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콩나물 무침, 멸치조림, 고추, 깻잎, 오이, 호박볶음, 열무김치 등 오늘도 역시나 점심으로 먹는 반찬들은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점심도시락을 싸기 시작한 지도 어언 3년 여가 된 듯하다.
몇 년 동안 회사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보니 때로는 입맛에 안 맞을 때도 있고 조금이라도 입에 맞는 음식이 나오면 꼭 과식을 하게 되는 것이 싫어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끼리 한 두 번 재미 삼아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아주 가끔 회사 식당메뉴가 꽤 괜찮은 경우나 집에 만들어갈 식재료가 하나도 없거나 밖에 나가 먹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도시락을 싸가지고 출근을 한다.
그렇게 여럿이 도시락을 먹다 보니 희한하게 상대방의 가정사도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그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음식도 어렵지 않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쌀을 씻고 밥을 지어 도시락통에 밥을 담아주는 남편이 있는 집은 나 포함 두 집이고 단골 반찬가게에서 파는 김치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집에 항상 그 집의 김치가 있다는 직원의 남편은 달달한 제육볶음을 만들어서 김치와 함께 반찬으로 싸주곤 한다.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시어머니를 둔 직원은 반찬이 항상 넘쳐난단다.
일주일에 한 번 시댁에 방문해서 반찬을 가져오거나 그도 어려울 때면 시아버님을 통해 반찬을 들려 보내는 어머니 덕에 냉장고가 빌 틈이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마냥 부러운 우리는 행복에 겨운 소리 한다며 가끔 면박을 주기도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그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음식의 양이 어마어마한 것은 사실이다.
닭볶음탕, 갈비탕, 청국장, 꽃게탕 등등 우리가 집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음식부터 밀가루를 묻혀 구운 생선, 양념을 다시 해서 만든 쌈장, 간 마늘과 쪽파, 통깨 잔뜩 뿌린 간장에 참기를 살짝 둘러 상추쌈 먹기 좋게 만든 간장 양념... 하다못해 과일까지 종류별로 다양하게 냉장고가 채워지다 보니 그 직원의 고충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마는~~~~~ 이게 무슨 복에 겨운 소리란 말인가.
아무튼 요즘은 도시락 먹는 재미에 회사 온다는 말이 장난말이 아닐 정도로 그 재미에 푹 빠져있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무척이나 즐겁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각자의 집에서 만들어온 형형색색의 반찬들을 보고 있으면 뿌듯한 마음마저 든다.
그렇게 도시락을 먹은 후 마지막으로 우리가 빼놓지 않는 후식이 있다.
바로 누룽지다.
1리터 텀블러에 누룽지 몇 줌을 넣고 뜨거운 물을 가득 부어놓으면 주 메뉴인 도시락을 먹는 동안 딱 알맞게 부드러워진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계절에 먹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지금은 밥만 먹고 누룽지를 건너뛰면 제대로 한 끼를 먹지 않은 듯 해 아쉬울 정도이다.
이 누룽지도 물론 그 직원의 어머니가 항상 해주신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그렇게 건강하게 밥 한 끼를 먹고 나면 속도 편안하고 소화가 되는 것도 부담이 없다.
밭에서 나는 재료들로 반찬을 만들 때는 기름기를 빼는 경우가 많기에 조금 과식을 한다 해도 위에 큰 미안함이 없다.
작년 여름에는 가지와 호박잎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직원의 친정아빠가 직접 농사지은 가지로 양파를 곁들여 만든 가지볶음, 가지 무침 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고 역시나 밭에서 따온 호박잎에 흰 밥을 얹고 맛있게 찐 걸쭉한 된장을 듬뿍 한 수저 올리고 먹으면 입안에 가득 퍼지는 그 향과 호박잎 씹히는 감촉이 얼마나 좋던지.
물릴 만도 하건만 그 여름이 다 가도록 그 두 가지 재료는 우리 오감을 깨워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 일등공신이 되었다.
내가 자주 만들어가는 반찬은 집에서 기른 콩나물로 만든 콩나물 무침, 누룽지와 궁합이 잘 맞는 진미채 오징어 볶음, 무 조림, 두부조림 등이다.
조금 특별한 어떤 날의 갈비, 김밥, 잡채 반찬을 보며 '오늘 무슨 날이야?' 묻기도 하고 그날이 그 집의 누군가의 생일이고 기념일인 것을 알기도 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반찬의 종류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여름이면 각종 야채나 나물반찬 들로 식탁이 차려지고 겨울이면 고등어조림이나 청국장, 된장찌개 등 구수한 국물들이 몸과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
요즘은 제법 도시락 먹는 직원들이 많아져서 옆 테이블을 흘깃대며 서로서로 메뉴를 관찰하기도 한다.
적당한 그릇에 닭가슴살, 아보카도, 양배추, 잡곡밥 조금, 셀러리, 그 위에 치즈를 녹여 간을 맞춘 건강식 식단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한번 해 봐야겠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네는가 하면, 서브웨이 햄버거에 떡볶이, 컵라면, 컵밥 등을 먹는 젊은 직원들을 보면서는 우리도 가끔 금요일에 배달시켜 먹자며 군침을 흘리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락을 먹는 시간 은 그저 점심 한 끼를 때우는 단순한 일이 아닌 단조로운 우리의 직장생활에 큰 활력을 주고 웃음을 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직장생활의 고충에 공감하고 때로는 가정사를 얘기하며 서로 지지해 주고 위로해 주며 우리는 밥 한 끼와 함께 하는 우리들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올여름 우리들의 식탁은 어떤 얘기들로 나눠지고 채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