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렛잇고(Let It Go)!
어쩌다 렛잇고! (Let It GO!)
렛 잇 슬로우 인 휴스턴Let It Slow in Houston)!
남편 이름에는 “철”자 들어간다. 마침 하는 일도 철강 쪽 일이라서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 이름을 별로 좋아지는 않았다. 80년대 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했던 개그맨과 이름이 같아서 어릴 때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놀림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인 나보다 섬세한 그에게 “*철”이란 이름은 남편의 이미지와 정반대이기도 한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이름을 좋아했다. 부르면 포근해지는 그 이름을 일부로 사람들 많은데서 큰소리로 부르기도 했고, 남편이 깜짝 놀라는 모습이 좋아 더 많이 격 없이 불러댔다.
남편과 나는 할로윈 와인 파티에서 만났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둘러앉은 테이블에서 남편이 일어나 서로 인사를 시켰고, 얼마 안 되서 우리 테이블은 그 파티장에서 가장 시끄러운 테이블이 되었다. 한사람씩 일어나 “안녕하세요. 저는 **살, ##회사 다니는 김아무개입니다. ”라는 식의 소개가 이어졌고, 나는 남편의 자기소개만 제대로 들렸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남편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아니다. 그냥 첫눈에 남편이 반가웠을 뿐.
남편의 자기소개가 반가웠던 이유는 딱 두 가지. 하나는 내 절친의 회사와 남편의 회사가 같았다는 것. 회사 규모가 중견기업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btob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낯선 기업이지만 난 그 회사를 잘 알았다. 왜냐면 절친의 회사니까. 절친은 공대생 출신이고 나는 문과생이었지만 그건 내 절친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우리는 후배에게 치이고 선배에게 까여도 앞에서는 웃을 줄 아는 서른 초반의 말년 대리였고, 회사에 대한 불만은 오직 서로에게만 털어 놓았다. 한마디로 서로 회사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메신저로 주고받았기 때문에 남편이 자기소개에서 회사 이름을 말하는 순간, 나 혼자만 “어?”라는 반응을 보였을 뿐. 나머지는 갸우뚱하며 남편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두 번째는 바로 이름이다. 앞에 말한 것처럼 남편의 이름은 “*철”로, 봉숭아 학당의 패널 중 하나였던 개그맨과 이름이 같다. 그리고 나는 그 개그맨의 왕 팬이었다. 그냥 그 개그맨의 유행어를 흉내 내는 사람만 봐도 웃을 정도로 나는 그 개그맨을 좋아했다.
나는 딱 그 두 가지 이유로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남편에게 말을 걸었고 첫눈에 반한 건 아니지만 첫눈에 반가웠던 남자와 결혼해 어쩌다 한국을 떠나 이역만리 태평양을 건너 이 곳 휴스턴에서 2020년이지만 1980년대의 느린 속도로 살고 있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어서 극미래 문화와 올드 문화가 공존한다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이다. 기분에 따라 좋기도 하고 더 화나기도 한 이 느린 생활!
만약 그날 내가 남편의 이름도 회사도 반갑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한국에서 어쨌든 살고 있었을 것이다. 떠날 이유도, 떠날 용기도 없었던 때 남편은 덜컥 휴스턴으로 발령을 받았다. 내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두고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원망 섞인마음으로 남편만 휴스턴으로 보냈다. 그리고 수개월동안 악착같이 내가 한국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들을 14시간 시차를 극복하고 영상통화를 건 남편에게 열거했다.
나 좀 한국에 살게 내버려두라고.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한참 재미있게 일하는데 이 모든 걸 놓고 가기엔 그동안 들인 공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대체할 수 없는 이유가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정말 사실일까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난생처음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에서 남편과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마음을 굳히고 3개월 뒤 친정 엄마의 손을 잡고, 이제 막 돌이 된 아이를 애기띠에 안고 휴스턴으로 왔다. 아까 말한 그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에는 남편 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있고, 휴스턴에는 남편만 있다.”다. 처음엔 이 말이 휴스턴으로 오지 않기 위한 이유였는데 나중에는 이말 때문에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휴스턴 촌구석 살이를 여기서 풀어 볼까 한다. 마치 후배에게 치이고 선배에게 까이면서 웃을 수밖에 없던 대리 말년 차에 오직 메신저로 절친에게 랜선 수다를 떨며 극복한 것처럼.
휴스턴엔 뉴욕 같은 화려함, 엘에이 같은 유흥은 절대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옛날 EBS에 방영 됐던 “초원의 집”에 나오는 시골집과 젖소, 말, 뱀, 도마뱀, 악어, 꿀벌, 우거진 숲이 있다. 그리고 백설 공주가 각종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아침잠에서 깨어나는 게 동화가 아니고 현실이다. 실수로 페디오에 사과를 두고 잤는데 다음 날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처럼 새떼가 날아와서 창문을 쪼며 아침을 깨운다. 동화책에 나오던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들이, “동물의 세계”에 나오는 대머리 독수리처럼 동물의 살을 뜯어 먹는 것 같은 사과를 쪼아 먹는 걸 볼 수 있다.
텍사스에서 느끼는 허리케인은 “오즈의 나라”로 날아간 도로시를 떠올리게 하고, 지평선 너머로 뜨는 무지개는 그 너머 정말 오즈의 나라가 있을 것 같아 차를 타고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공원에서 시속 20KM이상으로 달리면 반드시 과속 티켓을 얻는게 해프닝이 아니라 일상인 이곳, 아이들의 스쿨 버스가 멈추면 사방의 차가 멈추며, 비오는 날 오리 떼가 길을 건너도 멈춰서 기다리는 이곳의 느림이 빠른 서울, 한국과는 비교하면 답답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힐링이 있기도 한 휴스턴 촌 살이의 이야기를 전하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