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월례행사
우리 집은 한 달에 한 번씩 꼭 영화관에 간다. 솔직히 요즘 극장 티켓값이 꽤나 사악하다. 팝콘 콤보에 외식까지 더하면 어느새 십만 원이 훌쩍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는 "달마다 극장 한 번"을 가족의 월례 문화 행사로 대신한다. 작고 소박하지만, 이상하게 이 시간이 참 좋다.
그렇게 골라 본 영화들 중 단연 잊히지 않는 작품이 작년 이맘때 봤던 <위키드 1>이었다. 아이는 1년 내내 아리아나 그란데의 <Popular>를 흥얼거렸고, OTT에 올라온 뒤론 매달 마지막 금요일을 ‘위키드 데이’로 정해버린 그 영화. 러닝타임이 160분인데도 아이가 단 한 번도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우리 가족에게 유독 ‘마법’처럼 남아 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드디어 2025년 11월. 1년 동안 기다린 <위키드 2 포굿> 개봉일. 거실 달력에 빨갛게 동그라미 그려둔 바로 그날, 우리는 설렘 하나 때문에 기꺼이 차에 올랐다.
영화는 ‘황금 벽돌길’을 짓기 위해 강제로 동원된 동물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한때 인간처럼 말하고 생각하던 존재들이 이제 착취당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세계. 그들을 몰아붙이는 군사들의 표정엔 감정이 없다.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이 있었나 싶다.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나타난 엘파바가 마법으로 그들의 사슬을 끊어낸 순간, 그녀의 서사는 이미 설명된다.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던 사람. 그래서 약한 존재 속에서 자신을 보았고, 그녀의 행동은 늘 거기서 출발했다.
1편이 엘파바의 이야기였다면, 2편은 글린다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법의 힘은 없지만 ‘사랑받는 것’이 삶의 절대 가치였던 사람. 반짝이는 명성과 말랑한 미소 뒤에는 늘 불안이 있었다. 들여다보면 글린다의 ‘버블 같은 삶’도 꽤 비통하다.
특히 대학 시절부터 사랑하던 남자 피예로에게 버림받는 결혼식 장면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 모녀가 1년 동안 피예로의 목소리에 반해 <Dancing Through Life>를 수도 없이 들었기에 더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는 엘파바가 처음으로 ‘자신을 다른 눈으로 봐준 남자’와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고, 글린다 역시 자신이 믿어왔던 ‘사랑받는 삶’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계속 묻는다. 엘파바는 선인가, 악인가? 하지만 보면서 깨닫는다. 질문 자체가 틀렸다. 동물들을 해방시키면, 그들을 노동력으로 쓰던 체제는 무너진다. 누군가에게는 영웅이고, 누군가에게는 위협이다. 세상은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
'악'은 본질이 아니라 만들어진 서사일 뿐이다. <위키드>는 엘파바를 절대로 “태생적 악”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악’으로 불리게 된 과정—타고난 외모, 사회적 공포, 권력의 프레이밍—이 어떻게 누적되어 하나의 낙인이 되는지를 정교하게 보여준다. 악의 기원은 개인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치다. 선한 존재처럼 포장된 채 대중을 조종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결국 엘파바에 대한 ‘마녀 이미지’도 권력이 만들어낸 정치적 프레임일 뿐이다. 권력층은 무능을 가리기 위해 ‘사악한 서쪽 마녀’를 만든다. 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쉬운 방식은, 모두가 미워할 대상을 하나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오즈의 시민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녀를 잡으러 몰려가는 장면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 같았다. 역사 속에서 증명된 '마녀사냥'이 떠올랐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계도 연상되었다. 대중들은 권력이 만드는 프레임에 순진무구하게 이용당한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엘파바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은 서사적 급발진처럼 느껴졌고, 마담 모리블의 권력 지향점 등도 다소 불투명하게 그려졌다.
가장 큰 아쉬움은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이 깨지는 순간에 있었다. 피예로의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과 도피 행각, 그리고 결혼식을 파투낸 상황에서 엘파바가 "그는 한 번도 너를 사랑한 적 없어. 그는 나를 택했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체제에 맞서 싸우는 윤리적 주체인 엘파바가 가장 사적인 영역인 우정 앞에서 이토록 뻔뻔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는 작품이 엘파바에게 부여한 '정의로운 아웃사이더' 이미지와 충돌하며, 서사의 무게를 미세하게 약화시킨 아쉬운 지점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작품이라 아쉬움이 크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키드 2 포굿>은 한 번 보고 넘길 영화 가 아니다. 놓쳤던 디테일을 다시 찾고 싶어서라도, 분명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또 곱씹을수록 수록곡들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달마다 영화관을 찾는 이 작고 특별한 시간이, 결국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감탄하고 함께 자라는 시간이라는 걸 매번 느끼게 되니까.
영화보다 더 오래 남는 건, 우리가 이 시간을 함께 만든다는 사실이다. 엘파바가 이해받지 못해도 자신의 윤리를 스스로 선택했듯이,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