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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 청천 Sep 22. 2022

며느리의 모양 : 굴레

20P年02月










영화 ‘B급 며느리’ 영상 트레일러는, 남성 영화감독 본인이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을 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는 리얼 다큐멘터리이며,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를 중심으로 촬영되었다. 아래는 'B급 며느리'의 대사를 그대로 발췌하였다.


- 시어머니: 며느리가 할 일은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는 거야. 첫 번째는 시아버지 생신이고 두 번째는 시어머니 생신이야.

- 남편(아들): 왜 엄마가 두 번째야?

- 시어머니: 왜긴 왜야. 아버지가 제일 일등이지 순위가.

- 남편(아들): 왜?

- 시어머니: 왜가 어디 있어? 그다음에 구정, 추석, 집안 행사, 제사, 시할머니 생신, 그리고 너 생일, 너 동생 생일 (이런 것들을 챙겨야지)


대화에서 시어머니의 생각과 행동들의 전제조건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집안 구성원에게는 순위가 매겨지는데 남자가, 그중에서 시아버지가 1순위이다. 두 번째, ‘집안’의 범위는 아들이 결혼을 해도 변함이 없으며, 며느리는 이 가정에 합류한 인물이다. 세 번째, 며느리의 합류는 동일한 인격체로서가 아닌 아랫사람으로 들어온 것이다.


시어머니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녀 자신이 며느리였던 당시의 보편적인 생활관이었을 테니까. 그런 시대를 보았고 겪은 시어머니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영화에는 삭제되었다는 다른 영상에서 며느리의 말을 들어보면, 더 확실히 '며느리'의 개념에 대해 사람들마다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며느리 : 실질적으로 도련님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해보면, 어릴 때 보던 옛날 드라마에서 주인집 아들 부를 때 ‘도련님, 도련님’하면서 쫓아다니잖아요. 그게 너무 굴욕적이라서 진짜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아요 그 말이. 며느리는 포지셔닝이 ‘하인’으로 돼 있어요. 이렇게 서열 중요시하는 분들이, 나는 엄연히 형의 와이프고 실제로 나이도 더 많은데 내가 저 애한테 ‘님’ 자를 안 붙이는 게 이렇게 문제가 돼서(이하 생략)


며느리는 자신이 그 집의 아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시가의 관행이 부당하다고 느낀다. 인간이 어떤 남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며느리'라는 굴레를 쓴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자신이 택한 남자와 동등한 교육을 받고 대접을 받으며 살아온 며느리이니 당연히 이상한 관념이다.






‘굴레’는 소, 말 등의 가축의 머리에 씌워 사람이 다루기 쉽게 만든 물건이다. 그런데, 돌 무렵부터 여자 아이에게 씌우는 모자도 ‘굴레’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떤 며느리들의 동등의 투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한 서린 며느리들이 모인 모임에 들린 적이 있었다. 자질구레한 차별은 일상적으로 겪는 분들이었다.

 

‘우리 시부모님은 첫째인 우리한테 자기가 가진 땅을 팔았잖아. 준 게 아니고 팔았어. 그래서 그 돈을 둘째 셋째 넷째 다 나눠줬어. 내가 그 뒷바라지 어? 전부 다 했는데 안중에도 없어. 나는 그냥 조건 없는 노예야.’


 ‘우리 둘째 아주버님 의사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효도하겠다고 성장호르몬 주사를 놔주고 가요,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사지육신 움직이지도 못해서 목욕이며 똥이며 내가 다 치워줘야 하는데, 거기만 서요. 아니 그렇게 효도하고 싶으면 자기가 돌보든가.’


그 모임은 교양 관련 교육을 수료한 후 피드백 그룹이 모임으로 발전된 곳이었다. 매사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거나 멘탈이 뭉개져서 우울에 갇힌 상태가 아니었다. 평범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들이었다. 단지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떠맡았을 뿐이다.






나는 그 모임은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 더 나아진 시대에 나아진 사람들 곁에서 며느리가 된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지혜롭게 사는 것 같다고 했지만, 평화는 나 혼자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 내가 불의를 겪는다면, 시가가 구시대의 발상으로 나를 옥죄려 한다면, 나는 참지 않지. 나는 지금과 같이 고운 언어를 쓰고, 그이 형 친구들의 시가 방문에 커피 타주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존중은 상호 교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시가와 평화롭게 지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그녀는 변화를 수용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졌다. 또 둘째 아들과 결혼한 이점도 있다. 시어머니는 첫째 아들을 장가보내면서 아들과 이별하는 법을 익혔다고 한다. 게다가 첫째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생경한 생각과 경험이 노출되었다. 시아버지의 말수가 적은 것도 영향이 있으려나. 시부모님 주변 사람들 중에서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하고 입대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더불어 며느리인 나도 크게 모나지 않고, 아들이자 남편인 그이도 역할을 잘하고 있다. 나의 평화는 모든 상황과 시간이 만든 결과물이다. 내가 아무리 투쟁을 해도 주변에서 나를 굴레 쓴 말 취급하면 망나니 망아지 밖에 되지 않으니.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감사함이 밀려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오늘 지인들 이야기 듣다가, 어머님한테 새삼스럽게 감사해서 전화드렸어요. 다들 시부모 욕한다고 바쁜데 저는 우리 어머니 칭찬할 것 밖에 없더라고요. 지혜롭고 현명하게 저와 가족을 대해주셔서 저는 진짜 너무 감사해요.”

“아가. 네가 나를 지혜롭게 보니까 지혜로워 보이는 거지. 그래 우리 많이 감사하면서 살자.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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