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불만이 많았다. 너무 흔하고 예쁘지 않아서다. 내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우리나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친구의 친구나 언니나 동생 등 주변에서 나와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은 많고 많았다. 새 학년을 맞아 새로 편성한 반에 가보면 매번 나와 이름이 같은 친구가 서너 명씩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식 이름을 성의 없이 지었다며 아버지를 원망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옛 선비들처럼 근사한 호를 지어서 제2의 이름으로 삼아야지, 했는데 아직도 못 지었다. 호를 짓고 음풍농월할 여유가 없었던가.
온 라인 세상이 열려 본명 대신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만들어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계신다면 ‘어디, 네 마음대로 한번 지어봐라.’ 했을 것 같다. 그래, 내 마음에 쏙 드는 이름으로 지어야지, 했는데 의외로 쉽지 않았다. 예쁜 말을 골라 지으면 되려니 했는데 예쁜 말이 잘 떠오르지도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좋아했더라, 하며 머릿속을 헤집어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겨우 찾아낸 어떤 말은 좋기는 하나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별명은 아바타처럼 어느 정도 나를 나타내는 것이니 나와 너무 다른 느낌을 주는 걸 쓰기는 망설여졌다. 아무리 좋은 말이면 뭐하나. 내가 아닌 것 같은걸. 어찌어찌 만들었는데 그 별명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어 못 쓴다고 하면 그간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이름 짓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내 이름 내가 짓기’를 해보니 그제야 아버지가 이해된다. 오빠가 새로 태어난 자식 이름을 짓느라 고민하는 걸 보고 ‘애를 낳는 것보다 더 힘들어하네’ 했던 나도 우리 아이 이름을 짓느라 출생 신고 기한인 한 달 내내 끙끙거렸다. 아버지도 내 이름을 두고 몇 날 며칠 그렇게 고심하셨을 테니 이제 원망은 그만하기로 했다.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면서 또 이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적당한 필명을 찾아 다시 머리를 싸맸다. 독창적인 이름을 짓기 어려우니 중복되는 필명을 쓸 수 있어 다행일까? 내가 생각해 낸 필명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좋아한다. 사람들은 봄, 미소, 햇살, 별, 꽃 같은 자연을 나타내는 단어를 좋아하고 따뜻한, 정겨운, 맑은 같은 형용사를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이거다, 하고 가보면 반드시 누군가 먼저 와 있다. 그 중 ‘미소’가 특별하게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오래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아침저녁으로 ‘태지야’ 하고 아이를 부르는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태지는 대여섯 살쯤 된 남자아이였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그 이름이 몹시 이상했다. 희귀하나 이상한 이름보다 차라리 내 이름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그 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3인조 그룹이 등장하여 온 나라를 들었다 놓으며 한국 가요계의 새 역사를 열게 될 줄은 몰랐다.
거기서 놀던 아이들 가운데 ‘미소’가 있었다.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이름이 ‘미소’라니, 이렇게 예쁜 이름이 있을까, 감탄했다. 태지의 엄마는 더러 보았지만 미소의 부모는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자식에게 ‘미소’라는 이름을 선물한 부모는 시인이나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그때의 감동이 남아 ‘미소’가 되고 싶었나 보다.
먼저 ‘미소’를 검색해 보니 ‘미소’나 앞뒤에 다른 말이 붙은 ‘미소’를 필명으로 쓰고 있는 사람은 스무 명이 넘었다.(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도 아주 좋아하므로 쓰기로 했다. 독특하나 나와 어울리지 않고 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닌 이름보다 나으니까. 나는 미소라는 말을 듣거나 보면 미소짓는 이미지가 떠올라 자연스럽게 양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그게 좋고, 다른 사람들도 ‘미소’라는 필명을 보며 그랬으면 하는 바람에서 ‘미소’를 선택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쉬운 게 미소짓기가 아닐까 한다. 어릴 때 학교 갔다 오는 길이면 이웃집 대문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날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 나도 따라 수줍게 웃었다. 보얀 머리를 인 할머니가 눈을 가늘게 하고 온 얼굴로 웃던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도 웃게 된다. 아무 대가 없이 웃어준 옆집 할머니처럼 나도 가족을 포함한 지구 사람들을 향해 자주 미소짓고 싶다.
미소 짓기는 이름 짓기보다 더 어려울지 모르나 내가 먼저 미소지어 나로 인해 상대방도 미소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미소는 미소를 부르니까. 내 글을 읽은 사람의 입가에 미소 한 점이 떠오른다면 나는 큰 보시를 한 것일 테다. 이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에도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힘을 모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고 싶다.
필명을 정해야 글도 올릴 수 있으니 ‘미소’ 로 시작하겠다.
위까지 쓰고 글을 올려야 했는데 못하고 한 달 만에 필명을 ‘가을산’으로 바꾸었다. 미소라는 단어는 여전히 좋지만, 사용자가 많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흔한 이름의 소유자로서 필명만은 흔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버릴 수 없어서다.
‘가을산’이 뜬금없는 이름은 아니다. 명리학을 조금 배웠는데 내 사주팔자에서 나는 물상이 산이다. 선생님은 사주 풀이를 해주며 태어난 달이 겨울이니 나는 겨울 산이라 했다. 사주에서는 11월 7일경인 입동 이후를 겨울로 본다. 지금은 양력 생일을 쇠지만 이전에는 음력으로 9월이라 10월 하순에 생일이 올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한 번도 생일이 겨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유난히 음력이 늦었던 해에 입동을 살짝 넘겨 태어났으므로 겨울 생이 되었다. 선생님은 겨울 산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 쓸쓸하다고 했다. 그때는 전문가만 산에 가니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려면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도 했다.
집에 와서 이야기하니 아이는 엄마 생일이 단풍 보러 사람들이 산에 제일 많이 가는 때라고 말했다. 그즈음 오색 단풍으로 물든 산이 고혹적이기는 하다. 12월이나 1월 같은 겨울은 확실히 아니다. 고독은 잘 견디지만, 가수의 운명도 부른 노래를 따라간다는데 내놓고 나는 쓸쓸한 겨울 산이오, 하고 싶지 않다. 기온으로 보나 풍성한 단풍으로 보나 내 생일 때를 가을이라 하여 안 될 것 없다 싶어(다른 사람도 가을이라 한다) 자신을 겨울 산 아닌 가을 산으로 자리매김하기로 했다. 특별난 전문성이 없어 사람들이 찾지 않을까 가을입네 하고 남아있는 단풍으로 사람들을 부르는 게 내 사주팔자일까?
‘가을산’도 쓸쓸한 느낌이 없는 건 아니다. 아이 친구 중에 ‘여름’도 있고 한 살 위의 학년에 ‘가을’도 있었다. ‘여름’은 괜찮았는데 ‘가을이’라고 하면 왠지 가을바람이 부는 듯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인생의 가을에 와 있는 내가 필명에까지 굳이 가을을 넣어야 할까 싶었다. 가을이라는 한 계절로 한정하는 것도 좋지 않아 사계절 무난하도록 ‘산의 미소’나 ‘미소짓는 산’으로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미소를 포기하기가 못내 싫은 모양이다. ‘미소’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미소짓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산’으로 한다면 짧게 가기로 하고 같은 필명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니 ‘겨울산’은 있는데 ‘가을산’은 없었다. 희소성 면에서 합격인 ‘가을산’으로 낙점했다. ‘미소’라는 필명을 정하는 과정에도 생각해 본 ‘산’은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버렸는데 도로 ‘산’으로 돌아왔다. ‘가을산’이다.
마음 한쪽에서 ‘그럼 미소는 이제 못 짓겠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산을 보며 미소지으면 되지.’라고 다른 한쪽에서 대답하는 소리도 들린다. 혹시 언젠가, 아무래도 ‘가을산’이 주는 쓸쓸한 느낌이 싫다며 ‘산의 미소’나 ‘미소짓는 산’으로 다시 이름표를 바꾸더라도 이 산이 그 산인가 벼, 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