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든 어디든 처음을 맞이하면 가장 처음에 하는 것, 자기소개가 있다.
빠른 연생이라는 이유로 나는 자기소개부터 설명이 필요했다.
바꿀 수 없는 나이와 생일을 얘기하는 것뿐인데 항상 듣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눈치가 없어서 눈치만 보고 살다 보니 하나를 결정하더라도 생각과 고민이 많아졌다.
빠른 연생의 유일한 특권으로 초등학교는 빨리 들어갔지만, 대학은 삼수로 들어가면서 갑자기 느린 사람이 되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일을 벌이긴 하는데 완벽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파고들지 못했다.
내 경험치는 깊게 뿌리내린 나무를 키우지 못한 채 그저 넓은 풀밭을 만들었고,
그 넓디넓은 곳에 내가 의지하며 쉴 수 있는 그늘은 없었다.
길을 누벼 봐도 둘러만 보고 다니다 보니 정작 내 길이 없는 어중간한 사람이 되어갔다.
태생부터 눈에 띄는 색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저 무난했다.
그런 무채색 안에서도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만 나이로도 30대를 앞두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어중간한 회색인간이다.
하지만 이젠 어중간하다는 말은 바닥이 아니라 어딘가를 가는 중이라는 것을,
회색도 그 안에서는 다채롭게 존재하는 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도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이 벅차서 좋아하지 않는 것을 먼저 얘기하는 나지만,
식사 시간에 메뉴 하나 고르는 것도 한세월이 걸리는 나지만,
이런 내 속도가, 내가 고른 모든 것이, 눈치 보지 않고 나에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연습을 해내가고 있다.
이것이 내가 나를 연고 없는 일본으로 보낸 첫 번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