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대부분의 시간은 사실 '별일 없이' 흘러간다. 매일 시끌벅적한 모임이 있는 것도, 매주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떠난 여행조차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 아득한 신기루가 되어버린다.
나의 우울은 대개 이 지점에서 동인 된다. 별일 없이 무탈하게 흐르는 일상에 감사하기보다, '왜 내 삶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가'라며 의문표를 던지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너는 삶의 굴곡이 없어서 아직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
착한 남편을 만나 평온하게 전업주부로 살아온 나의 고독은, 누군가의 눈엔 배부른 소리로 비칠 것이다. 나 역시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아니, 어쩌면 아주 많은 부분 동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떤 미지의 공간을 갈망하면서도, 실은 지금 이 자리에 발붙이고 살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염원한다.
학교로, 학원으로, 친구에게로 매일 부지런히 움직이는 아이의 작은 몸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생생한 신체기관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정작 아이는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알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문득 나 자신에게 묻는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 또한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일까. 인간은 결코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통해 볼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나 역시 내가 가진 그림자의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우울을 굳이 극복하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태생적으로 나와 함께해 온 이 감정은 소거할 수 있는 걸림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알아두어야 할 점은, 사람들은 대부분 나처럼 '별일 없이' 산다는 사실이다. 별일 없음에 감사하기까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만 이 고요한 침잠 속에 빠져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싶다.
어쩌면 나는 그저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도파민을 향한 갈구일까? 아이들의 학원비라도 벌어보겠다며 밖으로 나가는 엄마들의 분주함 속엔, 사실 돈보다 더 절실한 '자신의 이름'을 찾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이름을 잊고 '센'으로 살아간다. 그녀의 부모는 눈앞의 욕망에 매몰되어 자신들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은 채 돼지로 변해버린다. 거울 속의 나는 어떠한가. 평온함이라는 먹이에 취해 존재를 망각한 그 돼지의 눈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주인공이 그토록 되찾고 싶어 했던 것은 사실 '별거 아닌' 그림자 그 자체였다. 그 평범한 일상이, 내 이름을 증명하던 그 희미한 그림자가 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나는 이제 나만의 '유실물 보관소'에서 잃어버린 나의 그림자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