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오기 전 아이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의 추억 꺼내보기
아이가 어릴 적에 야심 차게 계획한 여행 계획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부터 시작하는 '유럽 도장깨기'였는데 생각보다 시작이 쉽지 않았다. 아이와 부모, 달랑 세 식구인데 서로 시간 맞추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던 초겨울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아 TV 리모컨을 들고 여기저기 채널 돌리기를 하고 있던 중에 한 홈쇼핑 채널에서 '스페인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라며 여행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유럽 패키지 상품은 별로라던데'라는 잠깐의 생각을 했지만, 비교적 저렴한 여행경비와 스페인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포르투갈까지 냅다 돌고 오는 엄청난 여정에 마음이 이끌려 구매 버튼을 누르고 예약을 해버렸다. '그래, 그냥 지르고 가자!'. 다음 날 아침, 간 밤에 일어난 엄청난 여행 일정에 남편은 황당해하고 아이는 학교 결석하며 스페인에 간다고 만세를 불렀다.
결국 남편은 일정 조율에 실패했고, 아이와 단둘이서 스페인 여행길에 올랐던 그날.
'패키지 여행은 안 가는 거다, 사춘기 아이와 단둘이 여행하는 모험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11월의 스페인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가격이 저렴한 거다, 장거리 비행을 경유해서 가면 힘들어서 안된다, 스페인을 벼락치기로 볼 거면 아예 안 가는 게 낫다' 등등 주위의 다양한 걱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인천공항을 통과해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가이드가 시작부터 같이 가는 진정한 패키지여행이었다. 패키지여행의 장점이라면 바로 '가이드'가 함께 해 준다는 점. 다시 말하면 길을 잃고 헤매는 일에 대한 걱정은 시작부터 버릴 수 있다는 그 장점 하나에 '저렴한 중국 식당 음식, 유스 호스텔 수준의 숙박 시설, 분명히 마주할 반 강제 쇼핑타임'을 감내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패키지여행을 처음 해본 혼자만의 착각이었고, 스페인도 아니고 터키 이스탄불에서 경유가 아닌 입국 라인으로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졸지에 국제 미아가 되었다.
아이는 너무나 당황했고, 우리 뒤에 붙어 오던 모녀 일행도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경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서둘러야 했다. 이스탄불 공항은 처음 와보는 곳이라 낯설기도 했고, 이미 8시간 이상을 비행기에서 쏟아부은 체력은 돌아오질 않았다. 다급한 마음은 영어 울렁증을 일시적으로 극복하게 해 주는 놀라운 기적을 발휘했고, 미아 일행 책임자가 되어버린 막중한 임무를 완수하고 결국 가까스로 스페인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아이는 그 많은 스페인 여행기 중에서도 이 날의 무용담을 가끔 꺼내곤 한다. 그때 얼마나 놀랬는지, 좌충우돌 길을 찾아가는 그 길이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그리고 가까스로 비행기에 올랐을 때의 희열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등등 눈 속에 기쁨이 가득하다. 어쩌면 여행의 묘미는 이런 일들이지 않을까? 좋은 호텔, 정해진 스케줄, 융숭한 대접도 훌륭하지만 지도를 찾고 헤매며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그 긴장감이 결국 기억에 오래 남아 '내가 해냈다'는 자존감의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30년 만의 폭우와 강풍으로 도시 전체가 홀딱 젖어 있었다. 물론 가로로 쏟아지는 빗줄기 덕에 우리도 홀딱 젖었긴 마찬가지였다. 비행기에서 기면증 환자 같은 어설픈 잠을 자고 이스탄불에서 말도 안 되는 달리기를 하고 다시 네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내려 보니 다시 저녁이었다. 시차 덕분에 하루를 번 셈이 되는데, 그 덕분에 17시간 가까이 깨어 있어야 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 했다. 현지 가이드 분은 의욕이 넘치셨고 결국 내리자마자 폭우 속, 늦저녁의 바르셀로나 투어가 시작되었다.
비 오는 늦저녁 바르셀로나의 이국적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가로등이 너무 이쁘다!"
피곤하고, 졸리고, 배고프고, 춥고, 운동화가 젖어서 짜증 난다고 말할 줄 알았던 아이의 입에서 첫마디가 '가로등이 이쁘다'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엔틱 한 가로등이 돌 담벼락을 비추고 있는데 떨어지는 빗방울을 비추며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아이는 공부와 숙제가 있는 곳에서 벗어났다는 희열과 생애 첫 유럽에 발을 딛었다는 환희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여행의 시작은 이미 성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는 계속되었고, 결국 하나 가져간 운동화는 완벽하게 젖어서 지면에 닿을 때마다 물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호텔에 대한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던 탓인지, 너무나 피곤했던 탓인지 알 수 없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고, 푹신한 침대가 따뜻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완벽한 숙소라는 기분 좋은 생각이 들었다. 외부와 달리 건조한 실내 컨디션 덕에 젖었던 외투와 운동화가 밤사이 보송하게 말라서 다음 날 아침 산뜻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아이는 그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어릴 때 데려간 유명 호텔의 휴양지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비 오는 바르셀로나의 작은 호텔은 감동의 밤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아침에도 알아서 일어나 다음 여행의 채비를 했다.
아이가 어릴 때, 우리는 주로 휴양지로 여행을 갔다. 자주 외국을 나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좋은 날씨, 좋은 여행지, 편안한 숙박시설을 고르는데 최선을 다했다.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해서 좋은 이벤트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벤트를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희생했다. 가끔은 주말을 헌납하기도 했고, 야근은 말할 것도 없이 반복했다.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페인 여행길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어릴 때 떠났던 여행 중에 제일 즐거웠던 여행은 어디야?"
발리? 치앙마이? 오키나와? 제주도? 괌?
뜻밖에도 아이는
"엄마랑 아빠랑 저녁 먹고 뛰어놀던 벚꽃 핀 한강 고수부지, 그리고 거기서 먹었던 버블티가 최고였어."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교차했다. '아이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라고 했던 그 모든 일들은 어쩌면 네가 아닌 '나'를 위한 일이었지 않았을까? 아이는 작은 일상, 소소한 상황들에서 웃고 울던 기억으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밤새 구멍 난 하늘에서 쏟아붓듯 했던 강한 빗줄기는 새벽녘에 잠잠해지고, 오전 자유 여행시간에는 완전하게 개인 맑은 하늘 아래 바르셀로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주일 미사 종소리가 울리는 바르셀로나 대성당에서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일과 육아, 아이와 나, 가족의 행복과 일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여행은 그렇게 사람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