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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 Jun 17. 2024

완치는 어려우니, 찜질이나 가끔 하러 오세요.

[엄마+브랜딩] 01.


오른발이 내내 시큰거려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의 설명을 듣는 순간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그림을 마주한 시간 같았다. 도슨트가 빠르게 정보를 주지만, 그림을 이해할 시간은 이 그림을 지나치고 나서야 충분할 것 같다.      

뼈와 뼈 사이의 엑스레이, 라고는 하지만 내 눈에는 하얀 지형 지물의 능선과 계곡 사이,의 지도 같았는데 그 모양새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로 답도 못했다. 의사는 단호한 말투를 구사했다. 점쟁이 같기도 했다.




* 예전에 인대가 늘어난 적이 있나 봐요?

- 아 제가요? (멍..)

* 많이 걷거나 하루종일 서 있는 직업인가봐요?

- 아 제가요? (멍..2)

* 남들보다 이 부분이 안 붙어있어요.

- 아 제가요...(세상 남얘기)

* 모르고 지나쳤나보죠?

- 아 아마도..

* 인대 늘어난 흔적 때문에 지금 힘줄에 좀 염증이 생긴 것 같네요.

- 그러고 보니...(이제 말을 좀 하려 했을 때)

* 약 드릴게요. 찜질 좀 받으시구요. 또 뵙죠..

- 넹..(퇴장)     



애초에 내 대답은 필요 없었던, 의사의 짐작은 당당했고 당당한 짐작에 비해 해줄 수 있는 치료는 보잘 것 없어 보였다. ‘또 뵈야 한다’ 얼마나 또 뵈야 나을지도 못 들은 채, 비로소 내 생각이 시작됐다.      

하루종일 앉아있는 직업이었는데도 이렇게 아프다고?


알지 못한 때 인내했고 생각지 못한 때에 후유증을 겪는다.

뭔가 서럽지만 좋았다.

왜인지 자꾸 시큰대던 근육에 그럴 만 했다, 남들보다 조건이 그랬으니 더 아플 수 있었다고 물리적이고 합리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의 고통이 엄살이 아니었구나, 오히려 너무 잘 견뎌서 생긴 일들이었구나”를 알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내 발, 수고했다- 그렇지만 언제 회복될지는 모른다.      


어제는 뻥 뚫렸다가 오늘은 꽉 막혔다가 좀전에 저쪽에 있었다가 지금은 이쪽에 머물다가

하루는 연속적인데 순간순간 분절되면서 나의 이상, 소원, 바람, 생각, 나란 사람의 신분, 소속까지도 문득문득 ?!?!? 깨어졌다가 다시 붙는 지금 나는 결혼 후 엄마가 됐다.

싱글-연애중-결혼-출산까지 자연스러운 과정은 아니었고 각각의 그만치의 혼란과 고통을 겪은 뒤에 얻은 자격이어서 당연히 소중하다. 그런데, 소중한 것과 어려운 것은 다른 이야기. 정말 어렵다.     


엄마를 하면서 딸과 아내로 사람 구실을 하면서 어떤 조직, 어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아무것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못하면서 아무거나 하면서 사는 심정은 몹시 복잡하다. 그리고 ‘아무거나’로 보여서도 절대 안된다.     


자신감을 가지란 말보다 심플하게 살라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일상이 불행해질 만큼 큰 상처가 아니지만 어렵고 불편한 일들. 왜 아픈지,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는지, 어떻게 얼마나 해야 나을지도 모른채 일단 고고하는 삶.


치유는 어려우니 찜질이나 해볼까.

어쨌든 덜 불편하게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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