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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전 사라진 한인 소녀

그녀의 이름은 샌프란시스코 제인 도우 #40

by 은빈이 아빠

1960년대 초, 한국에서의 삶이 버거웠던 신현민씨는 미국 이민을 반대하던 아내와 이혼하고, 어린 딸만을 데리고 미국에 살던 누나를 찾아 이주하였다. 누나, 신현옥씨는 한국으로 파병나왔던 미군과 결혼하여, 그의 귀국길에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었다. 신씨는 영어도 못하고, 가진 것 없는 미국 땅에서 가장 빨리 시민권을 취득하고 정착하기 위해, 미군에 자원 입대를 결심하였다. 하지만 군 복무를 하면서 어린 딸을 돌볼 수 없었기 때문에, 누나에게 아이를 맡겼다. 그렇게 신씨가 훈련을 받고, 이후에 베트남에 파병을 나가자, 누나는 자신의 두 아들과 함께 조카를 친자식처럼 키웠다. 하지만 누나는 법적 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조카를 데이케어에 맡기거나, 정부의 아이 양육비 지원 등을 처리하는 데 있어, 여러 문제에 부딪혔다. 결국, 고모는 남동생이 재혼해서 아이를 다시 데려다 키울 수 있을 때까지, 일단 아이, 주디를 입양해서 키우기로 하였다. 이 때문에 아이의 이름은 고모 남편의 성을 따라, 주디 기퍼트가 되었다.

(왼쪽: 주디와 아버지, 신현민씨)

자료원: 도아의 사건파일: https://youtu.be/V9u4TJHvtW0


파병을 나갔던 신씨는 이후 베트남을 거쳐, 1968년경 주한 미군으로 용산 기지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다시 한국인 아내를 만나, 재혼을 하였고, 이후 남매를 낳아 길렀다. 미국에 돌아와 여러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기지에서 의가사 제대하였다. 그러다, 1974년, 누나, 신현옥씨 집에 큰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남편, 존 기퍼드 고모부가 사냥을 나갔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그녀는 어려움 가운데도 자신의 두 아들과 동생의 딸인 주디를 혼자서 키워나갔다지만, 집에 아버지가 없어서인지 주디는 조금씩 빗나가기 시작했다. 공부를 등한시하며 학교 성적이 떨어졌고, 고모에게 반항하며, 밤에 몰래 집을 빠져나가 사고를 치곤 하였다. 신씨는 주디가 잘못될까 봐 고민끝에, 이제는 주디를 친아버지에게 돌려보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976년 여름, 신씨는 주디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남동생에게 데려다주고, 며칠 후, 뉴저지 집으로 혼자 돌아갔다. 그리고 주디는 친아버지와 새엄마, 그리고 이복동생, 남매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조카 주디를 입양해 키운 옥이 고모)

그러나 아기 때부터 자신을 키워준 고모가 주디에게는 엄마였다. 낯선 도시에 친아버지이지만 낯선 부모와 이복형제들 속에서, 주디는 견딜 수 없었고, 고모인 엄마에게 전화해 뉴저지로 돌아가고 싶다며, 울며 애원했다. 고모는 마음이 아팠지만, 주디가 바르게 성장하려면, 집안에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디에게 이제는 친아버지를 사랑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주디는 마음을 잡지 못했고,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주디는 가출하듯 사라져 버렸다. 이복 동생, 윌리엄은 당시 6살로, 어렴풋한 기억 속에 주디를 누나가 아닌 고모의 딸인 사촌으로,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성인이 된 윌리엄이 뉴저지에 계신 고모를 방문했을 때, 집안의 가정사를 듣게 되고, 이복누나, 주디가 자신의 집에서 가출해서 지금껏 연락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모는 옛날에 주디가 전화로 뉴저지로 돌아와 함께 살고 싶다고 애원한 것을 뿌리친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한다며, 그때 거절이 아니라 ‘그래 주디야, 집에 돌아와! 지금 바로 비행기표를 사서 보내줄게’라고 말하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한다고 하셨다. 고모의 말을 들은 윌리엄은 가족들과 상의 끝에, 늦었지만 경찰이 주디 누나의 실종 사건을 다시금 조사해 달라고 실종신고를 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43년만에 사라졌던 주디의 행방이 밝혀지는데…


자료원: 도아의 사건파일 https://youtu.be/V9u4TJHvt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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