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퀄 시험 재도전기

그게 삶이야. c'est la vie

by 셀셔스

나는 글 쓰는 SNS는 거의 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이버 블로그는 2007년경부터 했고, 이렇게 브런치 작가도 하고 있고, 최근에는 스레드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나에게 작년에 일어난 일을 솔직하게 쓰지 못했다.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약 1년 전인 작년 5월에 나는 박사 자격시험을 쳤다. 우리 과 박사 자격시험은 모두 총 3개의 섹션으로, 집에서 과제처럼 보는 한 개의 섹션과 이틀에 걸쳐 하루에 3시간씩 보는 두개의 섹션이었다.


작년 6월 초, 두번째, 세번째 섹션을 훌륭한 성적으로 통과했고, 첫 번째 섹션에서 조건부 합격을 통보받았다. 지도 교수님도 나도 당연히 붙은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박사과정의 모든 사람들이 다 조건부 합격을 받기 때문이다. 주변에도 시험에 합격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9월 새 가을학기가 되어 그 조건부 합격에서 "조건"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그 조건은, 내가 제출했던 에세이를 다시 수정해서 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제출을 했다.


11월 중순. 이 과목을 출제한 A 교수가 나를 포함하여, 이 조건부 합격을 받은 사람 모두에게 불합격을 때렸다. 이 프로그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친구 중 한 명은 이 불합격으로, 3년을 다닌 박사 프로그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나는 재시험을 치라는 통보를 받았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불합격한 과목인 첫 번째 섹션만 재시험을 치면 된다. 그런데 이제 시험 유형이 바뀌어서 처음부터 다시 다 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1차, 2차, 3차 시험이 있고, 1차에서 80% 이상을 받고 합격해야 2,3차 시험으로 넘어갈 수 있다. 11월 중순 불합격을 통보받았는데, 1차는 그 다음 해 1월 말이었다. 2,3차는 2월 말-3월 초에 치러진다.





우울했고, 억울했고, 많이 울었다. 내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허무했다. 나보다 덜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은 합격을 했다. 합격한 친구들은 다른 섹션에서 조건부합격을 받았는데, 그 섹션 교수님은 너그러우신 분이라, 아주 쉽게 넘어갔다.


첫 번째 섹션에서 불합격을 받은 나와 친구들은, A 교수의 강짜로 불합격을 했다. A 교수는 원래도 나와 케미가 안 맞는 교수였는데, 이 일로 더 미워하게 되었다. 지도 교수님은 A 교수를 만나 뭐가 문제였는지 들어보라고 했는데, A 교수를 만나기까지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결국 12월 초, A 교수를 만났고, 내가 합격한 이유는 한 문단 때문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다 잘 썼는데, 그 한 문단이 틀려서, 너는 합격할 정도의 수준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그렇다. 그냥 운이 나빴던 것이다.




첫 번째 섹션 때문에 불합격한 3명 중 한 명은 프로그램을 나가게 되었다. 나와 다른 친구는 지금 재시험을 치고 있다. 나와 친구는 1월 말에 친 1차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제 2, 3차를 앞두고 있다.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싶어서, 2019년 초에 처음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결심하고, 석사를 먼저 가야겠다 싶어서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석사 입학을 준비했다. 세이빙 한 돈을 탈탈 털어 미국에서 석사를 하고, 박사를 갈 수 있는 실적을 쌓기 위해 미국 연구소에서 직장 생활을 2년간 했다. 그렇게 2024년 가을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박사를 따야 겠다는 결심부터 박사과정 입학까지 대략 5년이 걸린 셈이다.




마흔이 내일 모레인데, 공부한다고 돈을 다 써버리고 통장은 텅텅 비었다. 굳이 이 고생을 하며 박사를 해야 하나? A교수 같은 사람(세상 물정 1도 모르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아는 종자들)이 득실대는 학계에 왜 있어야 하나? 작년에 진짜 죽을 만큼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안 좋으니 더 실망스럽고 좌절스럽다. 얼마나 더 최선을 다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도 붙는데, 지금 내가 뭐가 더 한다고 달라지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상념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김박사로 끝날지 김석사로 끝날지는 몰라도, 김OO로서의 삶이 이걸로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다. 박사를 따든 못 따든 나는 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게 삶이야. c'est la vie


이 글에 마침표를 찍은 후, 나는 한번 더 용기를 내어 책을 펼쳐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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