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된 전세, 누가 판을 짰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처음엔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이 돈이 없었겠지, 경기가 안 좋아져서 그렇지.
그렇게 넘기려 했다.
그런데 같은 피해자들이 있었다.
동일한 건물, 동일한 시기, 동일한 조건. 그리고 반복되는 말.
“저는 명의만 빌려줬을 뿐입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이건 우연도, 사고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짜인 ‘사기’였다.
흔히들 ‘전세사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말은 절반만 맞다. 실제로는 사기처럼 흘러간 전세가 아니라, 애초부터 사기로 설계된 전세다.
그래서 나는 이 현상을 '사기전세'라고 부른다.
이 구조는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시행사, 시공사, 분양팀, 주변 부동산까지 하나의 팀처럼 움직인다. 이 중에서도 부동산은 핵심이다.
그들은 늘 말한다.
“우린 단순 중개만 했어요.”
“경기가 이런 걸 어쩌겠어요.”
하지만 이 구조에서 전세가는 단순한 시장 가격이 아니다.
이들은 애초에 전세가를 먼저 설정한 뒤, 사업을 짠다.
예정된 대출금과 이익 마진을 전세보증금에 얹어 가상의 시장가를 만든다. 그리고 주변 시행사, 부동산들과 이 금액을 공유한다. 그 시점부터 주변의 모든 신축 전세가는 통일된다.
전세보증금은 곧 사업자금이며 동시에 출구전략이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민간임대주택(10년 의무임대)으로 포장해 구조를 바꾼다.
그래서 용적률을 더 받아 세대수를 늘리고 사업성을 맞춘다.
이때부터는 실제로 분양되지 않는 물건들을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는다.
겉으론 매매 계약이지만, 실제로 돈은 오가지 않는다.
단지 이름만 빌려온 것이다.
대신 등기는 정상적으로 넘어간다.
채무관계도 성립한다.
전세가격에 맞춰 채무를 설정하므로 시세보다 싼 전세가격으로 매매하게 되는 것이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그들은 집주인이 된다.
그리고 인생역전을 꿈꾼다.
이 작업은 주로 주변 부동산에서 호객한다.
이 명의자들은 대개 제도 바깥의 사람들이다.
사회안전망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단기 수익에 눈이 먼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2년 뒤 전세금 오르면 몇 천은 벌 수 있다더라고요.”
“10년 뒤엔 시세차익도 크다던데요.”
그들이 기대한 건,
한 채당 수천만 원의 차익
10채면 수십억 원이 손에 들어오는 계산이다.
단, 10년 만에.
하지만 시나리오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집값이 떨어졌다.
전세가도 함께 무너졌다.
계약 만료 시점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됐고, 그때부터 임대인은 ‘전세사기’ 피의자로 대면하게 된다.
그들은 말한다.
“저는 그냥 명의만 빌려줬을 뿐입니다.”
“돈은 받은 적 없습니다.”
하지만 법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계약의 당사자는 그들이고, 등기상 소유자 역시 그들이다.
전세보증금을 갚아야 하는 법적 책임도, 결국 그들의 몫이다.
문제는,
이미 돈을 챙긴 사람들은 사라진 뒤라는 점이다.
시행사와 시공사는 2~3년 전 이미 분양대금과 전세금을 수령하고 빠져나갔다.
이들을 중개한 부동산도, 처음부터 구조를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모두가 ‘나는 몰랐다’고 말한다.
모두가 '정상적인 계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몰랐다’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건 처음부터 ‘사기를 위한 설계’였다.
그래서 나는 이걸
'전세사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사기전세’다.
설계된 판에서 시작된, 정교한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