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교육은 어디로 가는가

몸과 마음으로 배우는 길

by 시더루츠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다지 평탄하게 살지 못했다. 잘못된 선택이 많았던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나는 대체 무엇을 잘못 배웠고, 무엇을 배우지 못한 걸까? 입시부터 취업까지 역경이 이어졌지만, 돌이켜보면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긋난 건지 알 수 없다. 보통의 학생들처럼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도 했다. 그런데도 잘못된 선택을 반복했다는 생각만 남았다. 그때였다. 내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틈나는 대로 교육 다큐멘터리와 해외 사례를 찾아본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의 밥상머리 교육이다. 부모가 아이를 독립적인 인간으로 존중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하는 방식.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과연 가능할까 싶었지만, 결국 서로를 배려하고 인격체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 하나는 대안학교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국영수를 최소화하고, 발표와 토론을 중심으로 수업을 운영한다. 고등학생들이 모의 유엔총회를 열어 환경 문제를 현실감 있게 다루던 모습은 지금도 인상 깊다.


그리고 유대인의 교육법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이 존중과 대화를 강조한다면, 유대인은 거기에 질문을 더한다. 밥상머리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런 질문을 통해 아이는 사고를 확장하고,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표현을 훈련한다. 탈무드 전통에서 비롯된 이 교육은 단순한 존중을 넘어, 아이가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길러준다.


그렇다면 교육에 정답은 있을까? 한국의 교육열은 맹모삼천지교 못지않게 치열하다. 그러나 요즘은 ‘정답’이라 여겨지는 가치가 희미해지면서 방향도 혼란스러워졌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가기도 하고, 여전히 명문대나 특정 학과에 대한 열망은 남아 있다.


현실적으로 유럽식 모델이나 대안학교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공교육도 변하고 있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학생과 함께 성장하려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보면, 공교육이 반드시 부족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AI시대 교육의 전환점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최근 『경험의 멸종』이라는 책에서 중요한 생각거리를 찾았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몸과 마음을 직접 쓰는 경험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질문 하나로 답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의 깊이는 잃어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몸과 마음의 교육은 늘 부족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그리기나 글쓰기 같은 수업은 줄었고, 체육과 음악 같은 실기 수업도 거의 없었다. 강조된 것은 언제나 국영수였다. 물론 국영수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기쁨과 행복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사회 적응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개인의 즐거움’이라는 시험에서는 낙제였다.


언젠가 프랑스 중산층의 조건을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외국어 하나쯤은 하고, 스포츠를 즐기며,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에 집착한 나머지, 즐거움을 잊고 산 건 아닐까.


손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모래를 만지며 노는 단순한 행위는 창의적 사고와 감정의 발현을 돕는다. 손은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가장 구체적으로 현실에 드러내는 도구다. 사려 깊은 대화와 존중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복감을 높인다.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공감과 소통,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나는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믿는다. 생존과 즐거움. 세상이 요구하는 학문도 공부해야 하지만,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배움 역시 포기할 수 없다.


배움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기술의 최정점을 누리며 살아간다. 물론 그만큼 더 배워야 한다는 숙제가 따라오지만, 대가 없는 배움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AI시대에 필요한 지식도, 몸과 마음으로 배우는 경험도, 생존을 위한 학문도 스스로 판단해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배움이 된다.


다만 AI도, 국영수도 알려줄 수 없는 진짜 교육이 있다. 그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몸으로 체험하게 하고, 마음으로 공감하며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모두 천재다. 믿어주고 사랑을 주는 데서 교육은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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