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전세 ep.3

혼돈기

by Celloglass

퇴거 3개월 전, 집주인에게 문자가 왔다.

"계약을 연장할 건지, 만료할 건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집에 들어올 때, ‘2년 안에 돈을 좀 벌어야지’ 싶었는데 현실은 생각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집은 꽤 마음에 들었지만, 주차 분쟁이 심한 게 문제였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는 만료 전에 이사를 나가겠습니다.’


문자를 보내놓고도 마음은 뒤숭숭했다.

또다시 토요일마다 집 보러 다녀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진이 빠졌다.


며칠 뒤,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방에 있어 움직이기 어려우니, 집을 대신 부동산에 내놓으라는 부탁이었다.

부동산 연락처도 넘겨줬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수락하고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1주일이 지나도, 2주가 지나도 부동산에서 연락 한 통이 없다.


혹시나 해서 집주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락 온 거 없었냐고.

없단다.

그 말도 의심은 안 했다.

뭐, 곧 오겠지 싶었다.


그로부터 또 2주가 지났다.


이번엔 내가 직접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이 시세에 그 가격으론 전세 안 나가요. 가격을 낮추셔야 해요."

그러더니 말한다. "임차인이시죠? 집주인에게 직접 얘기해 보세요. “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니, 돌아온 말은 이랬다.

"돈이 없습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전세금을 내면, 그걸로 돌려드릴 수 있어요. “

”조금이라도 가격을 조정할 수 없냐? “고 다시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제가 돈이 없어요. “


머릿속이 하얘졌다.

부동산에서는 가격을 낮추라고 하고, 집주인은 돈이 없다고 하고.

정작 나는 나갈 수도, 버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부동산에선 내게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그 사람들도 피해자예요.

경기가 이렇게 안 좋아질지 알았겠어요?

전세금 보증보험 들었잖아요.

그거 받아서 나가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한 건물에 한 명만 보장돼요.

어차피 받기 힘드실 거예요.

그냥 계약 연장해서 2년 더 사세요. “


불안감이 더 커졌다. 다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들려온 한 마디.

“나는 명의만 빌려준 거지, 집주인이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등기부등본에도, 건축물대장에도 분명 본인 이름이 적혀 있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이랬다.

처음부터 본인이 이 집들을 사들인 게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자가 "명의만 빌려주면 집을 살 수 있다"라고 했단다.

그 말만 믿고 7채를 명의로 넘겨받았고, 이후 8채를 더 받아 총 15채가 됐지만 보증보험을 들 돈이 없어 7채만 남겼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집 역시 그중 하나였다.


집주인의 주소지를 검색해 보니,

지방의 한 고시원에 살고 있었고,

직업은

건.설.현.장.일.용.직.


뉴스에서나 보던 그 말도 안 되는

우리가 ‘왕족’이라 부르던

그 왕가들 중 한 명문가가 설계했던 사업장 중 하나에

호구가 살고 있었다.


그게 나다.


개.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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