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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조각 이불

무선 청소기와 인공 지능

by 가을산

오랫동안 줄 달린 진공청소기를 썼다. 긴 줄에 달린 청소기를 끌다 방문 앞에 이르면 문턱이 까질까 봐 청소기를 들어서 넘겼다. 좁은 아이 방이나 식탁 주변을 청소할 때는 뒤에 따라오는 청소기가 옷장이나 침대 모서리, 식탁 아랫부분이나 의자 다리를 들이받지 않도록 조심했다. 무거운 청소기를 끌며 이 방 저 방, 거실, 부엌, 베란다까지 한바탕 순시하고 나면 여름은 말할 것도 없고 겨울에도 땀이 줄줄 흘렀다.

아이들이 커서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 오니 새로운 고충이 생겼다. 청소하다가 플러그를 빼서 다른 콘센트에 꽂기를 두 번은 해야 하고 끝의 방과 베란다까지 하려면 세 번이나 해야 했다. 전에는 한 번으로 다 되었는데. 게다가 우리 집 콘센트는 구멍이 뻑뻑하여 플러그가 잘 안 꽂힌다. 아이 방 침대 옆에 붙은 콘센트 쪽으로 플러그 쥔 손을 밀어 넣고 온 힘을 들여 꽂자면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청소기를 돌리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밖에 돌아오지 않는 그 일이 그들에게는 아주 힘든 모양이었다. 늘 바쁘거나 게으르거나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흔히 제 순서를 잊었고 남편도 당번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안 했다. 말해줘도 쉬어야 해, 라며 하지 않기도 했다. 누구는 쉬고 싶지 않은가?

아무리 집이 더러워도 개의치 않는 아니, 느끼지도 못하는 식구들에게 자꾸 뭐라 해봤자 분란만 일어나고 내 정신 건강만 나빠지니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한 청소는 내 몫이라 여기고 더는 청소기 좀 돌려 달라고 사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빗자루를 들지언정 다시는 줄에 매여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줄 없는 청소기를 찾아 나섰다.

무선 청소기가 나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저 혼자 청소한다는 로봇 청소기에 혹했는데 사용해 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만족도가 낮았다. 청소기가 원형이라 모서리 부분은 청소가 안 된다, 조금이라도 높으면 못 올라간다, 안 보여서 찾아보면 현관 끝에서 떨어져 신발 위에 엎어져 있다 등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100만 원도 넘는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우 만족한다는 사람을 한 명 만났는데 핸드폰으로 구역을 정해주고 나갔다 들어오면 깨끗하게 다 청소해 놓아서 좋다고 했다. 그 청소기는 200만 원에 육박했다. 고작 청소기 하나를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사고 싶지는 않아 그 후론 관심을 접었다.

이제 다시 알아보니 30만 원대 로봇 청소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성능 좋은 대기업 제품은 아직도 200만 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가격 대비 만족도는 크게 향상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청소기에 지급하려는 금액의 상한가도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한 외국 브랜드의 무선 청소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너도나도 쓰고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검색해 보니 정말로 무게가 가볍게 나왔다는 최신형 제품은 품절이며 게시판은 언제 새로 나오느냐는 문의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인데. 둘러보니 이 청소기 못지않게 좋다는 10만 원대의 무선 청소기도 여러 개 있었다. 저 외국 브랜드의 청소기는 너무 무거워서 손목이 아파 다른 걸 쓴다는 후기도 보였다. 나도 손목이 약해서 가벼운 청소기를 쓰고 싶다.

언니는 일찍부터 로봇 청소기를 썼는데 지금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비싼 청소기를 왜 안 쓰느냐고 했더니 배터리 수명이 다 되었기 때문이란다.

무선 청소기의 배터리도 핸드폰의 배터리처럼 시간이 갈수록 성능이 떨어져 대략 1년 안에, 자주 쓰면 6개월도 안 돼 갈아줘야 한단다. 대기업 제품인데 1년 만에 2개가 한 세트인 배터리가 방전되어 20만 원이나 주고 새로 사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린 사람도 있다. 이런 사정이라면 10만 원대 무선 청소기를 산다고 해도 갈수록 배터리 구매비가 더 들게 된다. 이게 말이 되는가?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기술이 그렇게 어려울까? 동물 복제나 인공 지능을 만드는 일보다 더? 그렇게 정밀하고 복잡한 작업도 해내면서 단순히 오래 가기만 하면 되는 배터리를 못 만들다니 이해할 수 없다. 2%밖에 남지 않은 핸드폰의 배터리도 한 시간이면 100% 충전되어 하루 종일 쓸 수 있다. 전기차는 한 번 충전하면 몇 시간, 수백 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다. 그런데, 무선 청소기는 충전하는데 서너 시간에서 다섯 시간까지 걸리는데 강하게 흡입하는 단계로 쓰면 10분 만에 방전된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제아무리 대단한 인공 지능이 탑재된 로봇 청소기라 하더라도 배터리가 없으면 가지고 놀 수도 없으니 장난감 로봇보다 못하다. 로봇 청소기를 선물한 아들이 다시 배터리까지 선물해주지 않는 한 언니는 로봇 청소기를 쓰지 않을 것이다.

무선 청소기에 쓰이는 배터리의 성능이 빠르게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계속 배터리를 팔려고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아닌 게 아닌지도 모른다. 일정 연한이 차면 제품이 고장 나게 하는 게 요즘 제조업계의 비밀 아닌 비밀이라는 말을 들었다. 얼마 전 ‘애플’사에서 아이폰이 2년이면 고장 나도록 어떤 바이러스를 집어넣으려다 발각되었다고도 한다. 모두 사실이라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지구에서 제정신으로 할 짓인가?

집 밖으로 전화기를 가지고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꿈같던 그 일은 이루어진 지 오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전화기를 손에 들지 않고 운전하며 통화할 수 있게 된 것도 지나친 기술이다. 주의력이 분산되어 갑자기 선을 넘어오는 집채만 한 트럭을 피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전화기는 컴퓨터나 오락기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여행 가서도 회사 일하고 식구들이 함께 있어도 각자의 전화기에 코 박고 있는 미래는 단 한 번도 꿈꾸어본 적 없다. 원하지 않은 미래는 앞으로도 올 수 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의 전화번호도 못 외우게 되었는데 인간의 뇌를 대신하는 기계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인공 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종국에는 인간이 그것에게 정복당할 거라고 많은 전문가가 예측한다는데 왜 개발을 멈추지 않을까? 축구 하는 인공 지능, 골프나 발레 하는 인공 지능 따위 필요 없다. 기술이 정녕 인간을 위해 있다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하며 으스대기 위한 것 말고 보통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것 이를테면, 무선 청소기용 오래 가는 배터리나 좀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나는 일주일째 청소를 못 하고 아직도 쓸 만한 무선 청소기를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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