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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짜오 베트남 Nov 23. 2019

하노이의 잠 못 드는 밤

베트남 축구와 박항서 감독, 그리고 아찔했던 베트남 입성 신고식!  

11월 19일, 오늘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인 베트남과 태국의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다. 경기는 저녁 8시부터인데 오후 2시가 되지 않은 시간부터 도로 곳곳에 오토바이에 빨간 베트남 국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커다란 베트남 국기를 휘날리며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거리마다 베트남 국기와 응원봉, 빨간 티셔츠를 파는 사람들이 즐비한 걸 보니,  '오늘은 또 얼마나 막히려나~ 내가 가는 도로는 통제가 되지 말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부터 먼저 든다. 

오늘은 특히 우리가 한 달 동안 잠시 머물던 아파트에서 원래 살던 아파트로 돌아오는 날이라 (살던 아파트의 상수도가 폐유에 오염되어 회사에서 한 달간 다른 아파트를 얻어줬다) 아침부터 짐을 싸고 체크아웃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데다가 하필 클럽활동까지 있는 날이라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날이기도 한데, 여기에 축구 경기까지 있다니... 아이들이 오는 시간은 5시 반 정도. 오후 4시 반만 넘어도 급격히 안 좋아지는 하노이 도로상황에, 클럽이 끝나고 아이들을 내려주는 곳이 오늘 축구 경기가 열리는 미딩 경기장이 있는 동네이기 때문에 나는 긴장을 바짝 하고, 평소보다 30분 정도 빠르게 움직였다. 

약 경기 한 시간 전의 모습, 늘 붐비던 도로인데, 모두들 일찌감치 축구를 보기 위해 귀가해서인지 도로가 한산하다.  

다행히 가는 길이 통제거 되지 않아, 나는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나 늦게 도착했다. (하노이 도로는 정말... 출퇴근 시간이나 비 오는 날, 특히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답이 안 나온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꽉 막힌다.) 집으로 올 때는 저녁을 먹고 아예 축구경기가 시작된 후, 움직이기로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도로는 180도로 변했다. 이제껏 이 도로가 이렇게 한산했던 적이 있었던가. 도로에 차 한 대, 오토바이 한 대 보이지 않는다.  

평소 국제 경기가 있는 날은 늘 그렇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 기분 탓인가. 알고 보니 오늘 상대편인 태국은 베트남의 오랜 축구 라이벌로,  2007년 이후 태국과의 경기는 홈경기에서 늘 패했던 터라, 베트남 사람들에게 태국과의 경기는 특히 예민하단다. 축구로만 보면 마치 한-일 전 같은 분위기랄까.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까지 베트남이 무패로 상승세를 이어 온 탓에 베트남 사람들은 "제발 이번엔..." 하고 기대에 차 있는 상태다. 결과는 0-0 무승부. 태국과의 경기가 끝나고 진 날은 술집 같은 곳에선 작은 사건 사고도 이뤄 난다고 하는데, 지지 않아 다행이다. 

도로도 그다지 시끄럽지 않다. "만약 이겼더라면 아파트 앞 큰 대로가 호각소리와 오토바이 소리 경적 소리로 밤새 불야성을 이뤘을 텐데..."  '아쉽다'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잠은 잘 수 있겠군...' 하는 마음도 약간은 들었다. 그만큼 베트남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대단하다.


작년 가을, 베트남에 온 지 한 6개월 정도 되었을 땐가. 이제 좀 베트남에 적응이 되나 싶었을 때, 우리 가족은 베트남에 온 신고식을 제대로 치뤄야 했다. 그때는 베트남 사람 대부분이 반신반의하던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많은 우승을 안겨주며 승승장구하고 있던 터라 온 나라가 '박항서'란 이름을 외치고 있을 때다. 사실 우리도 그 덕을 좀 봤다. 박항서 감독과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박항서'를 외치며 말을 걸었고 가는 곳마다 우리를 호감어린 얼굴로 반겼다. 내가 아는 지인은 그랩을 탔는데 (그랩을 예약할 때 손님 이름이 뜬다) 박항서 감독과 같은 성인 '박 씨'라는 이유만으로 그랩 기사에게 사탕을 받기도 했단다. 

그러면서 생긴 뿌듯함과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을 기억해서인지... 빨간 물결과 오토바이 빛이 가득한 현장에서 나도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 어느 나라와의 경기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아시아 축구 연맹 U-23 축구 선수권대회> 준우승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외식을 가자며 식구들을 꼬셔, 거리로 나섰다. 


작년,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에서 베트남 대표팀의 우승 직후  / 베트남 익스프레스 제공      하노이 시내가 대부분 이랬으니, 우리도 저 길을 뚫고 온 거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호안끼엠 근처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축제의 분위기를 '안에서만' 느낄 때는 참 ~ 좋았다. 경기가 끝날 무렵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상황은 정말 달라졌다. 도로는 이미 경적소리와 빨간 '오토바이 파도'에 점령당해 차들은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황이라, 택시는 아예 다니질 않고, 그랩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단 조그만 걸어 나가 보자"며 아이들을 다독여 나오긴 했는데 아무리 걸어봐도 온 도시가 상황은 똑같았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초 흥분 상태'로 우리 아이들 앞으로 커다란 베트남 국기를 흔들고 '박항서'를 외치며 질주했다. 가뜩이나 걷는 길이 부족한 하노이에서 그 속을 뚫고 걷자니 단 5미터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후회해 봐도 이미 늦은 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는' 그런 길을 체감상 족히 한 시간은 걸었을 터라 아이들은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오토바이 매연에 코와 머리도 아프다고 징징댔지만 사실 그것보다 오토바이 경적소리와 그들의 모습 자체에 이미 공포에 질린 상태였다. 어른인 나와 남편에게도 공포였으니 어린 아이들에겐 오죽했을까. 

어쨌든 그렇게 아이들을 다독이며 한참을 더 걷다가 우연히 도착한 터미널에서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타는 것으로 우리는 호된 신고식을 끝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추억이 되었지만, 강렬하고 아찔했던 그 날 이후로 우리는 국제 경기가 있는 날은 웬만하면 시내에 나오지 않고, 나와도 경기가 한창일 때 재빨리 움직이는 습관이 들었다.

작년 스즈키컵 결승 당시 모습. 우리 아이들은 태극기와 손수 그린 베트남 국기를 들고나가 함께 응원했다.  그 덕인지 ^^ 이날 베트남이 승리하며, 결국 베트남이 우승을 거뒀다.

베트남 축구는 프랑스에 의해 전해졌는데, 그 후 호찌민 주석의 강력한 권장에 의해 활성화되었다. 예부터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스포츠 만한 것이 없다고 했던가. 호찌민 주석은 "신체 훈련과 스포츠는 국민들의 건강과 행복은 물론 국가 건설과 국가의 방위와 번영에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며 국민들에게 축구를 권장했다고 한다. 

그렇게 국민 스포츠가 된 베트남 축구. 우리야 박항서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야 베트남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만, 사실 베트남 사람들의 축구 경기는 유별나다. 실제로 하노이를 걷다 보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곳에도 작은 축구 코트가 있다. 이렇게 실제로 축구를 하는 사람도 많고, 보는 건 더 좋아한다. 특히, 대표팀 경기는 물론 유럽리그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엔 정부의 지시로 전국에 중계하려던 유럽 축구 경기 방송을 취소하자,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듣기도 했단다. 더 큰 문제는 축구 사랑이 단순히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수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축구 도박이 전국적인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 문제가 심각해져 정부에서도 단속을 하곤 있지만, 여전히 큰 경기가 끝나면 전당포가 호황을 누린다고 하니, 아직 완전히 나아지진 않는 것 같다. 


여전히 하노이는 국제 경기가 있는 날 밤엔 거의 불야성이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엔 큰 국제 경기가 있는 날엔 로비에 스크린을 설치해 모여서 보거나, 더 큰 경기엔 광장에 펜스를 쳐 놓고 함께 모여 보는 경우도 있어 이제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 멀리 나가지 않고도 축제의 분위기를 함께 느끼며 응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곳에 박항서 감독이 엄청나게 큰 성과를 내고 있으니 같은 한국인으로서도 엄청 뿌듯하고 박항서 감독 덕택에 한국인을 향한 분위기가 엄청 좋아진 것에 감사함을 전한다. 이들에게 박항서 감독은 정말 영웅이다. 식당마다 그가 간 곳에는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가보처럼 모셔놨고, 대형 마트에도 '완전 초 A급' 스타처럼 그의 입간판이 서 있다. 베트남 물건은 물론, 소시지, 핫도그 등 한국과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상품의 텔레비전 CF 주인공은 대부분 박항서 감독이다.   

대진표를 보니, 베트남 경기는 이제 내년에 있다. 내년에도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팀이 좋은 경과를 거둬 우리도 다 함께 좋은 분위기 속에서 베트남 팀을 응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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