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잰걸음을 재촉하는 도시의 한복판. 당신의 눈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나요? 주변은 시선을 훔치려는 알록달록함으로 치열합니다. 찰나의 감각을 사로잡기 위해 반짝이고, 흔들리고, 소리칩니다. 예전 자극이 입던 옷은 어느새 알고리즘이 걸치고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토끼굴 속에서 우리는 취향을 발견하는 듯하지만, 실은 누군가가 미리 그려둔 지도를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채로워 보이는 콘텐츠의 홍수는 묘하게 한 곳으로 모입니다. 다양성이 팽창할수록 취향은 수렴하고, 그 장면은 다름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의 초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한국의 트렌드를 이야기합니다. 분명 자랑스러운데 어딘가 조금은 쓸쓸합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머리를 하고, 같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풍경. 그 안을 떠도는 이 상실감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났습니다. 동일성이 미덕인 사회에서 그 말은 사회에 맞게 살아라, 눈에 띄지 말라는 충고처럼 쓰였죠. 하지만 그 안에는 섬뜩한 전제가 있습니다. ‘모난 것은 잘못된 것이다’. 튄다는 건 외형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하죠. 그렇게 이 말은 다름을 향한 무의식적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그럼에도 세계를 움직여 온 건 언제나 그 모난 시선이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길 원하는 전방위적 시도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다른 곳을 봅니다. 남들이 지나치는 곳에 시선을 두는 사람들, 아무도 듣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창작자는 바로 그 외로움 속에서 태어납니다. 대중의 취향과 어긋나 주목받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지기도 하죠. 그래도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는 일만큼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 있는 행위입니다. 그 외로움이 세계의 균열을 발견하는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생경하게 멀어진 멈춤과 관찰의 미학을 복구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동일성의 깃발 아래 재편된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행위가 아닐까요.
그 틈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 위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뿐이지요. 어느 날은 문득 멈춰 서게 됩니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 버려진 간판의 그림자, 무심히 던져진 문장 하나가 발을 붙잡습니다. 그 순간 지나칠 뻔한 균열 속에서 세계의 다른 얼굴을 봅니다. 세상이 닫힌 문처럼 느껴질 때조차, 그 문틈으로 스며드는 빛을 외면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완벽한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균열은 생성의 조건이자 창작자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 때 창작자는 그 행렬 속에 틈을 냅니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고, 그 빛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죠. 불완전함은 결함이 아니라 시작의 숨결입니다. 당신이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유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무언가를 느끼기 때문일 거예요.
당신의 시선이 머무는 그 조용한 틈에서, 아직 이름 붙지 못한 이야기들의 목소리가 들리나요? 모난 돌이 빛을 굴절시킵니다. 그리고 그 굴절이 세상을 반짝이게 합니다. 그 빛이 당신의 세상에 닿기를. 당신의 감각을 다시 깨우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잠시라도 함께 그 틈에 서 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같은 규격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어디엔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어._쿠사나기 모토코, 공각기동대(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