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의 기록
지난 5월, 3일 동안 '힐링캠프'라는 이름을 빙자해 강원도 춘천 어느 산골짜기로 Y와 놀러 간 적이 있다.
잠시나마 시끄럽고 고단한 속세에서 멀어지고자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에어비엔비를 예약했는데, 의도에 걸맞게(?) 와이파이는 커녕 3G도 잘 터지지 않았다.(5G는 기대도 안 했다.)
사실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터라, 여차하면 이틀간 OTT에 기대어 타임킬링을 하려 했던 우리는 꽤나 당황했다. 그렇다고 춘천 시내로 나가자니 한적한 곳으로 숨어 들어온 우리의 자존심이 (+ 에어비엔비의 잔인한 숙소비가) 허락하지 않았다.
강제로 세상과 단절된 김에 우리는 하루종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연애, 집, 가족, 먹을 것, 타로... 등등. 주제는 매우 신변잡기적이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우리 삶을 관통하는 것들이었다.
사실 그 이야기들의 등장인물들은 매우 한정적이고 스토리 라인도 진부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처음 하는 이야기인 양 웃고, 울고 떠들어댔다.
고립된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사건의 해석도 다채로워지고, 스토리를 곱씹으며 놓쳤던 부분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게다가 가끔은 대화 중에 전화 찬스를 동원해(전화는 터졌다.), 지인의 의견까지 곁들이니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졌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는 문제가 해결되었고, 어떤 경우는 생각의 전환점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작은 일이 큰일이 되기도 했다.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리의 대화 속에서 몸집을 불려, 갑자기 고립된 어느 춘천 오두막 안에서 핫이슈가 된 것이다.
그 예로, Y의 지인 중에 손톱 아래 작은 가시 같은 이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참을 대화하다 보니 '단역'이었던 그가 어느새 아주 대단한 '빌런'이 되어있었다.
이름을 불러줄 때 그 의미를 갖는다던 꽃처럼, 자꾸 그 단역의 이름을 말하다 보니 그가 주인공이 된 것이다. 재미있는 노릇이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켜켜이 우리 사이에 쌓여간다.
'말'은 모양이 없는 듯 하지만 우리의 말본새에 따라 제각각의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머릿속에 들어앉아있다.
이렇듯 우리의 사고가 말하고 듣는 행위에 얼마나 취약한가.
일전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으로 말하고 듣는 것을 포함한 우리의 오감이 결국 사고를 상당 부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가 우리 사고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새삼 내게 좋은 이야기를 나눠주는 사람, 말의 맵씨가 고운 사람들에게 감사를 느낀다.
그들은 내게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건강한 삶의 환경을 베풀어준 것이기에.
그러면서 나 또한 누군가의 환경 구성원 중 하나로서, 좋은 말들을 뱉어왔는지 되돌아보았다.
내가 뱉는 말은 다른 이의 귀에도 들어가지만, 무엇보다 내 귀에 가장 먼저 닿는 것이기에 내일은 조금 더 이쁘게 말해보겠노라고 작은 다짐을 하며 잠자리를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