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 재밌게 읽는 법

독서를 내 취미로 만드는 비결

by 사나별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책과 세계』, 강유원


이 인용구처럼 어쩌면 책에 미친 사람들을 광인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따져보면 독서도 그저 취미의 일종일 뿐인데 (심지어 공간을 많이 차지하잖아요?) 우리는 왜 유독 독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선망하게 되는 걸까요?


가장 단순한 이유는 아마도 '멋있어 보여서'가 아닐까요? 그 이상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하지만 멋있는 취미는 세상에 차고 넘칩니다. 역동적인 스포츠, 의미 있는 수집, 설레는 여행 등. 이 모든 취미를 '멋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유독 독서 취미를 가진 사람을 '멋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왠지 모르게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독서광에게서 상징 자본의 위엄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상징 자본이라는 개념,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있습니다.


부르디외는 여러 저서에서 이 개념을 깊이 있게 다루었는데요. 특히 『자본의 형태(The Forms of Capital)』 즉 한국어 번역본인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에서는 "상징 자본은 다양한 형태의 자본이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고 인정될 때 취하는 형태이다"라고 설명했어요.


그의 대표작 『구별 짓기』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문화 자본과 상징 자본이 어떻게 사회적 계급을 만들어내고 또 유지하는지에 대해 아주 심도 있게 분석했죠. 그러니까 단순히 '멋있다'는 감정을 넘어, 독서가 가진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이 '상징 자본'이라는 개념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제 이런 의문이 드실 수 있겠죠.


"계급이라니, 책 안 읽으면 천민이란 소린가?!"


부르디외의 주장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건 아니고요. 우선 상징 자본의 의미를 좀 더 쉽게 풀어보고, 왜 독서가 여기에 연결되는지 이야기해 드릴게요.


피에르 부르디외는 우리가 가진 자본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1. 경제 자본: 돈, 부동산, 소득 등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해요.

2. 사회 자본: 쉽게 말해 인맥, 즉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자본입니다.

3. 문화 자본: 학벌, 언어 구사 능력, 세련된 취향, 좋은 습관, 다양한 지식 등 배움을 통해 얻게 되는 자산이죠.

4. 상징 자본: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남들이 존경할 만한 사회적 평판입니다.


이 중 맨 마지막인 상징 자본은 보통 다른 자본들이 바탕이 되어야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돈이 많으면(경제 자본)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있고(문화 자본), 그럼 자연스럽게 사회적 평판이 좋아지는(상징 자본) 식이죠.

그런데 상징 자본에는 아주 특별한 성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실제로 경제, 사회, 문화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설령 생활이 어렵고, 사람들과 교류가 적고, 학력이 높지 않더라도 상징 자본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상징 자본은 남들이 그 사람을 존경할 만하다고 '믿어줄 때' 비로소 생겨나는 자본이기 때문이죠.


"거지, 히키코모리, 중졸도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된다고? 그거 사기 아냐?"


언뜻 들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독서광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어떤 남자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집에서만 지내며, 학력도 높지 않다고 해봅시다. 그가 그냥 칩거한다면 우리는 그를 보고 아무래도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겁니다.

그런데 방 한쪽 벽면에 민음사, 문학동네, 워크룸 프레스 같은 출판사의 해외 문학 전집 총서가 가득 차 있고, 그가 매일같이 그 책들을 읽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우리는 그를 보며 방금과는 사뭇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 겁니다.


'멀쩡한 사람이 왜 저러고 살지?'

'똑똑한 사람인데 어쩌다 저렇게 된 걸까?'


이게 그가 상징 자본을 작동시킨 방식입니다. 그는 그저 방에서 책만 읽었을 뿐인데, 어쩐지 비범하고 똑똑하며, 뭔가 사연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 거죠.


제가 굳이 종이책, 특히 해외 문학을 예시로 든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사실 종이책을 잘 읽지 않았거든요. 언제부터냐고요? 스마트폰이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요. 성인이 된 후에는 독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습니다. 원하는 친구들과 원하는 학과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연애하며 노는 게 훨씬 더 재미있었으니까요(하지만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어쨌든, 스마트폰이라는 유혹적인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남달라 보입니다. 자기 통제를 잘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깊이 몰입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죠.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겠죠.


특히 해외 문학은 더욱 그렇습니다. 때로는 난해한 번역체는 물론이고 낯선 담론과 문화, 그리고 역사적 배경까지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책들을 꾸준히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높은 문해력과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의미가 됩니다.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는 거죠.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에는 쉽게 흥미를 잃습니다. 가깝거나 자극적인 이야기에 훨씬 더 끌리죠. 그런데 아주 먼 나라의, 나와 전혀 상관없는 가상의 인물에게 몰입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는 그 사람의 인품이 좋을 거란 기대 또한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우리를 더 깊이 있고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힘을 가집니다.


물론,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 선량한 것은 아닙니다. 책 좋아하는 사이코패스도 분명 존재하겠죠. 하지만 독서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더욱 연민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상징 자본에는 인품(선량함) 역시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니까요.


당신이 성실하고 선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잠재적 자본에 머물러 있는 단순한 도덕성일 뿐입니다. 그러나 독서광인 당신을 누군가 보고 "저 사람 정말 대단한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의 선함은 상징 자본으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소설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상징 자본으로 무장하고, 깊이 있는 욕망의 대상이 되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서문이 길어졌네요. 아마 눈치 빠르거나 야망 있는 분들은 여기까지 읽고 벌써 필요한 책을 찾아 나섰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질문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소설을 재밌게 읽는 법이 뭔데?"


저도 성질 급한 사람인데 어쩌다 이렇게 미괄식으로 글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역사서와 함께 읽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는 15세기 프랑스 왕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네, 바로 그 시대의 프랑스 생활상을 다룬 역사서를 함께 보면 되는 겁니다.


"어떤 역사서를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걱정 마세요! 학습 만화를 읽으세요. 학습 만화도 엄연히 ISBN을 발급받은 책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역사적 맥락, 즉 전체적인 이미지니까요. 상징 자본에 대한 선망으로 시작했다고 해서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험을 칠 것도 아니니 역사를 완벽하게 알 필요는 없어요.


학습 만화는 뛰어난 만화가들이 펼치는 생계와 예술의 각축장이라 내용이 정말 탄탄하고 흥미롭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부터 학습 만화 덕을 톡톡히 봤어요. 홍은영 작가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유려한 그림체로 이목을 끌어 전 국민의 기초교양을 대폭 올렸죠. 우리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완독 하지 않았어도, 오디세우스가 누구며 트로이가 어느 국가와 싸운 건지는 알고 있잖습니까?


만약 좀 더 점잖은 역사서를 보고 싶다면 종교사 (특히 그리스도교 종교사는 웬만한 역사적 배경을 올인원으로 해결해 줍니다)나 선교사 수기를 살펴보세요. 선교사들의 일기는 예상외로 아주 솔직한 내용이 많습니다.


학습 만화도 여의치 않다면 하다못해 나무위키라도 펼쳐 보세요. 유튜브는 나무위키의 짜깁기가 대부분이라 회의적이긴 하지만, 안 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AI한테는 절대로 묻지 마세요. 그 깡통은 그럴듯하게 대답하는 언어 모델일 뿐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AI의 답변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수용자에게 있습니다. AI나 관련 기업은 아무런 책임이 없으니 정말 괘씸할 따름이죠.


물론 나무위키는 어디까지나 급할 때 때우는 용도입니다. 나중에 출처가 나무위키라는 밑천이 드러나면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닐 겁니다. 나무위키로는 전체적인 스케치를 파악한 뒤, 세부 키워드와 걸맞은 역사서를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어떤 시대에 누군가가 무슨 일을 겪었고, 그 주변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게 된다면 해외 문학 속 인물들은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며 내 기억 속에 함께하는 존재가 될 거예요.




현대에 유독 책이 재미없게 느껴지고, 등장인물을 이해하기 어려운 건 어쩌면 우리가 공유하던 보편 교양이 사라졌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 역사적 이유로 우리는 보편 교양이 있을 때 그걸 잘 관리하지 못했어요. 한국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목숨 건지기 급급하느라 문화적 행위를 경멸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건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겠죠?


한국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한국보다 더한 상황에 처했던 나라도 많으니 이 정도면 호사입니다!


책 읽는 일이 덜 매력적으로 보여도 좋습니다. 그저 누구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취미가 되기를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치겠습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