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천 공항을 떠나 LA를 거쳐 파김치가 된 채로 보스턴 로건 공항에 도착했다. 우버를 타야 한다는 건 들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다 겨우 탑승장을 찾았다. (참고로 출국장에서 보라색 화살표를 따라가 한참을 걸어 주차장으로 가야 우버를 탈 수 있다)
어설픈 영어로 우버 기사에게 기숙사 주소를 알려줬다. 보스턴 로건 공항을 출발해 스트로우 드라이브(Storrow Drive)를 타고 보스턴 시내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찰스강의 스카이라인은 정말 아름다웠고, 비현실적이었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20시간 만에, 나는 1동 4층 1호 A방에 배정을 받았다. B방에는 아직 룸메이트가 들어오지 않았다. 휴대폰도 연결 안 되어있고, 인터넷도 어떻게 연결하는지 몰랐고, 식료품을 어디서 사야 할지도 몰랐고, 식당에 어떻게 가야 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파김치가 된 몸으로 책상과 매트리스가 놓여져있는 텅 빈 방에서 그대로 떡실신했다.
에어컨이 없는 70년 된 늦여름의 기숙사는 너무 더웠다. 마지막 기내식을 먹은 후로 8시간가량 쫄쫄 굶어, 배에서는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엄마가 "햇반이랑 참치 들고 가라"고 하셨는데, "뭘 이런 걸 들고 가냐"며 핀잔을 줬는데,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을 살 줄 모르니, 갑자기 그 햇반이 가방에 있는게 생각났다. 전자레인지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기숙사 관리인에게 영어로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결국 햇반을 데우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먹었다.
생전 처음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날이었다.
그렇게 보스턴에 도착한 지 2주 후,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바드' 학생으로써의 첫학기가 시작 되었다. 영어로 말하기와 듣기를 못하는 하바드 학생의 첫학기는 수월하지 않았다.
사실 영어권 국가에서 맞닥드리는 가장 큰 문제는 의외로 말하기 보다 듣기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어야, 나중에 말을 시작하게 되는 원리와 똑같다. 듣기가 안되니 강의를 절반도 알아듣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강의 슬라이드를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갔다. 강의를 알아듣지 못하니 과제를 제대로 할 리 없었고, 시간만 몇 배로 걸렸다. 친구들은 놀면서 과제를 해도 100점을 맞는데, 노는 모임에는 가지도 못하고 아무리 밤을 새워서 과제를 제출해도 점수는 80점 근처였다. 통계 프로그래밍 수업들은 낯설기만 했다. 객관식 찍기에만 익숙했던 나는, 미국식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19살, 낯선 도시 서울에서 '9반'에 배정되었던 그때처럼, 에스프레소와 라떼를 구분하지 못하던 그때처럼, 나는 낯선 도시 보스턴에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서울은 말이라도 통했지만, 보스턴은 말조차 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