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랑 사람

따뜻한 데로 갑시다.

by 달콤해진

- 왕과 사는 남자


"원통한 새 한 마리가 궁중을 나온 뒤로

외로운 몸 그림자마저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매누나... “


- 단종의 자규시 중-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 맑고 선하고 단단한 눈과 마주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왕이 되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배되었지만, 그곳에서 다시 왕이 되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삶을 아는가?”


삶은 무엇으로 의미를 부여받는가. 삶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서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갖는다. 어린 홍위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올곧은 왕의 성품을 갖고 태어나서 왕으로 자라온 아이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던 사람들을 자책하고 자신을 포기하려 한다.


그렇게 힘없이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소년을 일으킨 힘은 그를 왕으로 한없이 걱정하고 믿고 따스히 보살피는 작고 순수한 마음들이었다.


유배된 왕을 보살피는 일을 하게 된 엄흥보는 왕에게 얘기한다.


“나리는 안 나약하고 안 어리석습니다”


그 선언이 어떤 것 보다 홍위에게 위로가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자신보다 자신을 더 위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나를 왕으로 믿어주고 보듬어 주는 따뜻한 마음에 그는 서서히 웃음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왕이 되어 주었다. 자신이 지켜야 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더 이상 어리고 힘없는 어린 왕이 아니었다. 진정한 왕의 위엄으로 빛나는 눈빛, 내 사람들을 지키고야 말겠다는 절절한 결의로 그는 말한다.



“더 이상 나로 인해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그대는.. 아닌가?”




무엇이 진정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가?

나는 뜨거운 눈빛을 한 홍위가 차가운 빗속을 뚫고 나아가며 하는 독백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이제야 내가 왜 아직까지 이승에 남아있는지 알 것 같다. 그들이 잔혹하게 휘두르는 권력으로 조선을 다스리게 된다면 앞으로 조선의 역사는 평화로운 날들이 없게 될 것이다. 내가 비록 이 싸움에 실패하더라도 우리가 순순히 그들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 기록되어야만 한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위해 살아간다. 내가 주어진 이 삶에서 사람으로 태어나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그 소명을 찾고 그 길로 향해 나아가는 길 자체가 삶의 의미이고 삶의 가치이다. 어떤 것에 삶의 가치를 두는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내가 나답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이다.


자신의 죽음마저는 잔혹한 그들의 손이 아닌 자신이 선택하고 싶다는 절절한 의지.


“나으리… 왜 그러셨습니까..

왜 혼자 짊어지셨습니까?”


“부디 그대 손으로 강을 건너게 해 달라.”


차가운 강에 떠 내려온 왕을 안고 엄흥보는 이렇게 말한다


"차갑지요? 나갑시다.. 따뜻한 데로 갑시다.."


우리는 매 순간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조금은 더 선하고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런 선한 마음들이 겹겹이 쌓여 240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냈고, 결국 그 어린 소년을 ‘단종’이라는 진정한 왕의 이름으로 역사에 되찾아준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따뜻한 데로 머물기를 간절히 바라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내 비록 보잘것없는 호장이나, 왕의 마지막 가는 길 만큼은 외롭지 않게 할 것입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


- 엄흥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그의 마음이다.


#왕과사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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