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년의 영화 Aug 19. 2022

낭만의 시대에 바치는 가장 뜨거운 헌사

<라 라 랜드>, 데미언 셔젤 (2016) 리뷰

라 라 랜드 (2016)

 

감독: 데미언 셔젤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엠마 스톤 외

별점: 5/5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라 라 랜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성공을 꿈꾸는 배우 지망생 ‘미아’.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만난 두 사람은 미완성인 서로의 무대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백년의 영화 유튜브에도 영상으로 공개 예정입니다.


현대적 양식의 영화에는 수많은 장르가 존재한다. 스릴러, 액션, 호러 등의 동적인 장르부터 드라마, 코미디 등과 같은 비교적 정적인 장르까지. 첩보물이나 수퍼히어로, 스페이스 오페라 등 세부적인 장르를 포함한다면 영화의 장르는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네마의 기원은 결국 두 개의 장르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서부극과 뮤지컬이다. 2016년 개봉하여 대놓고 할리우드 황금기의 고전 뮤지컬 영화를 계승했음을 선언한 <라 라 랜드>는 시네마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 영화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다. 꿈꾸는 바보들인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플롯은 비록 고전적인 할리우드 러브스토리의 클리셰를 오마쥬한 것이기에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영화는 오히려 클리셰의 총집합을 통해 얼마나 아름답고도 새로운 창조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익숙한 것 속에서 새 것을 찾아낸 작업의 대표적인 예시인 셈이다.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영화의 제목을 살펴보자. <라 라 랜드>는 본래 로스 엔젤레스로 대변되는 캘리포니아인들의  몽상에 젖은 태도를 비꼬기 위해 고안된 단어였다. "너희들은 현실은 못 보고 꿈만 꾸며 겉만 번드르르한 '라 라 랜드'에 살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감독 데미언 셔젤은 본 작을 통해 라 라 랜드라는 어휘의 용례 자체를 바꿔버릴 정도로 꿈꾸는 자들의 도시인 LA라는 공간을 아련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 영화를 본 모든 꿈 꾸는 바보들, 또 다른 미아와 세바스찬 같은 이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 우린 바보들이야. '라 라 랜드'에 살고 있는 바보들이지."

 

이런 LA의 이미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오프닝 시퀀스이자 OST의 제1 넘버인 'Another Day of Sun'이 흘러나오는 장면이다. 교통체증 속에서 차를 박차고 나와 서로의 꿈을 노래하는 이들의 모습은 흥미롭다 못해 인상적인 첫 장면으로 뇌리에 박히기 충분하다. "지갑에 돈이 떨어지고 사랑에 배신당해도 먼지 쌓인 마이크와 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절망조차 희망으로 변모시키는 가사들은 캘리포니아의 긍정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라인이라 볼 수 있겠다. 트럭 뒷문에서 악단이 튀어나와 리듬에 맞춰 모두가 춤을 추고 노래하는 장면은 우리가 캘리포니아인들의 파티라고 하면 생각하는 바로 그 점을 완벽하게 영상화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캘리포니아인들의 물결 속 그 틈바구니로 미아와 세바스찬이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두 사람은 배우와 재즈 클럽의 사장이라는 비슷한 계열의 꿈을 꾸지만 실상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세바스찬이 낭만에 눈이 멀어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유의 '바보'라면, 미아는 눈앞의 현실 탓에 배우라는 낭만적 꿈을 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낭만이 결여된 '바보'로 표현된다. 이런 지점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방식이 꽤나 흥미로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보자. 세바스찬이 보험조차 들지 않은 데다 MP3 플레이어는 고사하고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어야 하는 70년대 연식의 컨버터블을 타는 반면 미아는 미국 서민들의 가장 '가성비' 좋은 선택지이자 가장 실용적인 차라고도 할 수 있는 도요타 프리우스를 탄다. 친구들과 파티에 가는 장면에서 미아는 파티장에 가득할 '할리우드 클리셰'같은 이들이 진절머리 난다고 말하며, 세바스찬은 그가 사기당한 걸 따지는 누나 앞에서 "왜 낭만적이라는 말을 부정적인 단어로 써?"라고 말한다. 이처럼 두 사람의 다른 캐릭터성은 영화 초반부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핵심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준다는 데 있다. 배우 지망생임에도 <이유 없는 반항>조차 보지 않았을 정도로 고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미아는 세바스찬을 통해 재즈를 듣고 낭만에 대해 느끼게 되며, 자신의 낭만에 도취되어 자만하고 대중을 무시하는 스노비즘적 태도를 보이던 세바스찬은 결말부에서 자신이 그토록 고집하던 '치킨 꼬치'라는 재즈클럽의 이름과, 삼바 타파스 바가 되어 버린 자신이 고집하던 클럽의 위치를 포기하고 미아가 추천한 '셉스'라는 재즈클럽을 연다. 그들의 상호보완성은 서로가 서로의 꿈에 다가가게 하는 매개가 되었고, 결국 미아는 성공한 배우가, 세바스찬은 재즈클럽의 사장이 되는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이렇게 서로가 꿈을 이룬다는 해피엔드로 끝난다면 이 영화는 고전적 뮤지컬, 그리고 러브스토리의 문법을 그대로 답습한 아류작에 불과하게 되었을 것이다. <라 라 랜드>가 탁월한 영화인 이유는 이러한 고전적 성장 서사와 플롯 속에 시대의 변화라는 요소를 도입하여 이야기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갔다는 데 있다. 앞서 필자가 미아와 세바스찬을 일컬어 둘 다 '바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들이 꿈꾸는 자들이라는 이유도 있으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낭만과 현실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시대적 상황을 못 읽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데미언 셔젤이 바라본 21세기는 60년대 할리우드와 같은 낭만의 시대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낭만이 온전히 죽어버린 시대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식어버린 낭만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시대'일 따름이다. 수익이 나지 않아 끝내 폐업하지만 영화 중반부까지도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최후의 보루로 묘사된 리알토 극장과, 찾는 이들은 노년층밖에 없음에도 여전히 재즈음악 리스너를 위해 운영되던 라이트하우스가 그것을 대변한다. 때문에 낭만에만 목을 매던 세바스찬은 이미 식어버린 그것에 좌절해왔고, 현실만을 바라보던 미아는 낭만을 그리워하는 대중의 시선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이들이 시대를 올바르게 직시함을 가능케 했다.

 

두 사람의 이러한 성장 과정을 보다 자세히 뜯어보자면, 미아와 세바스찬은 양쪽 모두 자신이 지금껏 무시해왔던 현실 혹은 낭만과 화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과정에서 큰 도전을 받았다. 미아의 경우에는 홀로 기획했던 연극의 실패가 그것이었고 세바스찬의 경우에는 키이스와 함께 한 컨템포러리 재즈 음악으로의 전향이 그랬다. 정반대인 두 사람의 캐릭터성처럼 그들이 받는 도전 역시 실패와 성공이라는 두 갈래로 나뉜 것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그 도전에서 두 사람 모두는 승리했다는 것일 테다. 미아는 낭만으로 다가가려는 움직임으로 기획한 1인극의 실패를 맛보았지만 그의 진심을 알아본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작중 최고의 OST 넘버라고 할 수 있는 'Audition'이라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또 세바스찬은 "넌 과거에만 갇혀 있지만 재즈는 미래에 대한 음악이야"라는 키이스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새롭게 시작한 컨템포러리 재즈에 회의를 느끼지만 미아의 진심이 통한 오디션 등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미워하던 현실과 화해하고 대중음악을 지향하는 키이스와도 단순한 비즈니스 상대를 넘어선 친구가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서로를 보완하여 성장하고 꿈으로 다가가게 한 두 사람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멀어지게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는 어찌 보면 꿈의 실현과 사랑의 실현이 동의어가 아니게 되어 버린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로도 볼 수 있겠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그토록 원했던 모든 것을 이룬 그들의 꿈은 현실이 되어 있었고, 오히려 그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살아왔던 과거의 현실은 다시 그들의 꿈이 되어 있었다. 현재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장면 속 미아와 세바스찬의 눈빛이 그토록 아련하고도 슬프게 보이는 이유일 테다.

 

그러나 현실과 달리 시네마는 기적을 선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데미언 셔젤은 그토록 숨 가쁘게 달려온 미아와 세바스찬을 위하여 종반부 10분여간 마지막 선물을 건넨다. 그들을 과거의 시절, 아직 낭만이 살아있었던 시절, 꿈의 실현이 사랑의 실현과 동의어였던 바로 그 아름다웠던 시절로 보내주는 것이다. 고전적 서사로 다시 해석된 미아와 세바스찬의 행보는 기쁘고도 아름답다. 그들은 서로의 행복이 서로의 성공의 밑바탕이 되는 시대에서 행복과 꿈의 실현을 동시에 이루고, 모든 것을 만끽한 후에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다.

 영화는 미아를 보내고 난 후 세바스찬이 다시금 연주를 위해 큐를 세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는 현실로, 우리가 사는 현재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의 숙명을 말한다. F.I.N이라는 글자가 뜨며 스탭 롤이 올라가는 순간 느끼게 되는 우리의 감정 역시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식어버린 낭만을 그리워하듯이, 낭만의 시대는 이미 지났지만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리움으로 완성되는 미학 역시 존재하는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던지는 것에도, 던져지는 것에도 결심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