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신 ep.30 아직 끝나지 않은 설계도

by Celloglass

젊은 한 기자의 물음으로 시작된 위신.


“공간은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건축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통해 시작되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달동네에 가본 적도 없던 한 건축사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찾아간 재개발 지역에서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우연히 발견한 옛 지도의 흔적을 현재에서 되찾는 노력이 골목길을 살리게 됐고, 사람들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산책로가 되었다.


골목길을 따라 청년 상가들이 입점하게 되면서 거리의 활력은 배가 되었고, 그 길의 얼굴을 그라피티로 채웠다. 그러나 우리만의 실험이 성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프랜차이즈들의 입점과 건물주들의 변심으로 우리의 장은 막을 내리게 됐다.


실망하기도 잠시, 새로운 곳으로 실험의 무대는 옮겨갔다. 거대 자본이 쉽게 오지 못하는 오지로.

원주민들과 섞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으나, 가족으로 인정받은 이후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조합을 설립했고, 1호 민박을 열었다. 식당과 전시관을 겸한 카페를 만들었고, 민박은 4호점까지 늘어났다.


시골로, 오지로 갈수록 대형 자본의 힘은 약했다. 아니, 애초에 오지 않았다.


이곳은 앞으로도 민박을 늘려갈 것이다. 야영장 허가를 받아 백패커들을 위한 성지가 될 것이다. 식당과 카페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운영하며,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고랭지에 아라비카 나무를 심어 커피도 재배할 것이다. 직접 로스팅 시설까지 갖춰, 질 좋은 커피를 값싸게 제공할 계획이다.


우리의 마을 재생 프로젝트는 새로운 게 아니었다. 그곳에 머물러 있던 자연환경과 장소를 활용해 시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접목했을 뿐이다. 지금껏 그렇게 시작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새롭지 않은 새로움으로 이곳을 활성화해 나갈 것이다.


농촌 마을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청년이 떠나 노인들만 남으며, 지역 소멸이 얘기되고 있다.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은 체육관과 도서관을 지어주고, 빈집을 허물어 공용주차장을 만드는 데 국한되고 있다.


농촌 마을의 재생을 위해서는 그 지역의 자연 인프라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 마을에서는 굳이 도시가 아니어도 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전기차 충전소를 늘려준다고 해서 전기차로 바꾸지는 않는다.


이 프로젝트의 협동조합은 법적으로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노인들만 있어도 모두 힘을 합한다면 수익을 올릴 수도 있고,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오히려 빈 공간이기에 채우기 쉽다.


우리가 해온 일은 특별한 발명이 아니었다. 그곳에 있던 자연과 장소, 오래된 삶을 꺼내 시대에 맞게 다시 엮었을 뿐이다.


이 협동조합은 법적 제도보다 큰 의미를 가졌다. 나이와 배경을 넘어 힘을 모으면, 누구라도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는 상징이었다.


그래서 이 실험은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빈 공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그곳은 곧 새로운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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