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더웠냐 싶게 쌀쌀해진 가을날. 해가 짧아지는 만큼 나의 퇴근길은 어두워졌다. 이날도 어두워진 길을 걷고 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싱숭생숭 심란했던 날이라 그런가, 어둠 속을 걷는 나 자신이 참 초라하다고 느껴졌다. 그냥 불현듯 나의 인생이 나의 시간들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처럼 어두컴컴하지 않았나 싶었다. 누군가는 찬란한 삶을 사는 동안, 나는 왜 아무런 의욕도 없이 빛 한줄기도 없이 그저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인생을 살고 있나. 나 스스로 빛나지 못한 채, 너무 쉽게 이런저런 일들을 포기하고 뒤로 미뤘던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게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내 인생 같아서 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마음으로 뒤돌아서서 오던 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둠뿐인 줄 알았던 이 길이, 내 인생이 분홍빛 붉은 노을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분명 어둠 속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하루를 찬란하게 빛냈던 빛이 아름다운 노을로 저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큰 위안을 받았다.
서서히 저무는 저 빛이 그대로 쭉 사라지지 않고, 내일 되면 다시 뜰 것을 알기에,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도 내일이면 다시 환해질 것을 알기에.
오늘 잠시 싱숭생숭 심란했다고 내 인생을 단정하지 말자고.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그만큼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그리고 또 내일 뜨는 빛처럼 나의 인생도 여전히 빛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