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막대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by 도토리


그동안 내 삶은 늘 출발선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이었다. 이리로 가야 할지, 저리로 가야 할지. 인생에는 반드시 '정확한 타이밍'과 '나만을 위한 적절한 길'이 있을 거라 믿었다.


한때 우리 세대를 매료시켰던 문장이 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

하지만 냉정하게도 어느 길 위에서도 내 가슴은 세게 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걷지 않았다. 설레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은 오답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 말했다. 삶에서 나에게 딱 맞는 기다란 테트리스 조각은 좀처럼 제때 나타나 주지 않는다고. 그러니 무엇이든 내려오는 조각들을 맞추며 버텨야 한다고. 나는 가장 완벽한 한 방을 위해 비워둔 틈새가 오히려 내 삶을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나는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첫째, 100일 동안 하루 100분씩 책 읽기.


사유하기보다 요약하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다. 영화도, 드라마도, 지식도 남이 씹어서 뱉어준 '요약본'만 삼켰다. 하지만 인간은 직접 읽으며 사유할 때 비로소 확장된다. 뇌는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주인공이 맡는 커피 향에 내 후각 신경이 반응하듯, 타인의 삶을 깊게 읽어내며 멈춰있던 나의 감각을 깨워보려 한다.


둘째, 무엇이든 일단 해 보기.


운명 같은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그저 매일의 발걸음이 모여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 뿐이다. 적절한 때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적절하게 만드는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


god의 <길>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걸어야한다.


그냥 걷다 보면, 내가 남긴 그 발자국들이 결국 나의 '길'이 되어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지독한 우울과 권태를 극복하는 일임을 믿는다.


텍스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 100일의 여정이 내 삶에 어떤 무늬를 남길지 기록해 보려 한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장기하와 얼굴들_그건 니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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