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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Apr 02. 2024

감정에 관한 논의 :
[3] 감정의 구분❶ 정취와 정동

3. 감정의 구분

[3] 감정의 구분 ❶ 정취(feeling)와 정념(emotion)


정취(情趣)

단순 감정과 의미 감정

감정들은 일정한 상하좌우의 위치와 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우리는 그 감정들의 경계를 모호하고 혼란하게 표상하므로 이름이나 개념이 뒤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위에서 우리는 감정을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징표를 발견했다. 감정은 정세를 판정하는 의식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세가 개체에게 미치는 의미에 따라서 ┈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체의 동기에 따라서 평가되는 정세의 의미에 의해서┈ 감정의 내용이 2가지로 크게 나누임을 알 수 있다. 


곧 [의미 정세]로 이해되는 사태에 당면해서 촉발되는 감정과 [단순 정세]로 이해되는 사태에 당면해서 촉발되는 감정은 단순히 형태만 다른 것이 아니라 의미에 있어서 확연히 다른 것임이 밝혀진다. 정리하자면 단순 정세의 감정과 의미 정세의 감정으로 구분할 수가 있는 것이다.

.

      

정취(情趣필링(feeling)와 정동(情動이모션(emotion) 

필자는 [단순 정세]의 의식에 의해서 촉발되는 감정을 [정취(情趣 필링(feeling)]라고 부른다. 그리고 [의미 정세]의 의식에 의해서 촉발되는 반응을 [정동(情動 이모션(emotion)](현재 일반적으로 "정서"라고 일컫는 개념)이라고 부른다. 


정취는 우리의 의지적 활동에 영향이 없을 것으로 의식함에 따라서 생의 의지를 주목하게 하고 주의하게 하는 강한 자극을 초래하는 일이 없이 다만 감성을 피동적으로 자극할 뿐이기 때문에 감정의 촉발도 [단순]하다. 곧 정취(情趣)적이다. 이에 견주어 의미 정세는 그의 생존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감성적 반응도 의지와 연결되어 격동하는 [의미] 있는 반응, 곧 정동(情動)이 된다.      


오늘날 감정의 이론가들은 감정 이론의 역사적인 업적에 의해서 정립되어 온 감정의 두 가지 개념 곧 [필링(feeling)]과 [이모션(emotion)]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필링은 쾌ㆍ불쾌에 대한 미약한 반응을 의미하고, 이모션은 강도가 심하여 마침내 내장 기능의 광범위한 변화를 거쳐 의식, 또는 행동에 표현된 동란 상태라 이해하고 있다. 


좀 더 단순화한다면 이모션은 강한 필링이고 필링은 약한 이모션을 의미해 왔다고 이해해서 큰 잘못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모션과 필링을 구별하는 근거는 다름아닌 감정의 셈여림{강약}의 정도, 즉 양적 차이에 있다는 뜻이 된다. 


일부의 학자들이 감지해 왔듯이 필링과 이모션의 이와 같은 양적 구분엔 편의적인 이득이 있을지는 모르나 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기엔 미흡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감정뿐만 아니라 모든 개념의 구분은 원칙적으로 양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미 ⎯곧 질⎯ 에 입각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A] 항해 중의 어느 날 아침,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위로 붉은 아침 해가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이며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것을 보는 사람이 가슴 속에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는다.

[B] 인적도 드문 높은 산에 가냘프게 꽃핀 한 떨기 한란(寒蘭)을 보고 잔잔한 애조를 느낀다.

[A] 오랫동안의 각고 끝에 대망의 권좌에 오르게 된 장년의 남자가 벅찬 환희에 잠겨 있다.

[B] 한 여인이 지나가는 다른 여인의 호사스러운 차림새를 보고 슬그머니 아니꼬움을 느낀다.  

   

위의 예에서 로마 숫자[]는 예화의 의미에 따라서 구별해 사용한 것으로 Ⅰ은 단순 감정이고 Ⅱ는 의미 감정이며 알파벳[B]은 예화가 줄 수 있는 반응의 강도에 따라서 구분한 것으로서 A는 강한 반응, 그리고 B는 비교적 약한 반응을 묶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개념을 분류하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근거로 취해야 하겠는가? 학적 소양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더 논의할 필요도 없이 개념의 분류는 알파벳 A와 B가 나타내는 양(여기에서는 강도: 强度)에 의해서가 아니라 Ⅰ과 Ⅱ의 질[(의미(意味))에 따라야 할 것임을 수긍할 것이다. 


그래서 양에 의하면 A를 이모션, B를 필링이라고 해야겠지만, 우리는 정세의 의식에 따른 의미의 차이를 규명한 이상, Ⅰ을 필링, Ⅱ를 이모션이라고 함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필자가 [필링(feeling)]을 [정취(情趣)]로, [이모션(emotion)]을 [정동(情動)]이라고 번역해 부르는 것은 이에 따른 것이다.      


외계의 정세가 개체에게 미치는 것으로 의식되는 이러한 내용의 해명에 의해 우리는 감정을 [정취]와 [정동]이라는 2가지 큰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정취]란 생의 의지적 활동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지는 단순한 정세라는 의식만으로 감성에 촉발된 반응이고 [정동]이란 생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정세, 즉 유의미 정세로 의식함에 따라서 동란으로 촉발된 감성의 반응이다.


감각과 단순 감정인 정취(情趣)는 의식과 동시에 작동하며 〘의식 체류처〙에 따라서 의식의 체류 정도가 가장 낮은 생리적 정취인 [정후(情候)]로부터 심리적 정취인 [정서(情緖)], 윤리적 정취인 [정의(情義)], 성리적 정취인 [정외(情畏)] 등으로 발전되어 나아가고 정동 역시 의식 체류처의 발전에 따라서 의식 체류가 가장 낮은 생리적 정동인 [정초(情楚)]로부터 심리적 정동인 [정념(情念)], 윤리적 정동인 [정륜(情倫)], 성리적 정동인 [정엄(情嚴)]으로 발전해 나아가는데 의식의 비율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감정인 정동(情動)은 의식에 의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생존 활동의 성과를 평가해 주는 감성은 주로 기성적인 활동, 곧 본능의 여러 활동에 관한 자극에 대해서 뚜렷이 반응할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정신의 기능이 그러하듯이 이성적인 활동에 관해서도 활발한 반응의 결과인 다양한 감정을 나타낸다. 


정취나 정동은 의식의 발전 단계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므로 각 체류 단계에 따라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이를 단순 감정인 정취(情趣)와 의미 감정인 정동(情動)에 따라 필자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부르며 정취[情緖]와 정동(情動) • 정념(情念) • 정감(情感) • 기분(氣分) 등 모든 감성 활동에서 특별히 의미를 강조하여 구별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통틀어 [감정(感情)]이라는 말로 부른다.  

    

의식 발전*에 따른 감성의 활동에서 [생리적] • [심리적] 반응은 기령[氣領{기성적 영역}이며 [윤리적]  • [성리적] 반응은 이령[理領{이성적 활동 영역}의 의미 평가에 따른 반응으로 도덕적 • 예지적 등에 관한 의지에 따라서 촉발되는 감정인데 이성의 기능인 지적 영역과 함께 이성의 가치와 이상에 딸린 감정인 〘정조(情操)〙에 포함된다. 

*이 책의 자매서인 졸저 《마음의 얼개 》 제Ⅴ부 [의식의 여정]에 좀 더 상세히 적어놓았음. 


필자의 감정 이름 ❉물리적 단계는 제외

의식의 체류처에 딸린 정취(情趣)

생리적 의식의 정취: 정후(情候)

심리적 의식의 정취: 정서(情緖) 

윤리적 의식의 정취: 정의(情義)

성리적 의식의 정취: 정외(情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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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체류처에 딸린 정동(情動)

생리적 의식의 정동: 정초(情楚)

심리적 의식의 정동: 정념(情念) 우리가 일상에서 정서라고 부르는 감정

윤리적 의식의 정동: 정륜(情倫)

성리적 의식의 정동: 정엄(情嚴)

   

*일반적으로 윤리적 정동을 포함하는 감정 ⎯본고에서의 윤리적 및 성리적 정념⎯ 이 더욱 발달되면서 일어나는 고차원적인 복잡한 감정. 곧 지적(知的)·도덕적·미적(美的)·종교적 감정 따위는 [정조(情操)]라고 불러왔다[표준 국어사전의 해석]. 


그러나 우리 음(音)의 정조에는 “생리적 의미 감정[생리적 정동⎯정조(情調)]”도 가리키기 때문에 이를 구별하려면 일일이 한자를 병기하거나 설명해야 할 문제가 있으므로 필자는 생리적 의미 감정[생리적 정동]을 가리키는 새로운 이름을 쓰기로 하고 이를 [정초(情楚))라고 부르려 한다.


※생리적 • 심리적 • 윤리적: 필자는 이성과 기성의 융합에 따라 이루어진 생명체는 처음부터 [마음]의 역할인 지[知: 의식] • 정[情: 감성] • 의[意: 의지]가 갖추어져 있으며 이 역할들이 천천히 진화하여 가는 길에 처음에는 물리적 • 기계적 형태로, 그 다음에는 저[자기]의 목숨의 삶과 죽음[존망(存亡)]에 관한 생리적 의식 상태로, 이어서 심리적 상태를 거쳐 윤리적 상태로 체류(滯留) 발전해 간다고 생각한다. 


위의 도시(圖示)는 이 상태의 발전과 의식의 체류에 따르는 감정의 자리 표이며 의식의 체류에 관해서는 이 책의 자매서인 졸저 《마음의 얼개 Ⅱ(미간임)》 를 참조 할 것.     


감정의 의의 

감정은 감성이 의식의 도움에 따라 이끌려 발현되는 감성 현상인데 견주어 감각은 의식과 감성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직접적 자극으로 느껴지는 기능이다. 이처럼 감정은 의식 없이는 발현되지 않는데 다만 정취는 감성과 의식이 짙게 융합되어 있어 감각처럼 직접적 자극으로 느껴진다.


인간은 무기물질이 아니고 생생히 살아있는 생명체로 이 사실을 감정처럼 잘 나타내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그의 생존에서의 지향적 목표인 존망이 〘얼{정신}〙안에 들어 있기에 그의 활동이 이 목표 달성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해 평가하고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역{과학적 방식}으로 말하면 내적으로 반응하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을 보아 그의 생존에서의 지향적 목표가 내재되어 있음을 추리할 수 있는 것이다.

      

생화학자인 닉 레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로봇이 딥 블루의 지능을 가지고 말을 하고 외부 세계를 감지하고 거의 무한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의식은 다르다. 로봇에는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이별의 아픔도, 깨달음의 환희도, 희망이나 믿음이나 박애도, 그윽한 향기와 살이 살짝 닿는 느낌의 짜릿함도, 따뜻한 햇살이 목덜미에 닿는 기분도, 집을 떠나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의 뭉클한 느낌도 없다. 


아마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내장된 기계장치를 통해 로봇도 이런 감정을 느낄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감동을 프로그램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닉레인 《생명의 도약 》글항아리  2014/2/24 간 386p


필자는 로봇에 감동을 프로그램하는 기술이 곧바로 개발되리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진정한 감정이 아닐 것이지만 일정한 상태, 예컨대 기쁨이나 슬픔의 상태를 정의하고 그 정의에 해당하는 일정한 반응을 구현시키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적용시키면 비록 거짓에 불과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조작하고 사람들을 속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가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유물론적 사상가들이라면,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한 그 로봇과 생명체의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작위를 설령 생명체의 감정 상태와 비슷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겉보기만 그럴듯할 뿐, 실제로 생명체가 생을 영위하면서 느끼는 목표에 대한 결과적 반응으로서의 감정과는 전혀 다른, 사이비 감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심리계〙에 체류해 있는 인간에게는〘제시 본성〙에 의해 제시자와 수용자의 교류에 따라서 형성된 상대적인 우열의 결과, 다른 생물에게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매우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의 발현을 똑똑히 보게 된다. 


따라서 감정을 온전히 해명하지 못하고는 인간성, 또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의 온전한 해명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인성(人性)을 연구하는 여러 학문 분야의 실정은 과연 어떠한가? 


정서에 따른 이 미적 표상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내는 활동이 예술이다. 

     

감정의 한 가지 특성

감정은 감정을 자극하는 대상에 대한 평가로 대상을 긍정하거나 부정한다. 그리고 긍정적 대상을 애호하고 부정적 대상을 혐오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대상을 처리하려 한다. 곧 애호하는 대상을 지지하고 부정적 대상, 곧 혐오하는 대상을 배척하여 없애 버리려 한다. 애증과 호혐이 그 반응의 결과로 나타나는 감정이다

   

[이성적 감정]과 [기성적 감정]

생명체가〘이성〙과〘기성〙의 융합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필자는 감성이 마음의 역할인〘지 • 정 • 의〙 가운데 기성에 속하는 정적(情的) 역할이어서〘본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이 기능들이 이성에 속하는 정신에서도 활발하게 작동한다고 여기고 따라서 감성에 딸린 감정도 이성에 속하는 감성과 기성에 속하는 감정으로 구분된다고 믿는다.    

 

심리계까지 의식을 발현시키는 동력은 기성이기에 이는 [기성적 체류기]에 속하는 단계지만 심리기를 넘어서면 기성보다는 이성의 경향이 더 뚜렷해지는 [이성적 체류기]에 속한다. 

     

[기성적 감정]

♣생리적 단순 감정[생리적 정취⎯〘정후(情候)〙

♣생리적 의미 감정[생리적 정동⎯〘정초(情楚)〙     

♣심리적 단순 감정[심리적 정취⎯〘정서(情緖)〙

♣심리적 의미 감정[심리적 정동⎯〘정념(情念)〙  

   

[이성적 감정]

♣윤리적 단순 감정[윤리적 정취⎯〘정의(情義)〙

♣윤리적 의미 감정[윤리적 정동⎯〘정륜(情倫)〙     

♣성리적 단순 감정[성리적 정취⎯〘정외(情畏)〙

♣성리적 의미 감정[성리적 정동⎯〘정당(情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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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적 단순 감정[예지적 정취]―〘정건(情虔)〙

♣예지적 의미 감정[예지적 정동]―〘정엄(情嚴)〙

     

감정의 발생에 필수적인 3요소 중의 하나인 정세에 서서 우리는 감정의 중요한 두 개념인 정취와 정동을 구분해 내었는데 감정의 촉발은 또한 의식에 절대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에 의식의 내용에 따라서 개념이 분류될 수 있을 것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의식에 따르는 감정의 구분은 의식의 질의 차이에 두어야 하므로 의식의 발전 단계*에 따른 반응의 추이를 추적해야 마땅한 일이다. 의식은 그 발전 단계에 따라서 질적으로 [물리적 의식]ㆍ[생리적 의식]ㆍ[심리적 의식]ㆍ[윤리적 의식]ㆍ[성리적 의식]의 5종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감정 역시 이에 따라서 각각 [물리적 감정]ㆍ[생리적 감정]ㆍ[심리적 감정]ㆍ[윤리적 감정]ㆍ[성리적 감정]ㆍ[예지적 감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물리적 감정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므로 나머지 5종에 관한 2가지의 감정을 상정할 수 있으므로 이에 정세에 의해 구분한 [정취(情趣)]와 [정동(情動)]을, 의식의 단계에 따르는 4가지 감정과 조합하면 다음과 같은 10가지 감정의 개념을 이끌어 낼 수가 있다. 


생리적 정취: 정후(情候)    생리적 정동: 정초(情楚)

심리적 정취: 정서(情緖)    심리적 정동: 정념(情念)

윤리적 정취: 정의(情義)    윤리적 정동: 정륜(情倫)

성리적 정취: 정외(情畏)   성리적 정동: 정당(情當)

예지적 정취: 정건(情虔)   예지적 정동: 정엄(情嚴)


정취 실마리

정취의 뜻과 이름

필자는 각 의식의 체류처에 따라 정취를 

생리적 정취인 [정후(情候)] • 

심리적 정취인 [정서(情緖)] • 

윤리적 정취인 [정의(情義)] • 

성리적 정취인 [정견(情虔)]


으로 구분했는데 각각의 정취에 관해 초들겠다. 

    

의미 반응 계열의 감정인 정념은 뒤에서 고찰하겠지만 정념은 생체에게 주는 동기적 특성 때문에 의식 단계에 따라서 각각 뚜렷한 특징을 발휘한다. 이에 비해서 정취는 이를 촉발하는 의식이 어느 발전 단계에 있거나 외적 자극이 주는 생체에의 영향이 단순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끌어 낸 개념에 의해서 이를 구별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우리가 감지하는 바로는 거의 대동소이해서 개념 구분이 한갓 이론적 유희로 보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래서 필자는 필요한 경우에 대비하고자 생리적 정취를 [정후(情候)], 심리적 정취를 [정서(情緖)]*, 그리고 도덕적 정취를 [정의(情義)], 성리적 정취를 [정건(情虔)]이라고 구별하여 부르려고 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번거로울 때에는 단지 정취라는 한마디로 통칭하려 한다. 아마도 이편이 사용하기에도, 이해하기에도 편리한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앞에서 이미 초든 바와 같이 [정서(情緖)]는 학계에서 얼마 전부터 필자가 [정념(情念 emotion]이라고 부르려 하는 개념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일반인들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지만, 필자는 이를 받아드리지 않고 feeling의 뜻으로, 특히 위에서 적었다시피 정취[情趣]에서의 심리적 정취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하려 한다.      

정취의 특징 

칸트의 순수이성(純粹理性)이 경험이 섞여들지 않은 선험적[초월적] 이성이듯이 [순수심상(純粹心象)]은 의지의 개념적 성격이 전혀 섞여들지 않은 오롯한 심상이다. 


[정서와 예술] 예술이 추구하는 미감은 이러한 순수심상의 직관이 주는 만족[쾌감])이다.


미(美) = 순수 심상이 감성을 만족시키는 상태 =정서미 


이에 견주어 세속미인 정념미(情念美)는 순수 심상이 아니라 의지에 미치는 심상의 감정적 쾌감이다. 


●본능적인 긍효로움에 관계되는 감각 ⸺후각 미각 촉각⸺ 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미적인 대상의 상상만으로 정념적 미를 재구성하고 창조해 내는 활동을 필자는 [미예(美藝): 대중 예술] (정신의 구조: 이상에서 전재)이라고 부르려 한다. [미예(美藝)]는 그래도 아직은 감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취가 아니라 의식[개념]이나 의지에 바탕을 두고 있는 [미예]도 있는데 추리 소설이나 탐정소설 에로틱 예술들이 이러한 예술들이다.      


정취는 정동의 혼탁에서 벗어나 있는 맑은[청징(淸澄)한] 감정이다. 

   

맑다는 것은 의지의 적극적 활동인 욕망, 곧 식욕ㆍ성욕ㆍ명예욕ㆍ소유욕으로 물든 정동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욕망은 대체로 비도덕성에 물들어 있는데 견주어 정취는 욕망과는 떨어져 있어 깨끗하게 느껴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정취에 관계되는 감각은 순수히 대상을 관조하여 얻는 쾌적한 감성적 대상에 관한 감각으로써 미적(美的)인 감각인데 견주어 오감 가운데 생리적 욕망과 가장 깊은 관계를 지닌 촉각ㆍ미각ㆍ후각 등에 바탕을 둔 감각은 정취를 일으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바꿔 말해 정취미의 수용에 가장 적합한 감각은 시각과 청각이다. 


●직접적으로 시각과 청각[순수 이성의 감각?]이다. 시각에 의해 정취를 일으키는 예술 표현의 대표적인 장르는 미술이고, 그 밖에 서예와 사진 등이 있다. 청각에 의해 정취를 일으키는 예술 표현의 대표적인 장르는 음악이다.

●간접적으로 시각과 청각 한 가지나 두 가지 전부를 자극하는 예술에 의식을 동원해 시각적 정황과 청각적 정황으로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문학 연극 무용 등이 있다.  다만 긍효를 비롯한 어떠한 사물이라도 예술의 소재일 수 있다. 곧 예술에 쓰이는 [소재]와 예술을 완상할 때 일어나는 반응으로서의 감정인 정취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예술]이란 정취를 일으킬 수 있는 감각인 시각과 청각 등 순수 이성적 감각에만 의지해 순수하게 대상의 상상만으로 정취적 아름다움을 재구성하고 창조해 내는 활동이다.

      

정취적 대상의 표상은 아름답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특성을 갖춘 정서는 말고 깨끗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정갈한 미감을 준다.

이렇게 바뀌는 과정은 머지않아 생리학적, 생리 화학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학적 생리적 변환의 과학적 ┈바꿔 말하면 현상의 객관적, 경험적 파악┈ 과정일 뿐 생명체의 주관에 입각한 진정한 해명이 될 수 없다.      


의식 체류에 따른 정취

정후[情候생리적 정취

생리기적 감정에 속하는 정취, 곧 [정후(情候)]는 의지에 의해서 동기화된 욕망에 따라서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에 대한 생체의 반응에 의해서 곧바로 촉발되기 때문에 감각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정취가 신체적 촉발이라는 점에서 생리기적 정념과도 비슷하므로 [감각]ㆍ[정후]ㆍ[정초](情楚) 등 이 3가지 현상은 혼동되기 쉽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객체적 현상을 포착해서 촉발된 감각과 이 감각으로부터 감촉되어 일어나는 주관적 정후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의미에 따라서 엄밀히 구분하면 감각의 대상인 객체의 성질과, 감각의 결괴인 주관적 내용으로서의 정초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외기(外氣)의 온도에 대한 감각과 정초의 차이를 고려해 보자. 외기 온도에 대한 측정치 0℃라는 성질은 그 기준을 어디에 두었거나 간에 다만 객체에 관한 한 상태이고 감각은 이 상태를 감지한다. 그런데 0℃의 감각은 감각 주체인 생체의 상태에 따라서 “차다”거나 “미지근하다”, 또는 “시원하다”………등의 주관적 느낌을 줄 것이다. 이 느낌이 바로 정후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정후와 감각을 같은 것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감각을, 객체의 상태를 주체의 참여 없이 수동적으로 감촉하는 것만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0℃의 감득만을 감각으로 여기고 이에 대한 각자의 생체적 감득 내용은 감각과 분리하여 정후로 본다. 

아마도 온도에 지극히 예민하고도 냉정한 판단자라면 그 온도가 0℃라도 자기에게는 때에 따라 좀 차게, 또는 오싹하게 느껴진다는 주관적 정도의 차이를 충분히 구별함으로써 감각과 정후가 같은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정후와 정초는 또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앞의 예를 다시 사용한다면 외계의 상태에 관한 객관적 감각인 0℃가 아니라, 외계의 기온에 관한 주관적 감촉을 정세에 관한 의미 의식이 끼어들 틈이 없이 “차다”거나 “미지근하다” “오싹하다” 등과 같이 느끼는 정후에 견주어 정초는 이러한 외계의 상태가 주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로까지 심각하게 의식되므로서 유발되는 감정이다. 곧 “오싹하다”는 느낌은 만약에 감기 환자라면 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만한 온도일 것이므로 그에게는 [정후]가 아니라 [정초]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감각[객체적 감각]과 정후[생리적 정취]와 정초를 구별할 수 있다. 대상이 감관에 주는 자극인 감각은 개체의 감관에 의해 수용되는 의식이기 때문에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개체의 주관이 대상의 성질을 임의로 독특하게 의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생리적 정취인 정후는 정초보다는 덜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상쾌하다.”는 감정은, 그것이, 추진하던 일이 여의치 않아 앙분되어 있던 긴장이 뜻밖에 해결되었을 때 촉발되는 긴장으로부터의 해방감으로서의 “상쾌함”이라면 정초이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들에 나가 신선한 대기를 접촉했을 때 감관에 닿는 단순한 기온의 느낌인 “상쾌함”이라면 이 기분은 정후이다. 

    

정서(情緖심리적 정취

심리적 정취인 정서(情緖 feeling)에 이르러서는 이 개념이 생리적 정취인 정후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같은 심리적 반응 계열인 심리적 정동인 정념과는 그 느낌과 의미에 있어서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정도로 차이가 뚜렷하다. 


앞에서도 예로 들어본 여름 하늘에 흘러가는 한가로운 흰 구름은 우리의 존망에 대해서나 자기를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들어내 보이려는 의지 ┈곧〘제시 본성〙┈ 에 대해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침이 없는 것으로 의식되기 때문에 그 고요함과 평화로운 느낌은 [정념]이 아니라 [정서(feeling)]임이 분명하다.  

    

천둥 번개와 함께 앞이 캄캄하도록 쏟아지는 폭우는 이 때문에 논밭이 떠내려가 버리거나 집이 물에 잠기는 등 생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걱정되는 농부에게는 정념[emotion]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지만 이 폭우에 피해를 입을 것도, 또는 자신과 관계된 어떤 사태를 유리하게 발전시키는 것도 아닐 것으로, 즉 유의미한 정세를 야기시키는 것임을 의식하지 않고 단순한 정세의 관조로만 의식하는 한, 역시 장엄하다거나 시원함 등의 순수{단순} 감정─곧 정서─을 촉발시킬 뿐 정념과는 무관하다. 


이처럼 전개되는 정세를, 의지의 관점에서의 유의미성에 따라 의식함이 없이 오직 순수한 느낌 그 자체의 의식만으로 형성시키는 정취적 분위기에는 예컨대 고졸(古拙) · 고아(高雅) · 골계(滑稽) · 그윽함 · 단아(端雅) · 몽환(夢幻) · 발랄(潑剌) · 비장(悲壯) · 비창(悲愴) · 소박(素朴) · 소쇄(瀟灑) · 쇠미(衰微) · 소슬(蕭瑟) · 숭고(崇高) · 수수함 · 쓸쓸함 · 신비(神祕) · 애절(哀絶) · 우수(憂愁) · 우아(優雅) · 웅장(雄壯) · 웅혼(雄渾) · 유현(幽玄) · 잔잔함 · 장려(壯麗) · 장엄(莊嚴) · 장중(莊重) · 장쾌(壯快) · 정적(靜寂) · 적막(寂寞) · 조촐함 · 찬연(燦然) · 창연(蒼然) · 청순(淸純) · 청아(淸雅) · 풍자(諷刺) · 해학(諧謔) · 현란(絢爛) · 화려(華麗) · 화사(華奢) · 화창(和暢) · 호쾌(爽快)……등등 수많은 형태가 있다.     


윤리적 정취인 정의(情義)

사전적 의미로서의 [정의(情義)]는 인정과 의리이다. 그러나 필자가 윤리적 정취에 붙인 이름으로서의 정의(情義)는 의식의 체류 단계로서의 〘윤리계〙에 해당하는 정취를 가리킨다. 우리가 흔히 [양심의 가책]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도덕적 정념인 [정륜(情倫)]에 속하는 반응으로 필자는 양심에 관계될 때에는〘양정(良情)〙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도덕적 정취인 정의(情義)는 가책과 같은 의지적 감정이 아니라 순수한 분위기의 정세를 접할 때 그 분위기 속에 내포되어 있는 도덕적 기품을 간취하고 느끼는 순수한 기분으로 준엄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 긍정적 정의(情義)

떳떳함{호연(浩然)}     

 부정적 정의(情義)

자기의 도덕성의 긍정과 부정에 관해 자기 자신이 느끼는 감정. 부끄러움. 뉘우침{후회}.

자기의 행위의 타당성과 부당성에 관한 감정. 바끄러움{미안함}. 회한.  

   

성리적(性理的)* 정취인 정건(情虔)

*성리(性理): 여기에서의 성리는 송나라 때의 유학적 이론에 따른 성리학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다만 필자의 의식의 발전 단계인 〘성리역(性理域)〙에 속하는 감정인 정조(情調)에 해당하는 정취를 가리키는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필자가 성리적 정취에 붙인 이름으로서의 정의(情義)는 의식의 체류 단계로서의 성리기에 해당하는 정취를 가리킨다. 이들 정의에는 다음과 같은 감정들이 딸려 있다. 아래의 감정들은 전형적인 정건이다.

경건하다

신비롭다

성스럽다. 

엄숙하다

숭고하다.

거룩하다.



                

필자가 집필 중인 "[마음의 얼개 1]의 정신적 기관 3 감성" 에서 옮겨 적음. 

거기에 적은 표와 용어 설명 그 밖의 사항이 다수 빠져 있는데 이를 일일히 따로 설명하지 못해 읽으시는데 큰 불편을 드리게 된 점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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