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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크홀릭 Feb 10. 2017

더 많은 염병하네.가 필요한 세상

욕하면 좋아질 세상

얼마 전 서초동 특검 소환조사에 출석하며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라고 외치던 최순실을 향해 건물청소를 하시던 아주머니가 일갈한 “염병하네.”가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이 아주머니보다 조금 더 정제된 표현을 썼지만 요 근래 문유석 부장판사가 쓴 ‘전국 부장님들께 드리는 글’또한 “염병하네. 와 궤를 같이 한다.


일고의 가치가 없는 몰상식한 주장과 발언에 맞서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힘 있는 자에게 대들어서 이익 될게 없기에 모른 척 못들은척 비겁을 선택하면 당장의 인생은 편하다.

더불어 사회통념상 굳어버린 관성이 부도덕과 불합리로 똘똘 뭉친 것일 때는 더더욱 침묵하는 것이 편하다.이 때 비판할 상대는 단 한 사람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4천999만 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소부 아주머니 촛불집회 발언대에 올라 자신이 내 놓은 말의 근간을 밝혔다. 나는 나의 직업이 부끄럽지 않고,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했으며, ‘우리’를 팽개치고 저 혼자 잘 먹고잘살겠다고 불법과 부도덕을 일삼은 것이 억울하다는 말을 하는 것에 분개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분개해야 할 일일에 분노하지 못하는 우리에겐 이 분의 용기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학시절 친구 중 하나가 민자당 선거유세에 피켓 알바를 다녀와서 3만원의 일당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당시 내가 받던 근로 장학금이 한 달에 10만원이었으니 녀석은 꽤나 고수익 알바를 하고 온 것이고 돈의 액수만을 얘기하자면 자랑할 수 있는 일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엊그제 만 해도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으며 혁명과 인생을 얘기하던 녀석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어 그 후로 그 친구와 거리를 두었었다.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후회가 되는 것은 그 친구에게 이유도 말하지 않고 거리를 둔 소심한 내 처신이다.

그 때 “염병한다! 병신새끼야!!”라고 그 친구에게 욕을 했어야 했다. 친구를 위해서라도.


팩트폭력(?)이라는 칭송을 받은 문유석 부장판사의 ‘전국 부장님들께 드리는 글’은 사건. 사고 많은 시국에서도 인터넷과 SNS를 통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불편한 마음을 호소하는 사람(꼰대)들에게 핀잔도 많이 받은 모양이다.

문판사는 자연계의 축복에 의해 자연 쟁취되는 꼰대라는 완장을 찢어버린 불한당이 되어 버렸으니.


인간은 거울로 자신의 외모를 볼 수는 있지만 더럽혀지고 어긋난 자신의 심성을 볼 수 있는 발명품은 아직 만들지 못했다. 타인의 비판과 특히 자신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의 충고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염병하네. 라는 말이 갖는 가치가 새삼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직장인이라면 연말정산 환급을 받기 위해 교회에서 받아온 묵직한 금액의 기부금 영수증을 자랑하는 친구에게,

노인이라면 태극기 집회에 나가 일당을 벌어온 걸 자랑하는 동년배에게,

음주운전을 하면서 술이 쌔서 자신은 끄떡없다는 이에게,

“염병하네." 라고 말해 주자.


나는 뭐가 더 도덕적이고 뭐가 더 잘났다고 움츠려들지 말고, 작은 권력과 관계의 단절에 왕따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입을 닫지 말고 말이다. 그러다보면 상사, 어른, 관리라는 쥐꼬리만 한 권력에 숨 직이지 않게 되고, 좋은 게 좋은 거, 인생은 둥글게 라며 제 이속만 차리는 무뢰배들에게 이용당하는 일이 시나브로 줄어들 것이다.


공정한 사회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염병하네. 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면 싶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에게 염병하지 말고 내게 오는 햇볕을 막지 말고 비키라고 했던 디오게네스와 같은 용기와 지혜를 갖고 있는 시민들이 수백만 명이 사는 나라라면 뭐가 두려 울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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