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신 ep.1 기적의 시간

by Celloglass

2002년, 모두가 기억하는 기적의 시간이 있었다. 영토도 작고 인구도 적은 나라가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며 4강의 신화를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영광의 순간에 가려진 과정들은 오래 기억되지 않았다. 자국에서 치러지는 대회였기에 우리는 히딩크라는 거물 감독을 영입했지만, 부임 직후 독일전에서 0:5로 대패를 맛봤다. 수많은 사람들은 협회와 히딩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히딩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평가전은 평가전일 뿐이다. 나는 시도하고 싶었던 실험을 다 했다. 오늘의 패배에 실망하지 마라. 우리의 목표는 오직 월드컵이다.”


당장 교체해야 한다던 사람들도 16강, 8강의 경기를 지켜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평가전 때와 달리 선수들은 전혀 다른 팀이 되어 있었다. 매 경기 승을 이어가면서 전 국민은 빨간 티셔츠를 생활복처럼 입었고, 거리마다 “오! 필승 코리아”가 울려 퍼졌다. 가수 윤도현은 신혼여행 중 급히 귀국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히딩크는 4강 신화를 남기고 떠나며 이렇게 한국 축구를 회고했다.

“공격 상황에서 어린 선수들은 위계상 가장 높은 선수, 대개 나이가 많은 선배를 기다린다. 그가 와서 공을 잡고 마무리하길 바라는 것이다. 선배가 없으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기회는 사라졌다.”


한국은 그렇게 성장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이런 잔재가 존재한다. 젊은 세대는 이를 ‘꼰대 문화’라 비꼬았고, 여전히 어르신들은 나이가 곧 계급이라는 유교적 질서를 붙들고 있다.


히딩크는 단순히 축구 성적만 남긴 것이 아니다. 그는 한 국가에 이렇게 외쳤다.

“너희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잔재 때문이다.”


그는 조직을 갉아먹던 선후배 문화를 깨뜨렸기에, 비로소 4강 신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히딩크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만 가능했다.


이후 20대 초반의 손흥민은 역대 최고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었을 때다. 누구보다 빠르게 페널티 에어리어에 들어가고도 본인의 슛 대신 뒤따라오는 선배에게 공을 내주며 기회를 날려버리곤 했다. 수도 없이.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축구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는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