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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주 Jul 11. 2023

짝사랑의 올바른 자세

를 배우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1. 자기 감정을 상대방에게 투사하지 않는다. 혹시 그 사람도 날? 응 아니야. 그건 너만 그런 거야.

2. 어쩌다 그 사람이 날 쳐다봐도 그냥 내가 그 사람 시야에 걸려 있던 것일 뿐이니 눈 초롱초롱해지지 않는다.

3. 어느 날 나한테 말 걸어도 그냥 내가 거기 서 있어서 그런 거니까 괜히 심장 나대지 않는다.

4. 웬일로 나한테 먼저 연락해도 뭐 물어보려고 그런 거니까 망상 뻗치지 않는다.

5. 그냥 전반적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6. 때로는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게 예의라는 걸 가슴 깊이 새긴다.

6. 더불어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면 이 분야 전문가 반열에 들 수 있다.


살면서 짝사랑한 사람도 많지만, 사람 아닌 것들은 더 많고 많다.

바이올린. 그림. 제과제빵. 과학. 공간지각능력. 남의 재능. 남의 미모. 남의 인성. 돈. 좋은 팔자. 비거니즘. 세계평화. 지구온난화 저지. 그리고 글.


올해 상반기에 냈던 공모 6개가 다 떨어졌다.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까진 괜찮았으나 네번째, 다섯번째를 하루에 연달아 때려맞으니 실의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말입니다.

요며칠 자신을 정말 못났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럼에도 일곱번째, 여덟번째 공모를 준비하면서 또 기대하는 마음은 내가 혹시라도 잘 될까봐서가 아니라 내 MBTI가 N이라서 그런다. 이놈의 망상분자 이 더러운 습관을 언제 고칠까!


여섯 번을 떨어지고도

여전히 별볼일 없이 쓰는데도

여간해선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는데도

지금 굴리고 있는 시놉시스에서 뭐 하나라도 좋은 게 떠오르면

주책없이 설레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뭔가 의미있는 걸 쓸까봐.

매번 그 기대를 도무지 놓지 못하는 서글픈 자아를 매번 발견하는 걸 보니

짝사랑의 올바른 자세를 배우기에는 이번에도 그른 듯하다.

이젠 그런 걸 과연 배우고 싶은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유해한 망상이 건전한 희망에 너무 오래 전부터 기생하여 희망이 제 혈관을 뻗쳐 망상도 같이 키워냈으므로, 이 경계가 불분명한 꿈의 조직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적출해야 할지 오늘도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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