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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영화

‘나폴레옹’, 역사 영화가 아닌 이미지의 영화

by 드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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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군인이었던 나폴레옹이 정치에 발을 내딛고 마침내 황제로 유럽을 호령한 뒤 초라한 말년을 보내기까지의 주요한 대목을 골고루 다룬다. 1793년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시점부터 1815년 워털루 전투, 그 이후 나폴레옹의 몰락까지 프랑스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일대기가 녹아든 영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나폴레옹’이 국내 극장가에 공개된 당시 영화를 향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탁월한 미적 감각을 지닌 비주얼리스트로 널리 알려진 리들리 스콧 감독 특유의 미장센, 전쟁 시퀀스 연출 등 시각 요소는 늘 그랬듯 호평 일색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은 나폴레옹을 너무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사실을 왜곡했다는 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때 결국 영화가 158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그의 생애를 압축해 다룬다는 점에 주목하자. 애초에 영화는 관객과 나폴레옹이 가까워질 기회를 제공하는 데엔 관심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 나폴레옹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연출자는 그를 오롯이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후대가 남긴 불완전한 기록에만 의지해 역사를 재구성하고 선별하며 고민과 판단을 거듭해야 한다.


이제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올 더 머니’,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하우스 오브 구찌’ 등으로 이어지는 스콧의 수많은 실화 바탕 영화나 역사의 한 귀퉁이를 잘라낸 시대극 영화처럼 ‘나폴레옹’ 역시 애초에 진실에 다가갈 수 없는 영화라는 점에서 출발해보자. 우리는 ‘글래디에이터’ 속 고대 로마제국 이야기, ‘킹덤 오브 헤븐’이 다뤘던 중세 십자군 전쟁, ‘하우스 오브 구찌’가 펼쳐낸 구찌 가문의 가족사에서 진실을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스콧은 필모그래피 내내 그럴듯한 진실인 양 포장된 역사의 베일을 뜯어내고 해체하는 데 열중했다. 기록된 역사를 진실이라고 확언할 수 없기에 연출자와 관객 모두가 그 대신 다른 걸 발견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셈이다.


놓쳐서 안 되는 점은 스콧이 현실을 영화로 끌어올 때 각본은 각본가에게 맡기고 총괄 연출에만 몰두한다는 사실. 그렇기에 그를 늘 뒤따르는 비판과 의문들은 시각 요소가 동원되는 연출의 영역보다는 서사 전개 측면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히려 ‘나폴레옹’을 보고난 뒤 ‘도대체 나폴레옹은 왜 그래야만 했는가’라는 질문 대신 ‘그래야만 했던 나폴레옹을 왜 저렇게 찍어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게 바로 스콧의 시대극을 제대로 음미하는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스콧은 역사의 철저한 고증과 재현을 포기한 채 진실처럼 보이던 외피를 벗겨내고 있다. ‘나폴레옹’에서도 이런 접근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게 제거한 뒤 나타나는 적나라한 ‘날것’의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게 바로 스콧 감독의 영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도달하는 건 결국 이미지가 아닌가. 과연 관객들은 그의 영화에서 어떤 이미지를 마주할 수 있을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두 가지 대목이 있다. 첫째, 영화 초반부의 1793년 ‘툴롱 포위전’ 시퀀스를 주목해보자. 칠흑같은 어둠 속 적군을 향해 사정 없이 발사한 포탄 덕분에 일어난 폭발로 인해 섬광이 번쩍이고, 전투에 열중하는 나폴레옹의 얼굴을 감싸면 이윽고 프레임 내부가 하얗게 물들어가며 다음 숏으로 바뀐다. 이후 전투가 완료되고 난 뒤 동이 터오는 전장에서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내는 나폴레옹과 군사들을 담아낸 장면을 만나게 된다.


둘째,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에 관한 시퀀스를 살펴보자. 쿠데타에 성공한 나폴레옹이 부인 조세핀과 함께 거리로 나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차에 올라타는 대목에서도 역시 마차에 올라탄 두 사람이 담긴 프레임 내부가 새하얗게 물들면서 다음 숏으로 바뀐다. 이후 장면은 햇빛을 받아내면서 달리는 마차가 나온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다음 신으로 넘어가기 전 페이드 아웃(점진적인 화면 전환 기법)될 때 검은 암전 영역 대신 흰색 영역이 동반됐다. 영화 전체에서 장면이 바뀔 때, 서서히 바뀌는 기법인 이 같은 페이드 아웃이 적용된 지점은 딱 두 지점뿐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영화는 시종 제한된 자연광으로 인해 형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실내에 줄곧 머무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자주 포착했고, 적에게 노출되지 않기 위해 빛이 없는 시간대에 진행되는 전투나 깊어가는 밤의 무도회장에 나폴레옹을 배치해 그를 감싸는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관객들이 익숙해지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저 두 장면이 전환되는 구간은 관객들에게 확연히 다른 인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이유는 바로 툴롱 포위전과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가 각각 나폴레옹의 생애에 있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나폴레옹의 입지와 정체성 등 그의 행보가 확장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 사건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화면 영역이 흰색으로 밝아지면서 전환된 이후 나폴레옹과 함께하는 태양빛을 이어붙인 편집술은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역사를 재구축한 스콧 특유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인 셈이다.


결국 ‘나폴레옹’에서 우리는 인물의 생애를 다룬 이야기 그 자체보다 피사체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지 신경 써서 관찰해야 한다. 이 영화는 역사의 재현이 아니기에 고증에 오류가 있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과 평단 등을 통해 쏟아진 부정적인 반응들은 이 영화가 짊어진 부당한 딜레마를 드러내고 있다. 왜 ‘나폴레옹’은 역사 그 자체가 되길 강요받아야 하는 것일까? 오히려 영화 ‘나폴레옹’은 역사를 이미지로 빚어낸 리들리 스콧의 수많은 사례 가운데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준수한 작품으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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