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ep.2 내 인생도

by Celloglass

나는 건축사다. 서울에 개업을 했고, 지금도 운영 중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ChatGPT와 대화를 나누고, 업무를 시작할 때는 Gemini에게 자료 조사를 시킨다. 친한 친구와 카톡을 나누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내 질문에 응답한다.


Gemini의 Deep Research는 내가 던진 물음을 보고서로 만들어준다. 자료의 근거와 출처까지 붙여서, 논문 형식에 가깝게 정리해 준다. 과거처럼 수많은 자료를 일일이 검색창에 넣고, 여러 페이지를 넘겨가며 맞춰 보던 시간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네이버도 검색 결과에서 AI 요약을 먼저 보여주고, 구글도 검색 자체가 ‘답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가 마음의 준비가 안 됐을 뿐이지, 이미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미지 쪽은 더 빠르다. 이미지를 주고 원하는 방향을 설명하면 몇 초 만에 다른 이미지로 바꿔낸다. 실사처럼 보이게 합성하는 것도 점점 쉬워진다. 도면을 보여주고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면 즉각 반응한다. 건축에서 자주 쓰는 CAD, BIM 같은 툴에도 AI 기능이 탑재되기 시작했다. 삶이 윤택해지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그 윤택함이 결국 직업을 줄이는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게 더 크게 보인다.


수백 장에 달하는 지침서를 채팅창에 첨부해 두고 질문하면, 답이 나오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는다. 텍스트 기반이 아니라 이미지 기반 문서도 읽고 해석한다. 이제 화이트칼라 직군에서는 신입사원이 필요 없어지는 흐름이 먼저 온다. 신입에게 맡기던 자료 정리, 조사, 보고서 초안 같은 업무를 AI가 대신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써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직원이 불필요해진다.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비꼬았다. 꼰대는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들보다 먼저, 신입이 대체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경험 많은 관리자만 남게 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단순 도면 작업이나 아이디어를 사람에게 맡기는 시대는 줄어들 것이다. 자본이 많은 기업형 건축사사무소나 대형 건설회사만 살아남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크다. 도구가 진화하면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 그리고 수많은 건축사가 필요 없어지는 방향으로 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명의 건축사가 AI를 이용해 전국의 설계를 동시에 굴리는 세상도 상상할 수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이 현상은 어느 한 직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직군에서 같은 방식으로 발생한다.



이제는 AI가 하지 못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많은 건축사들이 감리 업무를 주 업무로 삼지 않는다. 위험 부담이 크고, 비용이 적다는 이유가 크다. 귀찮고 하찮은 일로 여긴다. 하지만 앞으로 개인 건축사들은 감리 업무를 제외하면 생계 곤란을 겪게 될까 싶다.


부동산 붐이 일면서 치솟은 공사비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내려올 수 없는 구조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PF(Project Financing)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된 구조 속에서 공사비는 어느새 ‘평당 천만 원’이 당연한 기준처럼 굳어버렸다. 시작이 무엇이었든, 피해는 건설 산업 전반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금융은 오르든 내리든 이자 장사로 이익을 얻는다. 구조적으로 불편함이 없다.


앞으로 공사비가 낮아지는 방식이 있다면, 공장 제작 후 현장 조립의 형태일 것이다. 프리패브(pre-fab) 같은 공법이 더 진화해서 현장에 적용될 것이다. 위험한 공정이 로봇으로 대체되면 추락사고와 각종 사망사고율은 낮아질 수 있다. 그리고 공사비는 다른 방식으로 안정화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넘쳐나는 기업들만 살아남게 되고, 그 안에서도 지금 같은 직원 수는 필요 없어질 것이다. 결국 그 자리도 AI로 대체된다.


나도 그들도 모두 로그아웃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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