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느 히치하이커의 해부 기록

쓸모가 아닌 의미를 찾아서

by 도토리

이 글은 '전업주부'라는 이름표 뒤에 숨겨진, 한 개인으로서의 갈증과 존재론적 고민의 흔적이다.

열 살의 아이는 이제 부모의 손길이 절실했던 시기를 벗어나 스스로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는, 그동안 꾹꾹 억눌러왔던 환멸과 허무에 서서히 잠식되어 간다.


이 글의 끝이 나락일지, 그리하여 생존하였다는 기록일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저 이 지독한 '자기 환멸'을 아무런 의무가 없는 '글쓰기로의 몰입'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감정의 바닥을 찍어야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땅이 어디인지 손이라도 더듬어볼 수 있을 듯하다.

나의 나락을 들여다보며, 내 삶을 구원하고 싶다. 2003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노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의 구절이 환청처럼 맴돈다.


"제대로 살고 싶어. 제대로 살고 싶어."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생의 감각을 되찾고 싶다. 육아일기의 울타리를 넘어 나라는 인간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고질적으로 뿌리내린 우울과 불안이라는 놈의 얼굴을 직면하고 싶다.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가 될수록 이상하게 나의 우울은 커져만 간다.


내 고통은 정당하다. 허나 나는 이 감정의 바닥을 차고 올라와야만 오롯하게 설 수 있다. 이 글은 상실된 자아를 찾아가는 한 인간의 치열한 기록이다.


30대 후반의 나이,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 내 아이는 매일 '성장'이라는 이름의 버스를 타고 저 멀리 나아가는데, 정작 나는 빈 정류장에 홀로 남아 지독한 외로움을 겪는다. 아이가 탄 버스는 멀리 떠나갔는데, 나는 어떤 버스도 타지 못한 채 꽁꽁 얼어버린 내 발만 내려다보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매일 조금씩 자신의 외연과 내연을 넓혀가는 아이를 보며 묘한 기시감과 우울을 느낀다. '질투'라는 단어로 정의하기엔 너무나 치졸한 감정. 나라는 사람도 저렇게 반짝거렸던 시절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텅 빈 비늘만 남은 채 길을 잃고 부유하는가.


어디로든 움직이고 싶다. 일상이라는 지독한 진자운동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가고 싶은데 방향을 모르겠다. 나라는 엔진의 시동을 켜는 법을 잊었다. 때가 가득 낀 엔진은 통으로 들어내 세척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밥벌이를 하면 삶이 좀 더 심플해질까. 제 밥벌이를 하는 이들은 누구나 삶의 목적성을 가졌을까. 내가 유용성이나 경제성을 갖지 못해서 우울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의미'가 없는 삶을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쓸모가 아니라 의미를, 생산성이 없어도 나 자신의 존엄을 증명하고 싶다. 10년 동안 타인을 위해 움직였던 신체가 스스로를 위해 움직이려니 지독한 공회전만 일삼는다. 이제 나라는 사람의 파편을 찾아, 목적 없는 여행이라도 떠나보려 한다. 삶의 버스에 일단 몸을 실어보고 싶다.


때로는 잘못 탄 버스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도 하니까.


이 글은 어디로든 가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의 치열한 '히치하이킹'에 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