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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플레 Jul 20. 2021

불완전한 탈경계를 향한 따스한 시선

<루카(Luca)> (엔리코 카사로사, 2021)

'루카'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루카(Luca)>(2021)는 다르다는 이유로 실행되는 차별에 반응한다. 바다 생물인 루카와 알베르토가 외형적 차이를 극복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결말에 이르면, 어쩐지 <루카>와 유사하게 전개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 배달부 키키>(1989)(이하 <…키키>)가 떠오른다. <루카>는 <…키키>의 서사를 변주한 듯 느껴진다. <…키키>에서 마녀 키키는 자신이 정착할 새 마을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집단 바깥의 미성숙한 타자가 특정한 집단 내로 스며드는 과정을 담아내는 <…키키>는 이 지점에서 <루카>와 공명한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키키는 소년을 위기에서 구해내어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루카>의 인물들 역시 키키가 인정받은 것처럼, 마침내 난관을 극복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환대받는다.


<루카>에서 루카와 알베르토가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순간은, 그들이 참여한 철인 3종 경기의 결과로부터 비롯된다. 그들은 경기의 승자로 인정받는다. 인간만이 출전 가능하다는 규정이 없으므로, 그들은 승자가 될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이 루카와 알베르토를 수용하는 방식은 그래서 어딘가 찜찜해 보인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방식이 아닌, 대회 규정에 근거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승리한 루카와 알베르토는 한바탕의 촌극이 벌어진 이후 외형을 인간화하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게 된다. 너무 비약이 심하지 않은가. 물론 알베르토를 아들처럼 여기며 아끼는 줄리아의 아버지 같은 존재들이 결말로 향하는 빈틈에 징검다리를 놓아주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 심리로 확장되는 방식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이들을 ‘바다 괴물’이라고 칭하며 잔뜩 경계심을 품었던 인간들은 더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존을 외치며 태도를 급격히 전환한다. 두 종족 간의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불완전한 탈경계


영화엔 루카의 인간 세상 방문을 방해하는 요소가 등장한다. 바로 루카의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다. 루카는 알베르토의 권유에 힘입어 낯선 인간 세계를 향한 호기심을 키워나가지만, 부모는 인간 세계는 매우 위험하다며 함부로 가서는 안 된다고 루카에게 경고한다. 하지만 부모 역시 실제로 인간 세계를 방문한 적이 없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두 세계 간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이는 루카(와 알베르토)가 된다. <루카>의 결말부에 묘사된 승리는 낯선 세계로 과감히 진입하는 자가 직접 부딪혀 얻어낸 산물이다. 쌍방향 소통 대신 단방향 체험이 극을 지탱하는 <루카>는 배타적인 집단의식에 균열을 내는 두 존재를 통해서 주제 의식을 확고히 하는 셈이다.


이때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영화의 태도 가운데 어딘가 모호한 구석이 발견되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의 골격을 살펴보자. <루카>는 해양 생물들이 인간 세상에 진입할 때 벌어지는 일들에 주목한다. 이때 바닷속 존재들은 인간 세상으로 계속해서 찾아가려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절대로 바다 생물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는다. 경계를 허무는 <루카>는 그래서 불완전하다. 두 종족 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는 같은 층위의 쌍방향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인간들 역시 바닷속 세계에 방문하여 스스로 타자가 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하지만 <루카>는 인간 세계에서 고초를 겪는 타자들의 행적만을 따라간다. <루카>를 통해 강조되는 건, 해변 마을 속 루카와 알베르토가 인간적 생활 양식에 무지한 타자로 취급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공고했던 경계가 헐거워지는 순간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타자로 취급되던 존재가 자신이 품고 있던 본연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 바로 <루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두 바다 생물의 모습을 강조한다. 이때 루카와 알베르토는 두 세계의 분쟁을 해결하는 영웅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서 건져낸 구원자도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실존적 의의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삶의 주체이다.


'루카'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루카>의 따스한 화법


<루카>가 탈경계를 논하는 방식은 불완전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운을 남긴다. 애초에 양 종족이 서로의 공간을 오가는 방식으로 경계를 허무는 작업은 어쩌면, 성립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접근법일지도 모른다. <루카>는 명백하게 비인간과 인간의 대립 구도를 설정한 뒤, 해안 마을이 우리 현실 세계를 표상하는 것처럼 세계관을 구현한다. 이토록 현실과 맞닿은 구성임에도, <루카>의 화법 자체는 판타지에 가깝다. 현실에선 배타적 의식으로 둘러싸인 혐오 범죄가 발생하고, 부조리한 모습이 곳곳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루카>는 해결될 수 없는 난제에 관한 해답을 내놓으려고 한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소망하는 바를 따스하게 펼쳐놓은 영화가 아닐까.


인간 세계의 논리를 전제로 할 때, 상대적 소외자인 바다 생물들이 무력과 편법이 아닌, 비교적 아름다운 방식으로 인간의 혐오와 증오심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루카>는 관객 각자의 내면에 잠재한 순수한 무언가를 자극한다. 더불어 <루카>는 작금의 사회 이슈를 자연스레 환기한다. 팬데믹의 여파로 지구촌은 나날이 병들어 가고 있다. 사람들의 경제 사정은 위축되어가고, 접촉과 대면이 끊긴 탓에 각자의 내면 가운데 누적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우리는 분노와 혐오에 사로잡힌 채 그러한 감정들을 전이시킬 대상을 찾아 헤맨다. 그때 배타적인 사고 체계가 작동할 위험이 있다. 이때 <루카>는 타자가 차별을 극복하는 지점을 조명한다. <루카>의 인간들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바다 생물이 자신들의 세계에서 벌인 일을 편견을 거둔 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루카>에서 진정 아름다운 건, 따사로운 햇볕과 바다 내음 가득한 이탈리아 어느 해변 마을의 정경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를 지우고자 하는 영화의 순수한 마음씨 그 자체가 아닐까.


'루카'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http://www.cine-rewind.com/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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