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인가'
난임 병원에 처음 방문한 날, 떠오른 생각이었다. 저출산 국가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난임 병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간절함으로 병원을 찾았다.
시험관 시술을 결정하기까지 손품 팔며 검색을 많이 했고, 후기를 많이 읽었다. 난자 채취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많이 검색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검색해 본 범위에는 응급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아주 드물다는 부작용이 내게 일어날 거라곤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순탄하지 않았던 결혼의 시작, 아이를 원치 않았던 남편, 예상하지 못한 수술,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마음들까지 마음이 무거운 것인지, 몸이 무거운 것인지 모르겠는 날들이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다가오는 새해엔 꼭 아이를 만나고 싶은 열망을 품어 본다.
가까운 이들에게 말하기 쉽지 않지만, 또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나의 결혼과 시험관 시술의 이야기는 수술 이야기로 시작한다.
화장실 바닥에 뺨이 닿았다
생경한 느낌과 함께 눈이 뜨였다. 눈앞의 장면이 이상했다. 다음 순간 뺨에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에 놀랐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화장실 바닥에 모로 누워 있다는 것을.
기절은커녕 빈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잠깐 스스로 죽었는지 의심해 보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곤 손으로 바닥을 밀어 겨우 머리를 들어 올렸다. 도저히 일어설 수는 없었다. 화장실 벽에 등을 대고 쭈그리고 앉아 남편을 불렀다.
"오빠.. 살려줘"
살아야겠다 싶은 마음에 목소리가 우렁차서 나에게 놀랐다. 나는 내 목소리에 놀라고 남편은 화장실 바닥에 쭈그리고 있는 나를 보고 기겁을 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난자를 채취하고 돌아왔다. 씩씩하게 채취하러 들어갔던 나는 생각하지 못한 엄청난 통증으로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 했다. 나도 남편도 아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옛날 사람들이었다. 평소에 즐겨 먹는 쌀국수를 시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럼에도 속이 답답해 요아정까지 먹고 낮잠에 들었다. 잠결에 화장실에 갔는데 그 길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분명 화장실 변기에 앉은 것은 인지가 되는데 다음 순간이 화장실 바닥이었다. 몇 초인지, 몇 분인지 모르겠으나 인지의 공백이 있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이스크림 먹고 탈이 났다고 생각하기엔 말이 되질 않았다. 병원에 가야 했다.
환자 보호자로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나는 입원하게 될 것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때만 해도 기운이 없고 배가 은근하게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지만 움직일 수 있었고 대화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두꺼운 담요며 스킨로션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날 위한 말이었던가. 때는 금요일 저녁이었고 도로는 주차장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어딘지 모르게 점점 컨디션이 나빠지고 있었다. 그래도 힘들 때 웃어야 일류라며, 실없는 농담을 남편과 끝도 없이 주고받았다.
차에서 내려 병원 입구까지 200m쯤 될 것 같았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식은땀을 흘리며 걸을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어딘가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꾸만 팔다리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 팔에 거의 매달려 병원으로 들어섰는데 어느 순간 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
"환자분, 환자분, 눈 뜨셔야 해요."
다시금 눈을 뜨니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걸고, 남편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스스로를 자각했다. 분명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려고 로비에 서 있었는데 또다시 기절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