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으른 휴일을 꿈꾸며
주 7일을 일하며 몇 해를 살다 지쳐, 주 6일 일하도록 바꾸고 보니 7일째는 온종일 집안일을 한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며 이것도 아니지 싶은데, 지난 10월부터 자의 반 타의 반 주 5일 근무가 가능하게 됐다. 쉬는 이틀 동안 하루는 가사를 처리하고 하루는 게으르게 보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쉬기로 한 날 자꾸 일이 생긴다. 이러려고 무리해서 5일 근무를 결심한 게 아닌데 싶어, 이번만은 반드시 일요일 집안일, 월요일 게으른 날을 지키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마침 어제(일요일) 아들이 외출한 참에 집안일을 ‘완벽하게’ 끝내려고 착착착착, 할 일들을 해치웠다.
∙오전 8시 30분, 기상! 세탁기에 수건들을 몰아넣고 두유 제조기를 작동시킨다.
∙밀가루를 반죽해 몇 차례의 발효와 반죽을 거쳐 통밀빵을 만든다.
∙빵 반죽을 발효시키고 휴지 시키고 굽는 사이사이 두유 제조 뒷정리, 두 번째 세탁, 건조기와 제습기를 이용해 젖은 세탁물 건조, 베란다 방향의 모든 문틀과 창틀을 닦고 살충제 도포, 바닥 청소를 끝낸다.
∙귀가한 아들에게 저녁을 해 먹이고 마른 수건과 옷가지 들을 착착 개어 여기저기 제 자리에 넣는다. 오후 9시 42분, 집안일 종료
끝났다! 발바닥은 좀 아프지만 뿌듯하다. 이제 ‘마음먹은 대로’ 게으른 월요일을 보내면 된다.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월요일 오전 7시 45분, 알람이 운다. 오늘은 ‘게으른 월요일’이니 바로 안 일어나도 된다. 슬슬 일어날까 싶어 시계를 보니 8시 23분. 게으른 몸을 일으켜 침구를 정리하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휴대폰 번호다. 이거 좀 불길하다. 재작년 여름,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다.
“여기 ○○ 건물 주차장인데요, 제가 주차를 하다가 ○○○○ 차량을 살짝 긁었어요.”
살짝 긁은 게 아니었다. 가해자분이 보험 처리를 안 하시겠다 해서 그분 뜻대로 몇 군데 카센터를 돌며 꽤 시간을 소비했다. 이번에도 혹시... 조심스레 전화를 받는다.
“네.”
“저... 여기 ○○ 아파트 지하주차장인데요, ○○○○ 차주분이시죠?”
“네.”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주차를 하다 선생님 차를 살짝 긁었어요.”
“아!”
“죄송하지만 내려와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번엔 정말 살짝인 것 같은데... 이런, 찌그러진 곳이 있다! 이러면 복잡해진다. 그런데 이분도 보험 처리를 안 하고 싶어 하신다. 또 반나절을 소비할 수는 없다. 더구나 오늘은 ‘게으른 월요일’이어야 하지 않는가. 일이 복잡해질 수 있으니 보험 처리를 해 달라고 하자 가해자분이 보험회사에 연락하신다. 얼마 후 보험회사에서 나오셔서 렌터카를 보내주기로 한다.
렌터카를 모는 일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게으른 월요일로 돌아오자, 생각하며 집으로 올라와 침구 정리를 마치고 창문들을 연다. 앗, 가해자분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
“아무래도 저는 보험 처리를 안 하면 좋은데요... 죄송하지만...”
마음이 약해진다.
“그럼, 렌터카에서 두 시에 오기로 하셨으니까 제가 다니는 카센터에 가서 견적을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이번에는 가해자분이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고 ‘제가 다니는 카센터’라고 못을 박는다. 그분이 동의하셔서 씻고 카센터로 가 예상 수리비를 물어보니 금액이 꽤 된다. 결국 보험 처리를 하기로 하고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전 11시 42분...
불편한 마음으로 렌터카가 오기를 기다리는, 게으르지 못한 월요일 오후다.
그래도 아무도 다치지 않은 사고이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어차피 분주해진 참에 글도 한 편 썼지 않은가. 아쉽지만 오늘의 게으름은 다음 주로 미룬다. 사는 일이 원래 이런 거 아니겠는가. 내일 또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