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은 웃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매일같이 전세사기 뉴스를 다룬다.
정부는 강도 높은 조사를 하겠다며 단단히 벼른 듯 하다.
뉴스 화면에는 각종 왕족들이 등장한다.
빌라왕.
전세왕.
전세사기왕.
나는 전 재산을 날리게 생겼는데,
저들은 사기를 치고도 '왕'의 칭호를 받는다.
세상이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처벌 대상,
낙인찍기 좋은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이미 진짜 왕족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고급 주거지에서
아이들은 "아빠 최고!"를 외치며 자란다.
늘 거실에 드러누워 있던 아줌마는
똥배를 감추기 위해 샤랄라 드레스를 입고
하인들 사이를 누비며 웃을 것이다.
왕의 주차장에는 로버트처럼 생긴 차들이 줄지어 있고,
그들은 매일 밤 와인을 들고 파티를 연다.
그 모든 호사 뒤에는,
어느 날 부푼 꿈을 안고 희망으로 가득 찼던
누군가의 젊음이었고, 인생이었다.
어떤 이는 피땀 흘려 모은 돈에 대출까지 얹어
코딱지만 한 방에 겨우 입성했어도 행복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내 인생은 여기서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나는 잘될 거야!”
머릿속에 십수 년의 시간들이
영화처럼 스쳐갔을 것이다.
반지하에서 시작해
월세를 전전하고,
겨우 목돈 모아 허름한 전셋집에서
바선생과 동거하던 그 순간을 벗어나
조금은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 싶었을 것이다.
새집에 입주한 첫날.
조그마한 방에서
지금의 왕족들처럼 와인의 축배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행복 뒤에 닥쳐올 삶을 상상도 못 한 채.
그때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2년 뒤,
지상 최대의 호구가 될 줄을.
왕족들을 위해 내 평생 모은 전 재산을
헌납하게 될 줄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