝히면 형량을 줄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종신형에 처해진다.



마이클은 예전에 한나에게 읽어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것을 녹음해서 그녀에게 보낸다. 교도소에서 한나는 책을 빌려 녹음과 비교해 가며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마이클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한나의 출소를 앞두고 그들은 다시 만나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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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많이 했어요?”

-“재판 전에는 한 번도 옛날 생각 안 했어.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


“지금은요? 지금은 기분이 어때요?”


-“내 기분은 중요하지 않아. 내 생각도 중요하지 않고, 죽은 사람은 죽은 거니까.”


“아무것도 배운 게 없군요.”


-“배웠어, 꼬마야. 읽는 법을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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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은 한나의 출소를 준비했지만 이 만남이 그녀에게는 마지막 작별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남은 재산을 피해자가족에게 남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녀의 책들을 발판 삼아서 자살을 선택한다.


재판장에서의 한나는 양심의 무게보다 책임감의 무게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양심의 부재는 생각하기의 무능, 판단하기의 무능에서 비롯된다.

양심이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다. 그녀의 삶에는 그것을 길러 야만 할 여유나 이유가 없었을까? 자문해 봤다. 마이클에게 그녀는 분명 아픈 사람을 보살펴주고 소박한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리는 순수하고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그로 인해, 글로 인해 양심이라는 무게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목숨으로 책임을 다 했다.


어찌 보면 안타깝지만 정답같이 느껴지는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결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예루 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양심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문명화된 나라들의 법에서는 비록 인간의 자연적 욕구와 성향이 때때로 살인의 충동이라 하더라도 양심의 소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살인하지 말라"라고 말한다고 추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히틀러의 땅의 법은 비록 살인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상적인 욕구와 성향에 반한다는 것을 대량학살 조직자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양심의 소리가 모든 사람에게 "너는 살인할 지어다"라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제3제국의 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악을 인식하게 되는 특질(유혹이라는 특질)을 상실했다. 수많은 독일인들과 많은 나치스, 아마도 엄청난 수의 그들은 살인을 하지 않으려는,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이웃을 죽음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하려는,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익을 취함으로써 이 모든 범죄의 공범자가 되지 않으려는 유혹을 분명히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맙소사, 그들은 그러한 유혹에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배워버렸다.” p226


우리는 <더 리더>에서의 한나와 같이 어떠한 연유로 결여되었던 양심을 배워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약한 인간이므로 양심을 지키려는 유혹에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더 잘 배우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사유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중 누구라도 평범하게 악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왕관의 무게만큼의 양심의 무게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