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은 분주했고, 나는 말초신경 끝으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형언할 수 없다는 말이 이런 순간을 묘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특정 부위가 아픈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이 답답했고 숨이 가빴다. 온 복부와 갈비뼈와 가슴 부분까지 답답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았다. 산소 포화도는 정상임에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고통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8시가 못되어서 도착하였는데, 10시가 넘어서자 기절의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자세를 고쳐 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답답함에 침대에서 자세를 바꾸려 버둥대다가 기절을 했다. 그날 밤 6번을 기절했다. 시험관 시술 전에는 여성에게 흔하다는 빈혈조차 없던 사람이었다.
난자 채취 과정에서 난소에서 출혈이 발행하였을 것으로 의심이 되었다. 하필이면, 진료시간 외에 야간 응급 CT 촬영이 안 되는 병원이었다. 금요일 밤이었고 시간은 더디 흘렀다. 지혈제를 맞고 수혈도 진행하였으나 숨 막힘과 답답함은 개선될 여지가 없었고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전원을 하였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복강 내 출혈이었다. 한쪽 난소에서 출혈이 보였고 상당한 양의 피가 복강에 고여 응급으로 수술을 하기로 하였다. 과도한 출혈로 피가 부족해서 계속 기절을 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복강에 고인 피가 떡이 되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중이었다.
CT 상으로 출혈이 심해 보여서 최선을 다하겠으나, 최악의 경우엔 난소 한쪽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살아야 하니까 알겠다고 했다. 수술을 들어갈 무렵엔 복통과 답답함으로 내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었기에 수많은 의료진의 손으로 수술대에 뉘어졌다.
수술은 잘 되었다
수술 직후의 느낌이 선명하다. 복강경 수술이기에 개복수술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아플 거라고 했다. 마약성으로 추정되는 강력한 진통제도 달아줬다. 그런데 나는 살 것 같았다. 수술 자리의 선명한 고통은 있지만 숨이 쉬어졌고 온 장기가 뒤틀리는 듯한 복통이 없었다.
다행히 난소의 기능도 그대로 보존되었다. 다만 출혈량이 많아 복강에서 1L 가까운 피를 뽑아냈기에, 수혈을 했음에도 여전히 빈혈 상태라고 했다. 입원 중에 철분 주사를 맞았다. 시험관 시술 환자 중 기절을 수차례 할 만큼의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는 아주 많이 드문 경우라고 했다. 담당 선생님은 10년 만에 처음 봤다고 했다.
그럼에도 수술은 잘 되었고, 불행 중 다행이었다. 며칠의 입원 후 퇴원하면 되는데, 병실에 누워 어딘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저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평소 세상 모든 일은 내게도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나는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다. 인생에서 내게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독립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다. 나쁜 일들을 굴비처럼 엮어서 생각하면 더 크게 나쁘고 더 크게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병실에서 진통제를 맞지 않아도 되는 시점부터 생각이 조절이 되지 않았다. 잘못된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 같다는 막연한 마음이 들었다. 내 선택들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내가 나를 의심했다. 출혈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출혈과 함께 내 마음의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그 빈자리에 온갖 상념이 넘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