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경진대회 심사위원으로서 보이는 것들 by 경영지도사 김민지
잠깐, 이 것 부터 보고 갑니다.
2020년 12월 29일, 저는 과분하게도 서강대학교 2020 제11회 스타트업 오디션 서류심사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여개 이상의 서류를 심사하면서 서류 하나하나에 담긴 학생 창업자들의 창의력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최고점을 주어서 창업 생태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워밍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기회는 한정되어 있기에 일단 서류에 언급된 바로 좀 더 준비된 스타트업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이번 창업경진대회에서 서류 심사에 아깝게 떨어진 팀이 이 뉴스레터를 통해 ‘이 사람이 우리 팀 떨어트리는데 일조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원망하실 마음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 개인적으로는 점수를 높게 준 팀보다 점수를 낮게 준 팀에게 오히려 더 정이 갔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 뉴스레터 읽고 저에게 따지러 찾아오신다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밥이라도 사주면서 어떻게 하면 사업계획서를 보완할 수 있을지 피드백도 함께 드리겠습니다.
서강대학교 창업경진대회 서류심사에 적어야 할 양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심사기준에 따라 공정한 심사를 했습니다.
참가신청서에 이미 심사 기준이 고지되어 있었으니 공개해도 문제 없겠죠?
기억 나시나요? 예전에 지난 뉴스레터에서 이 세상 모든 창업 심사는 반드시 최소한 ‘시장성’과 ‘기술성’ 2가지 기준으로 평가한다. 이 평가 기준을 벗어나는 심사 과정은 절대 없다. 제 경영지도사 자격증과 앞으로의 연애 및 결혼 운을 걸고 단언했잖아요.
대개 투자를 할 때는 ‘사업타당성 분석’ 관점에 따라 기업을 평가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①시장성, ②기술성, ③수익성 이 3가지 척도로 기업을 판단하죠. 창업경진대회 역시 가급적 앞으로 부가가치를 가장 많이 창출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우수 사례로 평가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다음 척도는 이런 의미입니다.
창업진흥원의 2020년 예비창업패키지 심사 기준을 예시로 들어봅니다. 알고 보면 다음 척도에 따른 기준이 적용된 겁니다.
문제인식 : ①시장성,
해결방안 : 시장분석 - ①시장성, 경쟁력 확보방안 - ②기술성
성장전략 : ③수익성에 해당합니다.
다만 ①, ②와 달리, ③수익성의 경우는 모집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가끔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극히 일부의 사례이긴 하지만, 가령 교육 목적으로 청년들의 창업 경험을 장려하기 위해 진행하는 대학생 창업경진대회의 경우에는 ③수익성이 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일단 창업이라는 도전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돈을 대줄 테니 한 번 좋은 경험을 해 보아라.” 라는 식으로.
어쨌든 최소 ①시장성, ②기술성은 반드시 들어갑니다.
서강대학교 스타트업 오디션 역시 이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필사적으로 논리를 찾아 주장하는 것처럼 느낀다면 그것은 기분 탓…연애운과 결혼운을 지키겠다는 굳은 심지)
본 표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①시장성,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②기술성, 그리고 핑크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③수익성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번 서류 심사를 하면서 접한 학생 창업자들의 안타까운 실수 사례를 공유하고, 보완점을 전달하여 앞으로 창업자로서 건승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물론 학생 창업자의 프라이버시 및 아이템 보호를 위해, 지금 사례로 나온 사업계획서는 학생 창업자들의 사업계획서 그대로가 아니라, 제가 아예 가상의 사업 아이템을 예시로 잡은 다음, 재구성해서 새롭게 쓴 사업계획서임을 밝힙니다.
이제부터 ‘홈트립’이라는 가상의 스타트업을 하나 상상해봐요. 이 스타트업은 <집에서 떠나는 세계 여행>이라는 주제로 세계 문화 체험 키트를 구독하는 서비스를 만들어간다고 가정합시다.
밀키트로 해당 나라의 음식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해당 나라의 문화유산 미니어처를 제공, 혹은 AR/VR 등의 혼합현실 기술을 활용하여 볼 수 있는 해당 나라의 유명 관광지 컨텐츠가 담긴 구성된 키트를 매월 구독하는 서비스 입니다.
참고로 말하지만 이번 2020 서강대학교 스타트업 오디션에 실제로 이 아이템으로 출시한 팀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방금 지어낸 아이템입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스타트업이 있나 검색해 봤는데 정확히 이 아이템으로 사업 진행하는 스타트업은 못 찾겠네요. (혹시 제가 모르는 건지? 아시는 분 제보해주시면 감사합니다!!!)
그나마 비슷하다면, 매달 나라 1개를 정하고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과자를 박스에 담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미국 스타트업 ‘유니버셜 얌스’ 그리고 AR/VR 기반의 국내 에듀테크 스타트업 ‘토포로그’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토포로그’는 동북아역사재단 요청으로 전국 78개 초중고교에 독도지형모형액자와 VR카드보드로 구성된 ‘독도 가상여행 체험학습 키트’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네요.
① What은 누구나 다 안다. How를 말하자.
불행히도 우리의 홈트립은 대진운이 안 좋았습니다. 하필 홈트립과 거의 유사한 서비스도 출전했거든요. 그것도 바로 직전에 심사한 팀… 그 팀의 이름을 포켓월드라고 합시다. 분량은 비슷해도 문제를 인식하는 깊이가 달랐고, 또 홈트립의 해결책이 일반론적인 반면, 포켓월드의 해결책은 그 팀만의 구체적인 전략이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포켓월드와 홈트립의 차이를 알겠나요?
포켓월드는 고객이 겪는 문제점에 보다 예리하게 집중했습니다.
지금 고객이 힘든 거 다 알아요. 그런데 포켓월드가 고객이 ‘어떤 면에서 구체적으로 힘든지’까지 기술한 반면, 홈트립은 ‘뭐가 힘든지’까지만 적었네요.
해결책 역시 홈트립은 ‘무엇으로 해결하겠다’까지만 적은 반면, 포켓월드는 ‘무엇을 남과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제공하여 고객의 만족도를 높일 것인지’까지 생각했습니다.
② 이왕이면 다홍치마, 그림을 넣읍시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창업 멘토들이 사업계획서 작성할 때 꼭 하는 말이 있죠.
“제품에 대해서는 1~2줄 정도의 짧은 문장으로 정리하라. 그림이 들어가면 더 좋다.
심사위원들은 하루에도 몇 십개, 아니 몇 백개의 서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줄글 위주보다 그림으로 가독성 있게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 더 보기 좋고 인상에도 강하게 남는다.”
네, 제가 심사를 해보니까 그 말씀이 이해가 가요.
솔직히 말해서 일단 줄글로 길게 쓴 사업계획서보다는 개념을 그림으로 표현한 사업계획서에 더 눈이 가는데요. 그림을 넣은 사업계획서가 더 좋아보인다는게 편견은 아닐까, 혹시 공정한 심사에 방해가 되는 게 아닐까, 그림만 없을 뿐 자기 사업 아이템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실천하는 스타트업을 편견 때문에 놓치는 게 아닐까 주의하면서 다시 한번 천천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넣고, 1~2줄 정도로 간략하게 아이템을 설명한 팀이 그렇지 못한 팀보다 사업 구체화가 더 잘 이루어져 있더라고요. 서류를 단지 가독성 좋게 써서 후광 효과로 서류 내용까지 좋아보이는 게 아니더군요.
그림을 넣고, 1~2줄 정도로 간략하게 아이템을 설명했다는 건, 고객이 겪는 불편함이 뭔지, 그리고 이 아이템으로 고객의 불편함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명확하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사업 아이디어의 완성도가 높은 거고, 따라서 외부에 본인 사업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죠. 본인 사업에 대해 길게 줄글로 쓰신 분들은, 실제로 뒷장의 고객 분석, 비즈니스 모델 등도 객관적 지표가 아닌 감상적, 추상적으로 쓰시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홈트립은 다음 항목을 이렇게 작성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에 따르면 전 세계 구독경제 규모는 지난 2000년 2,150억달러에서 2015년 4,200억달러로 성장한 데 이어 올해 5,300억달러까지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또한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0년 4월 SNS를 사용하는 전국 만 15~6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구독 경제’ 및 ‘구독 서비스’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앞으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싶다고 답변한 소비자가 무려 89.9%에 달한다. 따라서 구독 경제가 향후 발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독 경제의 경쟁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은 소비자(69.3%)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둘째,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
소비자들은 구독 경제를 통해 소비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고 (80.7%), 구독서비스는 개인에게 맞춤화된 서비스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80.7%) 이처럼 구독 경제 시장은 매우 경쟁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서술은 ‘구독경제’ 자체의 강점입니다. ‘홈트립’만의 독창적인 차별점이 될 수 없죠.
홈트립만의 독창적인 차별점을 작성하려고 했다면, 다음과 같이 작성했어야 합니다.
ex 1) 경쟁사 대비 저렴한 가격 (밀키트를 공급하는 식당과의 제휴를 통해 원가를 낮춘 것이 비결)
ex 2) 경쟁사 대비 높은 품질 (현지인 디자이너를 섭외하여 그 나라 감성을 정확히 반영)
역시 우리의 홈트립이 작성한 시장 분석 내용을 볼께요.
이 항목에서 묻는 것은 ‘그래서 홈트립의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PEST 분석 등 거시환경 분석에 쓰이는 툴을 도입한 건 좋은데, 분석하려는 범위가 너무 막연한게 문제입니다. 다음 PEST 분석은 일반적인 2021년의 변화상만 나열했을 뿐입니다.
범위를 좁혀서 ‘홈트립’을 주로 이용할만한 고객이 사는 환경만 집중해봅시다.
해외여행을 직접 가지 않고 굳이 집에서 키트를 구독하려는 사람들이 가진 특정한 니즈는 무엇일까, 또는 다른 취미 구독 키트도 많은데 그 중에서 ‘해외여행’이라는 테마를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홈트립이 이렇게 환경 분석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이를 통해 앞으로 경제가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여행을 좋아하지만 돈이 없는 MZ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해외여행 키트 구독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리라는 사실을 설득시킬 수 있죠.
이번 뉴스레터는 쓰다보니 내용이 방대해져서 2탄은 다음 시간에 쓰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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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 경영지도사, 서울시립대 창업지원단
2015년 경영지도사(마케팅) 자격증 취득 이후 대학교 및 지자체의 창업보육센터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넓게 교류하며 진심으로 소통하며, 각 대표님들의 마음의 불안이나 초조함 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글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아래 유튜브에서 김민지 필진의 다양한 콘텐츠를 확인하실 수 있어요!
http://youtube.com/minjikim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