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한 자에게 주어진 선택의 권리

- S. L. 황, 『내 마지막 기억 삼아』

by 세니사

☆ 이 글에는 작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 영어 원작의 제목은 『As the Last I May Know』입니다. 원작 제목에 담긴 복합적 의미가 작품의 결말과 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기이한 윤리와 선택 불가능성

열 살 소녀가 선택되어 보호(?)받고 있다. 나갈 수 없는 탑에서.

그 탑은 ‘회피’로 구축된 성이다. 기이한 윤리와 선택 불가능성의 비의(秘儀)로 작동하는 체제의 책임 회피.

선택된 자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려 했던 소녀는 서서히 깨달아간다. 이 체제의 기이함과 자신에게 강요되는 윤리를.

소녀는 자신이 이해한 진실과 그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시로 쓴다. 절제된 언어로.

교전 중인 적에게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하려면 ‘선택’된 소녀의 심장을 갈라야 하는 세계가 있다. 소녀의 심장에 이식된 캡슐에 무기 발사 암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살인’은 반드시 최고통치자가 제 손으로 수행해야 한다. 무기 사용을 최대한 어렵게 하기 위해 ‘교단’이 만든 법이다.

적국 국민의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는, 이 고결한 법은 제비 뽑기로 선택된 소녀에게 거절의 기회도 준다.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란다. (...) 너도 알지, 그렇지? 네가… 네가 싫다고 하면 그만이야.” [10쪽]


하지만 소녀는 알고 있다. 자신이 거절하면 자신의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 그 일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소녀는 배워 익힌 대로, 이 일이 중요하다는 종교적 신념과 자기 대신 친구를 죽게 할 수 없는 양심에 따라 ‘선택되었음’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한다. 열 살 소녀의 이 선택은 ‘선택’인가?

전세가 나날이 불리해지며 자국민이 수없이 죽어가는 와중에 소녀는 열세 살이 된다. 마침내 대통령은 그녀의 심장을 가르려 마음먹는다. 하지만 차마 소녀를 죽이지 못한 채 흐느낀다. 대통령은 인간적인가?

전쟁을 끝내려면 적국의 국민들과 소녀가 죽어야 한다. 소녀를 살리려면 전쟁을 계속하며 자국민들이 죽어야 한다. 이 기이한 윤리적 딜레마를 끊어내고자 소녀의 스승은 무기 발사 암호의 재설정이라는 우회로를 제안한다. 스승의 제안은 진정 해결책인가?


그런 듯 아닌 듯 작동하는 이 기묘한 체제는 아이들에게 신념을 심어주고 어른들은 물러앉아, 선택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지웠을 뿐이다. 체제는 정의와 윤리와 인간성의 외피를 뒤집어쓴 채. 소녀가 스스로 죽고 난 후 체제 지킴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소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그녀의 고결한 선택은 추앙되어야 한다.”


이 작품은 여기까지만도 놀랍다. 이런 위선과 딜레마를 설정할 수 있다니! 성전을 위해 아이들을 앞세우는 현실 종교의 거울상인 듯도 하고, 개인에게 온갖 책임을 전가하는 대부분의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인 듯도 하다.


응시의 언어

보다 놀라운 점은 작품의 결말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독자에게 각인시키려면 소녀를 자결하게 하는 편이 효과적일 텐데 작품은 극적 결말에서 슬쩍 비켜선다. 가장 끝에 놓인 소녀의 시는 이렇다.


나는 당신을 주저케 하려고 여기에 있다

당신은 내가 없기를 바랄 테지만.

가득 찬 내 심장 속에 답은 없다.

나는 다만 앉아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35쪽]


열 살에 선택되어 열세 살이 된 소녀는, 불가능한 윤리와 전가된 책임을 ‘계속’ 고요히 응시한다. 행위의 멈춤과 언어의 울림으로. 결말의 ‘내용’보다 멈춤과 울림을 동시에 실현하는 이 ‘언어적’ 결말이 놀랍지 않은가. 마치 이것이 문학 언어의 본질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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