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되는 건 없다. 또 당연히 안 되는 것도 없다.

by 루비나

‘신청하신 워킹홀리데이 합격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통화 가능하실 때 연락 주세요.‘

연락을 받자마자 기쁨보다 의아함이 먼저 다가왔다.

내가 됐다고..?


사실 신청할 당시엔 신청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일본만 바라봤던 것도 아니고, ‘워킹홀리데이‘라는 만 20대 만의 특권을 나도 누리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캐나다와 일본 중 어디로 넣을까 고민하던 무렵,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의 나이제한이 만 35세로 높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 반해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아직도 만 25세가 넘어가면 왜 늦게 신청했는지 사유서에 작성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한 살이라고 어릴 때, 까다로운 곳을 먼저 신청하는 게 합격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다행히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27세였던 나는 고민의 여지없이 까다로운 일본을 먼저 공략해 보기로 했다.

다시 생각해도 일본을 선택한 이유는 하찮기 그지없었다.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워홀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5일 안에 모든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다른 서류 준비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사유서와 계획서 작성에 집중했다.

간만에 글을 쓰려니 막막했다. 진짜 막막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를 나타내는 글은 입사를 위해 썼던 3년 전 자기소개서가 마지막이었는데..

그럼 포기? 어림도 없지. 내가 신청하기로 선택한 이상 뭐라도 써내야 했다.

집중하기 위해 퇴근 후, 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근처 카페를 찾아가 네이버, 유튜브를 통해 워홀 합격자들의 서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빠르게 신청하기 위해서는 ‘창조할 시간 따윈 없다'라고 생각하고 기존 합격자의 구조 안에서 내용을 재구성했다.

쓴다고 열심히 쓰긴 했는데 기본 틀이 존재한다고 해도 도무지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 이건 머리를 쥐어짠다고 될 문제가 아니구나.


10년 전, 한창 일본영화에 빠져있었을 때 내가 뭘 봤더라? 거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혹시 좋은 문장이 뚝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전에 봤던 영화를 찾아봤다.

하드 속 영화들 중에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ただ、君を愛してる)’를 골랐다.

사유서에 사진 관련 내용을 담고 싶기도 하고, 어쨌든 사진으로 감정 표현을 하는 영화의 서사가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를 보는 건 도움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약간 시각이 달라졌다.

잠도 많은 내가 자정을 넘겨가며 영화를 보고 나니 화려하게 남의 이야기처럼 적은 사유서가 다시 보였다.

이거 내 사유서가 아니네.

서류준비 3일 차. 꾸며낸 사유서를 버리고 내 이야기로 다시 바꿔 작성했다.

사유서를 쓰니 계획서가 명확해졌고, 5일째 되는 날 번역기를 활용하여 서류를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그리 대충 준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친 듯이 열을 내며 하지도 않았다. 늘 그랬듯 미지근했다.

빠진 서류가 없는지 확인한 후, 24년도 생일 전날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신청을 완료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 약 한 달. 그 사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떨어지면 다시 신청할 의사가 있는지였다.

글쎄… 를 반복하며 말끝만 흐렸었다. 사실 ‘합격’이라는 단어는 내 속에 없었다.

내 선택은 워홀 신청까지였고, 그게 끝났으니 ‘불합격하면 다음 스텝을 어떻게 밟아야 할까?’만 고민하고 있었다.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불합격일 줄 알았다.

20년 전 가족여행으로 딱 한 번 가본 일본을, 일본어 자격증은 고사하고 히라가나도 다 모르는 내가 불합격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합격이라니. 신청한 이후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를 받으니 솔직히 당황했다.

누군가에겐 간절한 일본 워킹홀리데이 티켓을 이렇게 감정 없이 받아들여도 되나 싶었다.


그래도 합격을 했으니 모두에게 얘기해야지.

‘나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 가게 됐어.’

이제는 내 얘기를 들은 이들의 놀람을 내포한 ‘왜?’라는 질문에 대답할 차례가 되었다.

주변 이들은 ‘워킹홀리데이’라는 단어보다 ‘일본’이라는 단어에 더 많은 질문을 했다.

그전까진 몰랐다. 내가 하는 행동을 나눌 땐 행동의 이유가 필요하다는 걸 좀 늦게 깨달았다.

그저 나이제한 때문이 아닌 일본을 선택한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으려고 애쓸 땐 보이지 않던 이유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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