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임신에서 난임으로, 인공수정과 시험관시술. 미처 오지 못한 두 번째
# 두 남녀의 봄
찬란하게 아름다운 봄이었다.
회사의 각 부서에서 막내였던 두 남녀는 어김없이 사내 행사의 스태프가 되었다.
벚꽃 행사에서 두 남녀는 나란히 벚꽃길을 걸었다.
자꾸만 그 걸음이 느려졌고,
뒤에서는 벚꽃 구경을 나온 아주머니들이
"선남선녀가 함께 벚꽃길을 걷는데 빨리 걸을 수 있나?"하고
장난 섞인 재촉을 하셨다.
그로부터 3년 뒤, 벚꽃 잎이 흩날리던 봄날
두 남녀에게 두 줄이 찾아왔다.
그들에게 온 첫 아이, '벚꽃이'였다.
벚꽃이 후드득 떨어지던 그날,
일상을 이상으로 만들어 준 그 남자처럼
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그 아이가 왔다.
# ENTJ
입시, 교환학생, 인턴쉽, 졸업, 취업, 연애, 결혼, 임신
문을 열면 보이는 또 다른 문을 향해 달려가던 내게
'출산휴가'는 처음 맛보는 진짜 쉼이었고,
만삭의 몸이 그렇게 가벼웠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 꿀휴가를 만끽하다 보니
D-DAY가 찾아오고 있었고
나는 맘 카페를 통해 선배 맘들의 후기를 접하며 끊임없이 출산 D-DAY시뮬레이션을 돌렸다.
D-1이자 우리의 세 번째 결혼기념일.
내 시나리오에 없던 씬이 등장했다.
무언가 주르륵. 양수가 먼저 터져버린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벚꽃이는 자기 주장이 강했다.
'내가 나가고 싶으니 내가 문을 박차겠다'
배 속의 그 작은 태아 벚꽃이는 발로 양수를 터뜨려버렸다.
병원에 가 그렇게 꼬박 하루를 진통하고 다음 날 오후,
두 줄로 찾아왔던 '벚꽃이'는 우리 딸로 가슴팍에 안겼다.
# 내가 진짜 사람을 낳았다니!
8살 어린아이일 때부터 나는,
나중에 딸을 낳으면 정말 예쁘게 키워야지
태권도도 가르치고, 피아노도 가르쳐야지 하며 미래를 상상했다.
드디어, 31살에 만난 진짜 딸 앞에서 나는
'아!, 내가 진짜 사람을 낳았구나. 이제 나는 물러설 곳이 없구나'하는
강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 가슴 위에 올라간 겨우 3kg의 조그만 아이가 정말이지 무겁게 느껴졌다.
# 어머니, 뒤통수가 이런데 애가 눕겠어요?
벚꽃이의 뒤통수는 정말이지 동그랗다.
거의 반원이 붙어있는 것처럼 툭 튀어나와 예쁘다.
아기들은 두개골이 완전히 닫혀있지 않아
태어났을 때 뒤통수가 동그랗다가도 누워 지내다 보면 납작해진다는데
벚꽃이는 그것을 거슬렀다.
정말이지, 침대에 10분도 누워있지 않았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어느 날,
처음 하는 엄마아빠 역할이 버거워 같이 울기도 여러 밤을 지나고 나서
두 초보 엄아아빠는 소아과에 찾았다.
"아무래도 아기가 어디가 아픈 것 같아요. 계속 울기만 해요. 뭐가 문제가 있나 봐요"
의사 선생님은 조심히 벚꽃 이를 문진 하더니
"어머니, 뒤통수가 이런데 애가 눕겠어요?, 불편해서 어른도 못 누워요.
지금 잘 자는게 좋은지, 커서 예쁜 뒤통수인 게 좋은지는 지켜봐야죠"
"....."
그렇게 사람 같지 않은 몰골로 사람을 키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 둘째는 없어
서른 하나였지만, 어린 엄마인 편이었던 나는 주변에 미혼인 친구들이 많았다.
내 새끼 똥 색깔이 이상하다며, 똥 기저귀를 들고 소아과로 뛰어갔던 그날
나와 같은 꿈을 꾸던 대학 친구 중, 영국에서 일하던 친구가 연락이 왔다.
"요즘은 챗gpt랑 대화하며 노는 게 재밌더라"
"뭐... 챗.. 뭐?"
"응, Al인데 채팅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봐. 궁금한 거 검색하는 것보다 빨라."
나는 그때, 조금 서러워졌다.
엄마가 되면 인생의 2막이 시작되는 거라던데,
1막의 내가 그리워졌다.
자신있게 "저는 세상이 돌아가는 중심에 서 있을 거예요."라고 외치던 1막의 주인공은
2막이 열리자 바깥소리에 귀를 닫고, 오로지 아기의 먹-놀-잠만 체크하고 있었다.
벚꽃이의 100일 즈음.
다시 벚꽃 잎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둘째는 절대 없어. 여보 (정관)수술 하자!"
"아기가 두 돌쯤 되면 다들 마음 바뀌어서 둘째 가지려고 한대. 괜찮겠어?"
"응. 나중에 혹시나 그런 마음이 들거든, 그때 지금의 나를 후회할게. 수술하자."
"...."
남편은 씨 없는 수박이 되고 싶지 않다며, 수술을 차일피일 미뤘다.
선.. 견.. 지.. 명 인가?
# 반드시 찾아오고야 만다. 둘째 고민
제대로 잠 못 자기를 1년.
그리고 복직.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께 끌려가다 시피하며
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얼굴로 울던 아이를 보내고 출근하면
하루 종일 마음은 어린이집 현관에 서 있었다.
"오~구, 그랬쪄요?" 라는 말만 하다가
회사에서 사회용어를 쓰려니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고민이 되었다.
휴직을 길게 해서 벚꽃이랑 더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둘째를... 가져볼까...?
그러다가도,
일+육아+집안일+부족한 잠으로 매일이 피곤했고,
두 달에 한 번씩은 크게 아팠다.
코로나 키즈였던 벚꽃이와 함께한
임신, 출산, 육아휴직까지의 전 과정은
첫째 외부 출입 제한,
둘째 외부인 접촉 최대한 삼가
셋째 마스크 필수 착용을 철칙으로 아기의 건강을 지켰다.
떨어질 때로 떨어진 약한 면역력을 가지고
갑자기 나는 회사 생활, 벚꽃이는 어린이집 생활을 하다 보니
둘 다 유행하는 감염병은 죄다 가져왔다.
의사 선생님이 "환자분 면역력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감기가 쉽게 낫질 않네요"라고 하시면
몸보다 마음이 더 아려왔다.
서러웠다.
물러설 곳 없는 엄마라는 자리가 버거웠고, 나의 깜냥이 이것밖에 되지 않음이 속상했고,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1막의 내 삶을 찾고 싶어 하는 내가 미웠다.
# 어머, 얼마나 힘드셨어요?
스물 넷,
원하던 회사의 원하던 직군, 최종 면접에서 아쉽게 탈락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래도 동네 어학원에 영어를 가르치러 가야했고,
다음 날 기말고사 대체 그룹 발표를 위한 PT를 완성해야 했다.
'저 진짜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하고 씨-익 웃으며
모든 것을 해냈는데,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자꾸만 코피가 뚝-뚝- 흘렀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진짜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몸이 자꾸 아프다는 신호를 보냈다.
지금도 그런걸까?
몸이 아픈게 사실은 마음이 아픈걸까?
회사를 출근하는 길에 갑자기 길에 멈춰서 딱- 더이상 발걸음이 나아가지 않았다.
9시까지 들어가려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데
그만 걷고 싶어졌다.
노란불이 켜졌다.
빨간불이 켜지기 전에 준비를 해야했다.
집 근처의 상담센터에 찾았다.
조용한 방에 앉아 나에 대해 적고 있는데
선생님의 첫 말씀이
"어머~ 18개월 된 애기를 두고 출근하시는데, 얼마나 힘드셨어요?"
얼마나 힘들었냐는 그 말이
힘들어도 된다고
힘든게 당연하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온 감정을 뱉어내고 나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너무 지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속 시원하게 풀리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을 탈탈 털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말라갔다.
결혼식을 앞두고 다이어트했을때보다
몸무게가 더 줄어갔다.
다시 살찌울 시간이 필요했다.
무너진 마음의 모래성을 다시 쌓을 시간이 필요했다.
아지랑이처럼 스물스물 올라오던 둘째에 대한 생각은
다시 마음 저 구석에 구겨진 종이로 던져졌다.
그래, 나는 두 명의 아기를 키울 깜냥이 되지 않아.
벚꽃이만 잘 키우자.
# 아기 아닌데, 언!니!
겨우 만 2세지만, 4살이 된 벚꽃이는 어린이집에서 언니반에 들어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 놀이터
동생들 앞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를 타면서
"아가들은 못해. 언니만 잘해"라며
언니 부심을 뽐내기 시작했다.
"언니는 치카 잘하지~ 언니는 밥 잘 먹지~"라는 말로
모든 것을 다 하게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언니"라고 부르기만 해도
벚꽃이의 어깨뽕이 차올랐다.
그 조그만 아이의 자부심이 눈물 나게 귀여웠다.
어디서나 제일 어린 아기였던 벚꽃이에게
어딜 가나 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벚꽃이를 앞에 두고도
벚꽃이 아기 때 사진과 영상을 들여다봤다.
치명적이게 중독적인 그 꼬물거리던 모습을
다시 한번만 보고 싶었다.
그렇게 무게 추가 다시
둘째를 가지는 쪽으로 기울었다.
둘째를 임신하게 되면,
일단 임산부 2시간 단축근로에
3개월 유급 출산휴가, 그리고 육아휴직까지
그러면 벚꽃이가 5살!
그렇게 저울질이 시작됐다.
자, 장단점을 나누어보자.
둘째를 가졌을 때의 장점
둘째를 가졌을 때의 단점...
1년을 그렇게 저울질을 해댔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
# 원인 불명의 난임입니다
매달 산부인과에서 배란초음파를 보았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날짜에 숙제를 했고, 결과를 기다렸다.
삶이 한 달 주기로 흘러갔다.
술도, 커피도, 머리 염색이나 병원도
딱 배란 전 2주일 안에만 했다.
배란일이 지나고나면 혹시나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 봐
멍이 들거나 살짝 베어도 연고도 제대로 바르지 않았다.
뛰지도 않고, 추어탕도 많이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최대한 많이 누워있었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을 때,
병원에서는 나와 남편의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계획하자마자 바로 찾아온 벚꽃이와 달리
둘째가 오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 봐 무서웠다.
주변에 임신한 사람들에게 축하 선물만 연거푸 해 주던 어느 날
병원에 결과를 들으러 갔고
남편도 나도 모두 정상, 수치도 아주 양호하다고 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난임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아주 복합적이에요. 단순히 이번 검사의 수치가 좋다고 해서 난임이 아닌 것은 아니에요. 이런 걸 원인불명의 난임이라고 하고, 전체 난임의 40%가 원인 불명의 난임이에요.
이정도 했는데도 안 생긴것 보면, 이제 자연으로 아기가 찾아오길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요.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해요."
난임 판정.
그것은 나와 남편의 쉽게 끝나지 않을 분쟁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 온 세상이 말리는 일
"우리 큰 강을 넘어왔잖아, 더 깊은 강이 나타날 텐데 이제는 잘 넘어갈 자신이 없어"
"아니야 오빠, 분명 더 행복할 거야. 경험을 해봤으니 이제 슬기롭게 잘 이겨낼 수 있어"
"너에게는 부족했겠지만, 난 정말 육아에 최선을 다한 거야. 이보다 잘할 자신이 없어"
"내가 더 잘해볼게, 더 노력할게"
"우리 세 식구로도 행복하잖아. 나중에 벚꽃이 한 테 더 많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자"
"벚꽃이 인생에 돈보다 동생이 더 큰 자산이 될 수가 있어"
"많이 노력했잖아. 안 되는 건 이유가 있겠지. 운명을 거스르지 말자"
"첫째는 자연으로 생겼다가 둘째는 시술받는 사람들 많대. 우리도 더 나이 들었잖아. 더 몸이 안 좋으니까 그러겠지. 한 번 해보자"
매일 같이, 서로의 의견이 부딪혔고
서로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가족을 위한다는 마음의 시작은 같았는데,
다른 지점으로 도달한 마음의 끝은
서로를 자꾸만 아프게 했다.
서러운 밤들이 쌓여갔고,
나의 마음은 약해져만 갔다.
남편의 말들이 나를 찌르고,
나의 눈빛이 남편을 찔렀다.
그러다가 남편은 결국 내 손을 들어줬다.
"네가 원하니까, 그럼 딱 인공수정까지만 해보자"
네가 원하니까...
나는 둘째를 가지는 과정에 있어서 철저히 을이 되었다.
자꾸만 남편 눈치를 보게 되었다.
임신도, 출산도, 어차피 육아도 내가 더 많이 하는데
그렇다고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도 다녀야 하는데
왜 내가 눈치 봐야 하나 속이 상했다.
그러면서도 인공수정 시술이 바로 성공해도 벚꽃이랑 4살 차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오랫동안 기다린 만큼 빨리 만나고 싶었다.
회사에서 지원이 돼 난임휴직을 신청했다.
"쉬면서 마음 편하게 가지면 바로 아기가 찾아온대"
"과장님은 금방 아기 만나서 복직할 것 같아요"
주변의 감사한 축복의 인사를 들으며 휴직에 들어갔다.
운동도 하고, 여유롭게 책도 읽고, 건강한 음식도 해 먹으면서 아기를 기다려야지
부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설렘으로 보냈다.
그리고 세 번의 인공수정 시술이 실패로 끝이 났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끊임없이 쳇바퀴 굴리는 다람쥐처럼 바지런했던 나는
하루 종일 티비만 틀어놓고 시간을 보냈다.
오지 않는 잠을 자며 시간을 낭비했다.
누워 지내며 문득문득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모든 게 아까웠다.
둘째를 위해 고민한 시간도,
남편과 오랫동안 싸움한 내 감정도, 쏟은 병원비도,
모두가 나에게 멈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너만 멈추면 돼. 너만 포기하면 돼. 근데 왜 그 길을 가려고 해. 무엇 때문에?
그래,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원하는 게 다 될 거라 생각했지?
지금까지 나름 원하는 거 이루면서 살았잖아.
이제 받아들이면서 살자.
둘째까지 오손도손한 가족들 부러워하면서 살자.
내가 꿈꾸던 딸, 벚꽃이가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벚꽃이를 항상 1번으로 마음 다해서 사랑하며 키워야지.
이제 내 삶도 찾고, 회사도 다시 복직하고 커리어도 쌓아야지.
머리 염색도 하고, 못했던 피부과 시술도 받아야지.
마음을 잡은 척, 그렇게 웃으며 지내고 있었다.
# 나의 천국
어느 한가로운 주말,
세 식구 같이 쇼핑몰을 갔다가 남편이 벚꽃이와 키즈카페에 가겠다며 내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난임 휴직이었기에, 둘째를 포기하면 복직이 조건이라 옷을 좀 사야겠다 생각하고
벚꽃이 것도, 남편 것도 아닌 내 옷을 고르러 다녔다.
하지만 어떤 옷 가게도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옷을 안 사기도 했지만,
육아에 편한 옷만 사다 보니 어느새
내 옷장이 나이키 검은색 후드, 아디다스 네이비 맨투맨으로 차 있었고
나의 취향이 담긴 옷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어떤 옷이 잘 어울렸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이런 옷을 입어도 될지도 모르겠고,
이 돈을 내 옷에 써도 되는지도 모르겠고
쉽게 옷가게를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지?
서점에 들어갔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애착 육아'
육아 서적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가, 내가 무슨 책 읽기를 좋아했더라?
정말 오랜만에 소설책을 들여다보았다.
박상영, 정세랑, 김연우...
작품에 녹아나는 작가의 특색이 좋아
작가별로 작품을 만나고, 읽고 난 감정을 글로 남겨놓기를 좋아했는데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의 끝을 꾹꾹 눌러 담은 소설을 보면서
나의 새로운 면을 만나보기를 좋아했는데
소설책을 읽은 지도 벚꽃이 나이만큼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이렇게 나는 없지
어느새 엄마만 남아있지
제1막의 나를 찾으려 해도,
2막의 주인공으로 살다 보니 1막의 주인공까지 바뀌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2막을 살고 있고, 2막 주인공의 삶을 열심히 살고 싶은 건데
엄마 역할로 그 생을 잘 살고 싶은 건데
내 꿈을 이루는 것보다, 내 새끼들을 키워나가는게 내 천국인건데
왜 나는 둘째를 포기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진짜 해볼 수 있는 만큼 다 해봐야 하나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 이대로 갈 수 있을까?
또 남편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지?
멈춰야 하나?
# 또다시 벚꽃 피는 계절
벚꽃이와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는 아침
벚꽃잎이 떨어진다.
벚꽃을 보면 마음이 꼭 눈송이 처럼 몽글몽글 뭉쳐지는 기분이다.
벚꽃필 때 내게 새로운 가족이 찾아왔는데
'타이밍 이즈 나우'인가 싶다.
남편이랑 시험관에 대해 깊은 얘기를 해 보았다.
남편은 지금이 벅차다고 했다.
자기가 빨리 죽을수도, 아플수도 있지 않냐고 했다.
태어나서부터 경쟁인 이 사회에서
어떻게 또 한명을 몰아넣냐고 했다.
그렇지만
"나도 네 명이 더 행복할 것 같아."
다들 이렇게 비교 저울질을 하나.
이렇게 자신없나.
진짜 둘째가 생기고 나면 미안해서 어떡하지.
너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 아빠가 이렇게 고민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떡하지.
나도, 나에게 확신이 있으면 좋겠다.
자신감이 있으면 좋겠다.
자신있게, 내가 책임질게 하고 싶은데
그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 운명과 계획이라는 큰 손
당장 내일의 계획은 없어도
인생의 '단계'에 대한 큰 계획은 확실했다.
아니, 어쩌면 계획이라기보다 한계라고 말하는게 맞겠다.
1. 말한대로 이룬 첫번째 일
스물일곱 나에게 결혼하자 졸라대던 남자친구를 뻥 차버린 뒤,
늘 단발이던 머리를 기르기로 다짐했다.
다음 남자친구랑 2년 뒤, 스물아홉에 결혼할거예요.
그렇게 스물아홉 12월에 나는 긴 머리의 신부가 되었다.
2. 말한대로 이룬 두번째 일
'빠른생일'로 학교를 일곱살에 입학했던 나는,
열아홉에 대학생이 되었고,
그 해 1월부터 선생이 되어 과외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부모님은 학비를 제외한 나머지의 경제적 지원을 끊으셨고,
나는 고3보다 빡센 대학생활을 보냈다.
대입을 준비하며 새벽 1시까지 내 공부한 적은 없었지만,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을 새벽 1시까지 공부시킨 적은 있었다.
그렇게 얻은 나의 별명은 과.외.재.벌.
그리고 다짐했다.
이 돈을 적금하여 10년 뒤, 스물아홉에 결혼해야지
그렇게 스물아홉.
10년간 모았던 그 돈은 아주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은 신부가 되었다.
3. 말한대로 이룬 세번째 일
2021년을 맞이하면서, 성인이 된 이후로 쭉 유지해 온 갈색머리를 검정색으로 염색했다.
임신하면 염색 못하니까 검정색으로 덮었어.
2021년 상반기에 임신할거야 라는 계획으로, 그 해 벚꽃이 피던 때 벚꽃이를 만났다.
4. 말한대로 이룬 네번째 일
첫째를 낳고 애기 엄마들을 만나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단골 질문은
"둘째 계획 있으세요?"이다.
처음엔 없다고, 중간엔 없다고, 나중엔 고민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늘 바뀌지 않던 하나의 생각은
"벚꽃이랑 네 살차이 나는 둘째까지만 고민해보려구요"였다.
나는 항상 그 이상, 그 이후는 없었다.
그 계획을 늦추면 나만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것을 빨리 시작한 내 인생인데,
내 아이에게만 늦은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안나타나면 우리엄마 성격에 진짜 얄짤도 없다 생각해서 일까.
문득, 뜬금없이
나에겐 없을것 같던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보였다.
밖에는 벚꽃이 막 떨어지고 있었다.
# 너무 간절히 원하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너무 간절히 원하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말고 자연스럽게 결과를 기다리라고
생리주기가 28~29일로 정확한 편이었던 나는
여러 시술을 거치면서 2~3일씩 늦어진 적은 있었지만
(정자-난자가 수정이 되었는데 착상에 실패한 경우 생리가 늦어질 수도 있다고 함)
한 번도 당겨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예정일 4일 전에, 속옷에 소량의 피가 묻어났다.
생리를 하기 전날 종종 소량의 피가 나온 적이 있어,
이제 곧 생리하려나보다 싶었다.
시험관은 생리 시작하고 2~3일차부터 병원가서 주사를 맞아야하는데
병원예약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남편에게도
이상하게 이번은 생리가 빠르네 하면서
시험관을 시도해보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다음 날 오후가 되서야 문득
'엇? 왜 생리가 시작을 안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착상혈?? 이라는 맘카페에서 배운 잡지식이 떠올랐고
집에 쌓여있던 임신테스트기를 해 보았다.
역시나 한줄이지 하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희미하게 올라오는 붉은 선....
두 줄이었다.
뭐지? 이게 맞나?
혼자서 실성한 듯이 한참을 웃었다.
결국에 돌고 돌아,
난임판정을 받고 5개월이 흘러
인공수정을 세 번 실패하고
난 자연임신을 한 것이다.
결국, 찾아와줬구나
반가워 둘째야
3주 5일 희미한 두 줄로 나온 우리 둘째는
4주 6일 아주 선명한 두 줄로 보였고
5주 2일 병원에서 '임신확인서'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